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첫날은 괜찮았다.
모든 것에 서툰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처음이니까 틀려도 사고 쳐도 괜찮다 늘 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그런 상태로 계속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자 조금씩 우울해졌다. 외계어 같은 영어를 매일 들으니까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고,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재미도 없었고 힘들었다. 물론 적응기라 그랬던 것이겠지만, 정말 나중엔 괜찮아질까 싶었다.
황당한 실수도 잦았다. 외국이라서 만 나이를 쓰는데 한국 나이를 말해서 애들을 당황시키고, 선생님 말씀을 못 알아들어서 점심시간 끝나고 혼자 교실에 남아있기도 했다. 사실 그쯤되니까 실수하는 게 너무너무 불안해져서, 무슨 뜻인지 대충 아는 말도 다 번역기를 돌려보며 일일이 확인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첫날 이후로 더 재밌어질 줄 알았던 수업이 점점 재미도 없어지고 지루해졌다. 공부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니었고 난이도는 오히려 한국보다 조금 더 쉬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분은 소통의 문제였다. 그래서 소통이 별로 필요 없는 체육(P.E) 시간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런데 체육마저 재미가 없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다는 게 이런 것일까.
피구(dodgeball)를 한다 해서 기대했더니만...! 호주 국제학교 피구는 또 다를 줄이야...
두 팀으로 갈라져서 공을 상대팀 플레이어들에게 맞추어 하나씩 탈락시킨다는 전반적인 규칙은 같다.
차이점은 우리나라는 하나의 공을 사용해서 맞추고 탈락되면 밖에서 수비를 하는데, 이곳에선 가운데에 놓인 공 대여섯 개를 선착순으로 집어 들고 막 던지는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탈락되면 틀 밖에 줄을 서는데, 자신의 팀이 상대팀 한 명을 맞추거나 상대팀이 던지는 공을 잡으면 다시 들어가 플레이할 수 있다.
날쌘 애들이 공을 먼저 낚아채고 마구잡이로 던졌다 탈락됐다가 다시 들어오니까 너무 혼잡했다.
느린 편인 내가 먼저 공을 잡는 경우는 드물었다. 무엇보다 한국식(?) 피구를 하는 중 요리조리 피해 다녀서 혼자 남았을 때의 그 짜릿함이 없다는 게 참 아쉬웠다.
이렇게 얼렁뚱땅 일주일을 마무리하고 너무 속상했다.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이런 기분일까. 모두 다 정말 능숙하고 익숙한데, 영어도 잘하고... 나 혼자만 뒤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나 말고 다른 한국 친구들은 다 알아듣는데, 그 애들은 서양인도 아닌데 영어를 왜 이리 잘하지, 생각하며 늘 시들해졌다. 적응기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나중엔 소용이 없었다. 여긴 나랑 안 맞나 보다, 굳이 한국에서의 모든 걸 접고 포기하고 왔나 보다, 바보같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눈물이 났다.
기분이 영 안 좋아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그림을 그렸다. 난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림을 그리곤 한다. 거창하고 대단한 그림은 아니더라도 낙서처럼 깨작거리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우리 가족이 다 같이 껴안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옆에 조그맣게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이런 식으로 최대한 나 자신을 위로하려고 써놓았던 것 같다.
좀 나중에 엄마께서 내 그림을 보시고 예뻐서 모양대로 오려서 옷장에 붙여두셨다.
그러고는 그림처럼 우리 가족 다 같이 꼭 서로를 안아주며 토닥여줬다.
(그때 그린 그림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 사진을 못 찾았네요.. ㅜ)
가족들의 햇살같이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받은 후 깨달았다.
그래, 어차피 돌아가나 머물나 스테이지 1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스테이지 100까지 열심히 가봐야지!
아자 아자! 파이팅!!
그렇게 난 다시 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2년 후... 교장선생님 연설 중...
'하~암... 지루해라... 또 우리 학교 역사 설명 중이시네. 저분이 설립하셨고, 어쩌고저쩌고.. 휴, 곧 끝나겠다."
영어 리스닝 만렙이 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_다음화 예고
그래, 큰 거 하나 나올 줄 예상....
.. 하지 못했다. 비상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달리기 대회에서 늘 뒤에서 2등이나 운 좋으면(?) 일등을 하고, 조금만 걸어도 헥헥 거리는 저질체력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수영 + 달리기
=?
(감사합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 또다시 업로드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