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나가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레 엄마 영의 믿음도 커져간다. 교회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모임에 부진행자를 역할을 맡으며 교회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에 맞춰 나에게도 새로운 제안이 들어온다. 자신과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함께 성경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자 한다. 여러 사람들의 간증이 적혀있는 책을 엄마 영이 들이민다. 한 장을 넘기니 성경 말씀과 자신의 삶을 연관 지어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이거 하면 얼마나 걸리는데요?”
“글쎄, 짧으면 30분이면 끝나지 않을까? 더 짧게 할 수도 있고.”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엄마 영과 대화하는 건 나쁠 것 없었기에 일단 알겠다 한다. 매주 수요일 금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영이 방을 떠난다.
이틀 후 영과 저녁을 먹고 안방으로 향한다. 책상에 엄마 영과 마주 보고 앉아 책을 펼친다.
“여기 나와있는 성경말씀 하나 읽고, 간증 하나 읽고, 그리고 질문들 나누고 그러면 되는 거야 알겠지?”
고개를 끄덕이자 영이 성경말씀과 간증을 읽기 시작한다. 천천히 읽어 내려간 성경 말씀을 내 방식대로 요약 하지면 교만하지 말자였다. 간증 내용은 사업을 잘해서 평생 떵떵거리며 살다 부도가 나 경비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 한 60대 중년의 이야기였다. 사업이 다 망하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깨달았고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말한다. 지금은 남의 차 뒷자리에 뿌려진 토사물을 닦고 있음에도 하나님을 찾아 교회로 나올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적혀있다. 잔잔한 탄성과 함께 간증 바로 밑에 적혀있는 질문들을 엄마 영이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는다.
“이중에 하나 마음에 드는 거 정해서 하자 뭘로 할까?”
천천히 살펴보다 가장 첫 번째에 있는 질문을 가리킨다.
“당신이 정죄하는 이는 누구인가요?”
잠시 생각하던 엄마 영이 입을 연다.
“엄마는 어렸을 때 엄마가 엄청 잘난 줄 알았어. 내 생각이 다 맞는 줄 알았는데, 그건 엄마 기준에서 그런 거더라고. 지금은 너희 누나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다 엄마 잣대로 판단하는 거지 뭐. 아빠는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 답답하고, 누나는 엄마가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일을 가져오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형은 뭐 곧 군대 가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고. 그런데 가끔씩 엄마도 욱하고 화가 올라와. 그게 엄마의 교만인 것 같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를 보며 엄마 영이 너는 어떻냐 묻는다.
“저도 자꾸 남을 함부로 판단하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조심해야 되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순간 욱하면 생각하기 쉬운대로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그게 편하고 쉬우니까… 특히 누나 형한테 그러는 것 같아요. 질투? 짜증? 그런 것들이 느껴질 때면 딱히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그런 사람이다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오늘은 첫날이니까 여기까지 하자는 말과 함께 엄마 영이 간단하게 기도를 한다. 기도 내용은 이렇게 아들과 함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고, 나의 교만으로 인해 남을 정죄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우리 가족들을 잘 보살펴달라 한다. 간결하고 조금은 식상한 내용이지만 눈앞에서 엄마 영의 목소리로 직접 기도를 들으니 뭔지 모를 울림이 계속 맴돈다. 기도를 하다 낮은 소리를 내며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엄마 영의 모습에서 뭔지 모를 감정이 느껴진다. 간절함인지 신중함인지는 아니면 그 중간에 어디쯤에 있는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에 생각이 깊어진다.
누가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그녀와의 약속이 무려 석 달이나 이어졌다. 피곤한 날에는 간소하게. 말이 길어지는 날에는 한 시간도 넘게 떠들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부터 옛날 같았으면 네가 알 것 없다 말하며 넘겼을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할아버지가 투자를 잘못하여 집이 망한 이야기부터 현재 그녀의 걱정까지 조금씩 얘기해주었다. 같이 아빠의 험담을 하기도 하고, 집을 나가 지내는 누이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누이의 용감함을 칭찬하기도 무례함을 욕하기도 하며 가족들 이야기를 꽃피운다. 그리고 이런 자연스러운 분위기속에 나도 조심히 나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엄마 사실은 어렸을 때 엄마가 하지 말라는 짓 뒤에서 몰래 엄청 많이 했어요”
“하지 말라는 짓?”
“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그때부터 엄마 지갑에 돈을 조금씩 슬쩍했어요”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린다.
“그 돈으로 뭐 했는데?”
“유희왕 카드 사고 형이라 피시방 다녔죠. 엄청 치밀하게 계산했어요. 항상 돈이 얼마 있나 세어보고 가져갔는데. 오만 원이나 십만 원으로 딱 떨어지면 방금 뽑은 돈 일수도 있어서 안 건드렸고, 매일매일 계속 확인하면서 돈이 줄어있으면 그때 빼갔어요. 보통 현금을 뒤적거린 기억이 있어야 돈이 없어졌을 때 어디서 떨어뜨렸나 하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녀가 실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피시방은 한 번 가면 여섯 시간도 넘게 게임하고 그랬어요. 그러면 온몸에 담배냄새가 배이는데 그럴 때는 패딩을 목 끝까지 채우고 미친 듯이 뛰었어요. 그러면 땀냄새로 담배냄새가 좀 가려지거든요. 어설프게 페브리즈 같은 거 뿌리면 걸리니까. 그리고 땀 흘리면서 들어오면 옷도 바로 빨래통에 넣을 수 있어서… 아, 그리고 건강한 음식만 먹이려고 라면 같은 거 못 먹게 할 때는 매번 편의점에서 사 먹고 들어왔고…”
엄마 영이 그만하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내 말이 적잖이 충격이 있었는지 멍한 눈으로 입꼬리를 올란체 생각하던 엄마 영의 입에서 조용한 한마디가 새어 나온다.
“그러게… 못하게 한다고 안 하는 게 아닌데”
시간이 길어지자 정기적인 나눔이 조금씩 일상 속으로 자리 잡았다. 굳이 자리를 잡고 책을 피지 않아도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침대에 누워서 또는 가볍게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일상을 나누고 그 안에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섞는 게 점차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어느 주말 여유로운 오후, 내 방으로 찾아온 엄마 영이 침대에 조용히 앉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눕혔던 몸을 일으키고 하고 있던 핸드폰을 꺼 뒤집어 놓는다.
“엄마가 그냥 할 말이 있어서 왔어… 그냥 오늘 목사님 말 듣다가 너한테도 얘기하고 싶어서. 알다시피 엄마가 세 명 다 계획하고 갖은 아이가 없거든? 그리고 누나, 형 낳고 나서 이제 좀 살만하다 싶었는데 네가 생겼어.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시선을 방 벽 쪽으로 돌린 채 계속 이야기해 나간다.
“혼자 테스트기 해보니까 두줄이 나와서 바로 병원에 갔어. 사실 지우려고 했거든. 병원 가니까 주사 맞고 내일 오면 땔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갑자기 막 눈물이 나오더라. 무서워서 그랬는지 양심에 찔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엄마가 엉엉거리면서 주사 맞고 안 와도 괜찮냐 물으니까 의사가 아직 점만 해서 좀 더 생각해 봐도 괜찮다 달래주더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도 자식이 네 명인데, 세명은 키울만하다고 하더라? 근데 그게 엄마한테는 조금 위로가 된 것 같아. 그래서 집에 돌아가서 아빠 정관 수술 약속하고 낳기로 했어”
그냥 담담히 엄마 영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열심히 표정을 숨겼다. 지나가면서 형이 이미 한차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해준 것이 도움이 되었다. 2층 침대를 함께 쓰는 형이 위층에서 자는 나에게 뜬금없이 말을 건 날이었다. 자신도 아빠를 통해 알았다 말하며 자기를 임신했을 때 엄마가 임신한 줄 모르고 감기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병원을 찾았다 했다. 의사는 기형아가 나올지 모르니 임신중절을 권했고 아빠는 성모병원 의사가 그게 할 소리냐 하며 한바탕 소동이 났었다는 이야기. 그냥 그렇다 말하는 형의 목소리는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잔잔했다. 위로를 해야 할지 아니면 공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으로 대답했다. 아마 누군가 얘기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라 생각했고 그게 나여서 참 어색하면서도 기뻤던 그 순간이 머릿속에 맴돈다.
이런 얘기 괜찮냐 묻는 엄마 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촉촉한 눈가로 진지한 표정과 웃음을 섞어가던 엄마 영이 내 등을 가볍게 쓸어주고 떠난다. 그날 내가 엄마 영에게 물었던 질문은 딱 한마디였다.
“혹시 후회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그 대답은 아주 진솔하고 명료했다.
“그럼, 엄마는 너 없었으면 엄청 심심하고 외로웠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