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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지 Oct 30. 2022

거짓말 그리고 숨바꼭질

학교를 다니면서 제대로 배운  하나 있다면 건강한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상황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좌지우지할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장소 낡은 버스들이 뿜어대는 매연냄새가 고작 두어 시간 만에 달라질  없지만, 일찍 조퇴를 하고 교문밖을 나설 때면 이보다 맑고 상쾌한 공기가 있을까 싶어 콧구멍을 마음껏 벌렁거렸다. 언제든  먹을  있는 주먹밥도 한적한 버스정류장에 앉아 혼자서 까먹으면 세상을  가진 것만 . 머리 아프다 연기하느라 정말로 어질어질했던 정신이  어느 때보다 뚜렸해졌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 아무리 몸이 아프더라도 이겨낼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생긴다. 평소보다 발걸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평소 같으며 너무 멀다 판단되어 버스를 타고 가는 병원을 별거 아니라는  순식간에 걸어간다. 한적한 병원에서 자주 보던 의사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청진기를 잡고 이번에는 어디가  좋아서 왔냐 묻는다.

“코가 너무 불편해서 잠을 못 자요. 그리고 머리가 지끈거리고요”

당연히 그럴 거라 고개를 끄덕이는 의사 선생님이 석션을 잡고  코를 마음껏 후빈다. 무심하게 간호사에게 청진기를 넘기고 컴퓨터로 이것저것 적어 넣으며 한마디 한다.

“비염 때문에 콧물이 좀 있네, 약 잘 먹고 잘 쉬어”

고개를 끄덕이고  간호사가 안내하기 전에 치료실을 찾아 들어간다. 콧구멍 모양대로 구멍이 뚫려있는 치료기기에 간호사가 고무마개를 씌운다.

“삐 소리 날 때까지 코에 넣고 있으면 돼요”

하얀 증기와 함께 조금씩 느껴지는 약품 냄새가  속으로 들어온다. 2분정도 시간이 지나자  켜져 있던 빨간불이 꺼진다. 옆에 놓은 휴지로 코를   훔치고 카운터로 향한다.

“학교에 진단서 내야 해서 하나 떼주시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간호사가 종이 두장을 건넨다.

“이건 약국에, 그리고 이건 가져가시면 돼요”

먹지도 않을 약과 함께 병원비가 총 팔 천원이 나왔다.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한숨을 쉰다. 오늘은 가성비가 너무 안 좋다 구시렁거린다. 좀 더 일찍 나올 것을 너무 천천히 나와서 생각보다 부족한 시간에 발을 한 번 쿵 구른다.


 학교를 나가기 싫어하는 학생이 학업성적이 좋을  또한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 잘하는 동네에서 시키는 대로 해왔고, 서울을 벗어난 후로 전보다 쉬워진 시험 난이도에 어설프게 하루하루 중학교를 다니고 있다. 선행이라 말하며 다녀놓은 학원이 있어 입학할 때는 공부  한다 알았아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나는 밑천에 보여줄 점수보다 떠들어대는 입이 점점 방정맞아지고 있다. 가끔 나와  얘기가 없어 이것저것 말을 꺼내는 친구들이 신기하다는  묻는다.

“너는 학원도 안 다니고 어떻게 성적이 좋아?”

“그냥… 그냥 집에서 해… 그리고 나 요즘 성적 많이 떨어졌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끊임없이 떨어지는 성적에 결국 적색 경고등이 들어왔다. 이제는 “제가 답안지를 밀려 써서 그랬나 봐요. 맞춤법을 틀렸는데 선생님이 추가 점수 없이 다 틀리게 채점하시더라고요”라는 말이 효과가 없을 정도로 점수가 낮아졌다. 차마 보여주기 민망할 정도의 점수가 내 이름 밑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중학교 1~2 학년 때는 고등학교를 골라서 갈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되던 성적이 이제는 평범 그 이하를 달리고 있다.

 학업에 조금 더 신경 써야 된다는 평가도 고등학교의 선택폭이 줄어드는 것도, 선생님들의 잔소리도 다 괜찮았지만 하나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은 엄마 영이 지금 이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매번 시험이 끝나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꾹 눌러놓았던 걱정과 근심이 터지곤 했다.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싸인과 한 줄 평을 써 가지고 오라는 선생님의 경고가 떨어졌다. 너네들이 아무리 글씨를 어른처럼 써도 선생님은 다 알 수 있다는 한마디에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설프게 글씨를 흉내 냈다가는 선생님과 엄마 영의 만남을 재촉할까 두려워 약간의 모험을 하기로 한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국제 뉴스를 보고 있는 아빠를 찾는다. 내 학업성적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단 한 번도 성적표 가져오란 소리를 한 적이 없기에 승산이 있다 생각한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3분에 2 가량 접은 종이를 내민다. 이게 뭐냐 묻는 아빠의 말에 당당하게 얘기한다.

“선생님이 이번 학기 저에 대해서 평가해주셨는데 부모님 보여드리고 사인 받아 오라고 해서요”

꾸깃한 종이에는 “몸이  좋아 학교를 자주 빠져 걱정스럽지만 학업을  따라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많은 관심과 지도 부탁드립니다.” 라는 간결한 문구가 적혀있다.

그냥 문제없다는 소리예요. 문제 있으면 진짜 길게 써주더라고요. 그냥 여기 밑에다가 ‘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이렇게 써주시면 돼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볼펜을 잡은 아빠가 반듯한 글씨로 글을 써 내려간다. 한 글자씩 쓰일 때마다 만족스럽다는 웃음이 점점 커져간다. 아빠에게 다시 받아 들은 종이를 펼치자 그동안의 성적이 쭉 펼쳐진다. 궁금해서라도 슬쩍 들춰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지만 종교 말고는 관심이 없는 아빠를 생각하니 그럴 수 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참 단순해서 좋은 면도 있다 생각하며 종이를 도덕 교과서에 꽃아 가방에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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