어렸을 적부터 내가 보이기 원했던 모습은 너무도 명확했다. “어른스럽다” 이 한마디가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었다. 이 한 문장이 다른 엄마들 입에 나와 엄마 영에게까지 들어가게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픈 친구의 가방을 들고 하교하는 것, 목발을 짚은 친구를 부축해주는 것, 손을 다친 친구의 급식을 대신 받아주는 것. 그때 그 당시에는 어떤 마음으로 친구들을 도와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캐릭터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들고 가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면 뭔지 모를 쓸쓸한 마음이 든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는 것. 체 열 살이 되지 않은 나이 때부터 어른들이 말하는 어른스러움에 부합하고 싶어 했다. 어른스러움에 목메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했기에, 그렇지 못한 나를 열심히 갈구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나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엄마 영에게 들켜서는 안 될 일탈이 머리가 클 수록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학교가 너무 가기 싫었다. 길어야 집에서 15분 걸리는 거리에 있는 학교를 너무도 가기 싫어했다. 없는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조퇴와 결석을 일삼았다. 거짓말은 셀 수도 없고, 부모님의 핸드폰으로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 결석을 하기도 하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는 가야 한다 말하는 엄마 영의 말에는 싫다는 내색조차 할 수 없었기에, 거실에 나뒹구는 아빠의 핸드폰을 집어 들고 미리 적어놓았던 문자 내용을 바삐 옮겨 적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OOO 학생 아빠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도롱이가 내일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서 학교를 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늦은 밤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혹시나 전화가 올까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에 문자를 넣어놓고 선생님 번호를 차단하여 핸드폰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혹시나 엄마 영 핸드폰으로 연락이 올까 두려워 음악을 검색한다는 이유로 빌려 학교 선생님의 번호를 수신차단으로 바꿔놓았다.
이런 나에게 자연스럽게 별명이 생겨났다. 종합병원, 주 4일제, 환자 등등. 그리고 나는 이 별명들을 별 내색 없이 인정했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어느 순간 없어져도 그런가 보다 하는 분위기가 교실에 형성됨에 만족스러웠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학교을 빠지길 원하던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볼거리가 유행하여 몇몇 학생들이 학교를 쉬기 시작했다. 잠복기도 있고 전염성이 강하여 길면 일주일을 쉬어야 하는 병에 머릿속이 바삐 움직였다. 어떻게 하면 볼거리에 걸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인터넷을 들쑤셨다. 그렇게 몇 시간을 검색하여 알아낸 정보를 요약하면, “볼거리는 유행시기에 맞춰 목과 턱 근처가 심하게 부어오르면 병원에서도 볼거리인지 이하선염인지 알 길이 없어 볼거리로 진단서를 떼어 준다”였다. 오랜 가뭄 끝에 담비 같은 소식이었다. 엄마를 닮아 평소에 체력적으로 무리를 하면 턱 밑 침샘 쪽이 부어오르는 내 상황을 잘 이용하면 일주일 정도는 방학이다 생각했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철저하게 계획하여 월요일에 맞춰 몸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잠을 줄이고 평소보다 춥게 잠에 들었다. 그렇게 3일을 고생하자 약속한 듯 뺨과 턱 사이가 부풀어 올랐다. 음식을 씹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는 몸을 끌고 병원으로 향한다. 지금으로부터 빠르면 여섯 시간 안에 풀리는 이 마법이 최대한 오래 버텨주길 기도한다. 이른 아침 한적한 병원에 도착했고 몇 시간 후 결국 내 손에는 볼거리가 의심된다는 진단서가 들려있다. 고작 사천 원으로 학교를 일주일이나 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마지막 종지부로 선생님께 전화해 현 상황을 전달하자 푹 쉬다가 진단서 가지고 등교하라는 승인이 떨어진다. 일주일은 일어나기 싫은 시간에 일어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매일 여덟 시간도 넘는 자유시간이 생긴 것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 아쉬워 오늘은 기분이다 생각하고 떡볶이를 시켜 입에 넣는다. 살짝만 움직여도 뻐근한 왼쪽 턱을 잡고 오른쪽 턱으로 천천히 씹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실없는 웃음이 샌다. 혼자 낄낄대며 떡볶이를 먹는 나를 보며 아주머니가 어묵 국물을 떠 준다.
“학생 혀 씹었어? 천천히 먹어”
일탈이라 말하는 생활이 일상과 버금가게 많아지자 위기가 찾아왔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아무리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 부모님에게 연락하고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개인상담을 요청했다. 내 핸드폰을 꺼내어 엄마한테 전화 걸라고 하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따지듯 묻는다.
“갑자기 엄마한테요? 왜요?”
“학생이 학교를 일주일이나 빠졌는데 연락 한 번을 못하는 게 말이 되니?”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켜 최근 전화 기록에 ‘엄니’라 저장되어있는 번호를 찾아 꾹 누른다. 두세 번 정도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선생님이 엄마랑 통화하고 싶으시다네”
전화를 넘겨받은 선생님이 그만 수업 들어가라 말한다. 교무실 문을 닫고 복도에서 앉아 눈을 감고 차분히 생각한다. 터질 뜻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진정하려 노력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떤 변명을 해야 하나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거짓말로 뻗댈지 고민한다. 현재 상황이 어디까지 나빠졌나 알 수가 없으니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수업에 들어가서도 계속해서 고민과 걱정을 반복한다. 앞으로 두 시간 후에 마주해야 할 상황을 계속해서 시뮬레이션해본다. 지금까지의 내 행동을 생각하면 참 늦게도 걸렸다 생각하여 웃음이 나오다기도 금방 심각해진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나를 찾아올지 생각하며 더딘 시간을 멍하니 보낸다.
종례를 마치고 핸드폰 수거함에 잠들어있는 검은색 핸드폰을 깨운다. 한적한 학교 벤치에 자리를 잡는다. 일단 내 계획은 잘못했다 죄송하다로 일관되게 사죄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엄마 영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게 최우선이다 생각하며 마음을 굳게 먹는다. 한숨을 한 번 깊게 쉬고 전화를 건다.
“엄마...”
“어 어디야? 집이야?”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에 놀란다. 즉흥적으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라는 태도에서 조금 능청스러움을 더한다.
“이제 학교 끝났어요, 아까 선생님하고 통화했어요?”
“어, 왜 학교 안 갔어?”
입이 얼어버렸다. 몇 초에 정적이 흐르고 간신히 뱉은 말은 죄송하다 였다. 대놓고 “학교가 너무 가기 싫어서 조퇴와 결석을 일삼다 걸렸어요”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한 타협은 일단 사과하는 것이었다. 알겠으니 집에 가서 얘기하자 하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긴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돌아온 엄마 영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그녀와 눈을 맞춘다. 어이없다는듯 입꼬리를 올리며 무슨 일이냐 물음에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볼이 부어서 병원에 갔고 병원에서 볼거리일 수도 있다고 해서 학교에 전달했더니 일주일 쉬라고 해서 웬 떡이냐 하고 쉬었다 대답한다. 가만히 듣던 엄마 영이 기가 차다는 듯 웃으며 묻는다.
“학교 다니기 싫어?”
차마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냥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말한다. 분명 그녀의 말투는 “정말 학교가 다니기 싫냐”는 질문보다는 “학교 다니는 게 그렇게까지 싫은 일이냐”고 나무라는 같았기에 솔직할 수 없었다. 와서 밥이나 먹으라는 그녀의 말에 자리를 찾아 앉는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생각보다 싱거운 그녀의 반응에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 머릿속을 비우기로 한다.
습관이 정말 무섭다. 한바탕 사달이 났었음에도 학교 가기 싫은 마음이 어디 간 것이 아니기에 다시 잔머리를 굴린다. 독감 걸린 친구와 음식을 나눠먹고, 날짜를 계산하여 금요일 또는 월요일에 조금이라도 아픈 내색을 하려 갖가지 방법을 다 썼다.
나의 조퇴에 일들 공신은 편두통이었다. 비염으로 항상 막혀있는 코를 이용하여 코맹맹이 소리를 내었고, 아침 조회가 끝나면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을 찾아가 말했다.
“선생님, 아침에 약 먹고 등교했는데 두통이 너무 심해서 힘들어요”
“또? 왜 머리가 그렇게 계속 아플까?”
걱정 반 의심 반으로 나를 쳐다보는 선생님에게 맥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양호실 가서 약 한 번 더 먹고 와도 괜찮을까요? 아침에 한 알 밖에 안 먹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조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절대 집에 가고 싶다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전달해서는 안된다. ‘무조건 버틸 수 있는 부분까지는 버텨보겠다’는 마음을 선생님께 전달해야 한다. 일찍부터 조퇴 의사를 내 비추면 꽤 병으로 오해받기 쉽기에 항상 신중해야 한다. 어지러운 척 머리를 붙잡고 책상에 앉아 엎드린다. 시끄럽게 떠드는 옆 짝꿍을 손가락으로 슬쩍 찌른다.
“나 좀 어지러워서 잠깐 엎드려있을 거니까 선생님 오시면 깨워줘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