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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지 Oct 30. 2022

평소대로 평범하게

 창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손을 머리맡으로 올려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는다. 환하게 쏟아지는 빛에 눈 한쪽을 찡그린 체 숫자를 읽는다. 일곱 시 삼십 분. 안도의 한숨과 함께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을 가볍게 던진다. 어수선했던 움직임이 금세 진정되고 일정한 숨소리가 다시 방을 메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열어 알람을 확인한다. 2시간 후에 알람이 울린다는 예고 문구를 확인하고 다시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올린다. 그렇게 길어봐야 몇 분 지났을까 싶은 순간, 베개 바로 옆에서 머릿속을 어지러 피는 소리와 함께 ‘웅웅’ 거리는 진동이 요란하게 잠을 쫓아낸다. 이럴 리가 없다 생각하지만 이미 흘러버린 시간에 얕은 한숨과 신음으로 아쉬움을 표현한다. 어설픈 균형감각으로 화장실을 찾는다. 언제나 하얀 컵 안에서 우뚝 서있는 하늘색 칫솔을 잡고 이빨을 문땐다. 화한 멘솔향이 입안에 텁텁함을 밀어내고 남아있던 몽롱함을 쫓아낸다. 점점 선명해지는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어제보다 더 구겨져있는 얼굴을 가볍게 두 세대 때린다. 슬며시 올라와 있는 노랗게 익은 여드름과 눈이 마주친다. 칫솔을 입에 물고 두 손으로 가볍게 짓누른다. 입을 헹궜으니 다음은 얼굴에 물을 묻힌다. 손에 물을 받아 얼굴에 몇 차례 끼얹으니 차가웠던 물이 점점 미지근해지기 시작한다. 가볍게 세안용 비누를 손에 덜어내어 얼굴 곳곳에 바른다. 비누거품으로 일정하게 하얘진 얼굴을 보며 나의 참혹한 피부 상태에 감탄한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옆에 놓인 수건을 잡고 얼굴에 가져다 댄다. 거실에서 들리는 인기척을 따라 나간다. 발 뒤꿈치에 있는 굳은살을 뜯으며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는 엄마 영과 마주친다. 그녀 귀에는 검은색 줄 이어폰이 껴져 있고 슬쩍 훔쳐본 핸드폰 화면에는 교회 목사님으로 예상되는 사람이 열심히 떠들고 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간단히 아침인사를 하고 방으로 향한다. 책상에 뒹굴러 다니는 로션을 잡아 얼굴에 펴 바른다. 어제의 내가 얼마나 요란히 잠을 잤는지 보여주는 이불과 베개를 가지런히 펴 놓는다.     

 지금 내 현주소는 방구석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 중졸. 집에서 같이 지내는 엄마 영이 나를 놀릴 때면 항상 들먹이는 호칭이기도 하다.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늘어지지 않기 위해 생활습관을 만들어가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아홉 시 반 이전에는 무조건 기상. 침대는 잠을 자는 시간 이외에는 눕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다.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마구 흐트러져서 언제든 누워도 티가 나지 않는 상태보단 깔끔하게 정리하는 습관을 붙여가고 있다. 나이 열아홉, 일반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대안학교를 선택하여 주변에 많은 동년배들이 바쁘게 입시 준비를 할 때 나는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몇 달 후면 찾아올 스물이라는 수식어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였고, 부담감도 점점 커져간다. 어디 대학 다니냐, 뭐 하냐 묻는다면 달리 말할 거리가 없어서. 무언가를 하고 있긴 하지만 딱히 보여 줄거리가 없다는 생각에 점점 불안함이 커져간다.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 보려 긍정적인 생각을 보태본다. 조금 더 많아질 선택에 기대감을 가져본다. 달라질 식문화와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이제는 나를 피해 갈 것이라 생각하니 꼭 나쁠 것은 없다 위로한다.     

 거실에서 엄마 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밥 먹자 말하는 그녀의 말에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제 끓여놓았던 미역국 꺼내서 데우라는 그녀의 말과 동시에 냉장고로 향한다. 한눈에 보아도 국이 들어있을 것만 같은 냄비를 살짝 열어 확인한다.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킴자 엄마 영의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계란 드실래요? 엄마 먹는다고 하면 세 개 할게요”

“어, 옆에다가 소시지도 같이 좀 해”

내 손에 쥐어주는 소시지를 물에 한번 헹궈 가위로 잘라 뜨거워진 프라이팬 위에 올린다. 순식간에 구워지는 소시지를 옆에 잠시 빼놓고 계란을 굽는다. 어느새 어깨 넘어로 다가온 엄마 영에 흠칫 놀라 뒤돌아본다.

“계란 할 때 기름 좀 넉넉히 둘러 그래야 맛있어”

고개를 끄덕이고 다 떨어져 가는 기름을 한번 더 짜 넣는다. 

“엄마 저 소금 안 할 건데 엄마는 뿌려드려요?”

“아니 됐어 그냥 너랑 똑같이 해”

“막 흩트려서 해도 돼요?”

“어, 알아서 해”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엄마 영이 반찬을 꺼내며 말한다. 설거지거리를 줄이기 위해 프라이팬 채로 식탁에 음식을 놓는다. 때 맞춰 달그락 거리는 냄비에 가스불을 끄고 싱크대 옆에 있는 그릇 두 개에 국을 담는다. 수북이 쌓여있는 고기를 그녀와 내 그릇에 적당히 덜어낸다.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으 뜨거워!”

그릇을 받아 든 엄마 영이 국을 뒤적거린다.

“뭐 이렇게 고기를 많이 했어, 너 더 먹어 엄마 많아”

수저에 올려진 고깃덩어리와 미역 몇 줄기가 내 그릇으로 넘어온다. 국을 떠먹은 엄마 영이 만족스럽다는 듯한 탄성을 내뱉는다. 자신이 끓였지만 이건 정말 맛있는다는 말과 함께 나를 쳐다본다.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빛에 급히 국을 떠먹고 적당히 동조한다.

“그러게요 엄청 시원하네요”

자신은 간이 삼삼한 게 좋다, 음식을 짜게 먹으면 안 된다 말하는 엄마 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대안학교를 수료하고 집에서 자기 계발과 대학교 입학을 준비한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판데믹 상황과 휴식을 이유로 여느 때와 같이 무상 숙식을 제공받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집을 비운 형제들의 빈자리를 채우려 노력하는 중이기도 하다. 대학부터 군대, 그리고 출가를 위장한 가출까지. 형제들의 다채로운 자리비움으로 다섯 사람의 공간을 고려한 집은 싸늘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내 담당은 인기척이었다.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 집에 사람 흔적을 남긴다. 택배나 가스 점검, 집배원을 맞이하고 엄마 영이 허락하는 선까지 가사노동을 한다. 영의 습관과 생활방식이 완전히 자리 잡은 부엌에서는 꽤나 많은 제약과 규칙이 정해져 있다. 물이 튀지 않게 설거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요리를 하면 항상 깨끗이 닦아야 한다. 가스레인지 화구 주변 음식물을 닦고 나도 모른 사이에 부엌 타일에 튀어있는 빨간 자국들을 지운다. 그리고 열에 한 번쯤은 미처 닦지 못한 음식물이 하얀 대리석에 착색되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OO아 일로와 봐, 엄마가 말했잖아 착색되지 않게 잘 닦으라고. 이거 봐 이게 뭐야”

 빨래를 널거나 개는 방법도 하나하나 영이 정해놓은 방식이 있다. 수건은 반을 접고 양 옆을 삼등분으로 말아 접는다. 셔츠는 옷걸이에 널기 전 목에 있는 카라를 잡고 세로로 길게 한 번 접어 바닥에 20분 정도 놔둔다. 옷이 꾸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 설명한다. 니트류에 옷은 절대 옷걸이에 걸어서 말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 영이 아끼는 옷들은 절대 건조기에 넣어서는 안 된다. 일이 많아 아침 일찍 나간 엄마 영이 메세지를 남겨 놓는다.

“도롱아 빨래 좀 해” (2시 16분)

“네” (2시 18분)

“빨래했어? 거기에 엄마 셔츠하고 티 몇 개는 건조기 넣으면 안 되는데” (4시 5분)

“네, 엄마 옷은 다 꺼내서 그냥 널었어요” (4시 5분)

“고마워 (하트 곰돌이 이모티콘) (4시 7분)     

 집에 누군가가 들어오면 나가서 반기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 중이다. 함께 지내는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아빠, 가끔씩 집에 오는 형에게는 조금 차분한 목소리와 경황 되지 않는 손동작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엄마 영에게는 경보 수준에 빠른 걸음과 함께 한층 높은 톤으로 경박스러움을 더한다. 오후 내내 말할 사람 없이 지냈기에 항상 엄마 영이 집에 들어오는 일곱 시에서 아홉 시 사이에는 방언이 터진다. 내 일상을 공유하는 건 기본이고 영의 하루를 물으며 나의 얄팍한 지식들을 공유한다. 입이 조금 풀린다 싶으면 간단한 요구사항부터 사사로운 감정까지 모두 털어놓는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 영을 유심히 관찰해서일까 그녀의 감정을 읽는데 능했다. 정확하게는 눈치를 많아 봤다. 막내라는 조건이 상황판단력과 순발력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었고, 현재 집에서 노는 백수에게 분위기를 읽는 능력은 너무도 중요한 생존능력이 되었다. 

 망고 땡. 엄마 영이 요즘 나의 삶을 정의하는 단어다. 집에서 하고 싶은 거 하며 용돈 받아 쓰는 내 인생이 상팔자다 말한다. 딱히 반박할 수 없는 말에 잠시 침묵하고 최대한 나를 변호하려 노력한다. 매달 공짜로 용돈을 받아쓰는 것도 능력이다 되받아치며, 그 돈을 받기 위해 적당한 아양과 가사노동의 양을 철저하게 계산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대꾸한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에 매번 엄마 영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그래 너 잘났다. 입만 살아가지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째리는 영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영의 손을 살짝 내 몸 쪽으로 끌고 온다. 별로 화를 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안심하고 계속 말장난을 이어간다.

“말은 그렇게 해도 막상 없으면 심심할 거면서 센 척하시네요”

얕은 한숨과 영이 허공을 응시한다.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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