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훈 시작이다!
학교를 다닌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쯤, 체육시간에 선생님이 곧 학교에서 바이애슬론을 할 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게 뭔지 몰라서 들어보니, 운동장 두 바퀴랑 놀이터를 한 바퀴, 수영장 랩 일곱 번 그리고 또다시 운동장을 뛰어 결승선으로 오면 끝나는 운동 경기였다.
한마디로, 그냥 미친 듯이 운동하란 뜻이었다. 젠장, 뛰는 건 딱 질색이다. 수영은 더더욱 최악이었다.
그래, 큰 거 하나 나올 줄 예상....
.. 하지 못했다. 비상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달리기 대회에서 늘 뒤에서 2등이나 운 좋으면(?) 일등을 하고, 조금만 걸어도 헥헥 거리는 저질체력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수영 + 달리기
=?
그냥 쓰러질 것이 뻔하다.
어떤 애가 안 해도 되냐는 질문을 해서 내심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했지만 예상대로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역시 운동을 힘들게 시킨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었구나, 어떻게 고작 4학년 짜리한 테 이 어마무시한 걸 시킬까 절망하던 차에, 힘들 것 같으면 동성 파트너를 구해서 수영과 달리기 중 하나만 해도 된다는 한 줄기의 빛이 들어왔다. 휴.. 십년감수했단 생각이 들었다.
또 다행인 건 T양(학교 첫날에 담임선생님이 친하게 지내라 붙여준 인도친구)과 자연스럽게 파트너를 하게 됐고 그 앤 달리기가 싫다 해서 무사히 바라던 데로 내가 달리기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파트너까지 정해졌다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아까 말했듯이 나의 최대 단점 중 하나는 운동신경이 코딱지만큼도 없단 것이다. 그렇게 운동을 못해도 좋아하기라도 하면 괜찮지만, 안타깝게도 난 운동에 대한 열정은 없고 집에 조금이라도 더 박혀있는 것에 열정적인 애였다. 그래서 큰 결심을 했다. 이제부터 특별훈련이다!!! 집 옆에 마침 차가 잘 안 다니는 넓은 도로가 있어서 훈련하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달리기 잘하는 아빠와 매일 나가서 두, 세 바퀴씩 뛰기로 했다.
.... 장소랑 파트너랑 의지까지 있으면 뭐 하나, 발이 안 움직이는데. 나의 최대 단점 중 둘째는 의지만 끓어 넘치고 실행력이 거의 없단 것이다. 첫날부터 나가기를 질색하는 날 아빠께서 억지로 끌고 가셨다.
그래도 나갔으니까 꽤 열심히 했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힘들어도 절대 멈추지만 말기'
아빠는 멈추지 않으려면 빠르게 가는 게 아니라 페이스 유지가 중요하다고 계속 강조하셨다.
그렇게 거의 며칠 동안 우리는 저녁에 계속 같이 뛰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귀찮으셨을 텐데 아빠께 감사하다.
바이애슬론을 하기 며칠 전에 연습 경기를 세 번이나 뛰었다.
정말로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아니 무슨 연습을 세 번이나 하나 이해가 안 됐다.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기는 개뿔 힘만 더 빠져서 집에 들어가는 순간 바닥에 쭉 늘어졌다.
그리고 잠깐 꽤나 웃픈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연습 경기 둘째 날에 T양이 깜빡하고 수영복을 안 가져와서 같이 뛰기로 했다. 처음에는 적당한 속도로 뛰다가 점차 속도를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어라?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까 T양이 보이지 않았다. 어딨지 하며 뒤를 돌아보니 헥헥거리면서 걸어오는 T양이 보였다.
아주 당황스러웠다. 아직 한 바퀴도 안 돌았는데...
솔직히 좀 미안하지만 뛰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저렇게 뛰는 것도 대단하다 싶었다. 그 순간 난 T양이 수영을 선택한 게 이해가 되면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아, 나보다 조금 못하는 애도 있구나, 약간 안심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그냥 그 애 속도에 맞춰 천천히 갔다.
드디어 대망의 진짜 바이애슬론 경기날이었다.
출발하라는 신호가 땅 울리자, 팀으로 하는 여자애들이 우르르 뛰어갔다. 다른 여자애들이 빠르게 뛰어갈 때 난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천천히 헛둘헛둘 뛰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별 효과는 없이 평소처럼 중하위권으로 들어왔다. ^^ 역시 원래 잘 뛰는 삐쩍 마른 호주여자애들이 앞질러가고 몇몇 아이들은 그냥 될 대로 되란 듯 수다 떨며 가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놀이터는 좀 구석에 운동장과 따로 떨어져 있었기에 사람들이 볼 수 없어서 대부분이 걸어갔다.
수영장에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던 T양에게 바통을 터치하고 벤치에 앉아 대기하며 쉬었다. 뜨거운 햇빛 탓에 딱히 쉬었단 느낌은 안 들었지만 곧 T양이 수영을 마치고 다시 난 달리기 지옥으로 들어가야 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온 힘을 다해 결승선에 들어갔다. 곧바로 난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근처에 쭈쭈바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고 있어서 후다닥 달려가 받았다. 참 감격스러운 맛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하이라이트였다.(5학년과 6학년 때도 쭈쭈바만을 위해 뛰었단 것은 안 비밀. 근데 6학년 때는 쭈쭈바가 없어서 대실망.)
T양이 옷을 갈아입고 오자 내가 저기 쭈쭈바 있다고 너무 흥분해서 T양이 간신히 진정시켰다.
구경 온 엄마께서 우리 둘 사진 찍어주시고 우린 다시 교실로 올라갔다.
결론: 그냥 쭈쭈바 먹어서 좋았다! (물론 열심히 해서 뿌듯한 것도 있었고 ㅎ)
다음화 예고: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너무 심하다. 도대체 K양은 T양한테
왜 그럴까... 그래, 괴롭힘이 외국에는 없단 법은 없지.
한 번은 미술시간에 화장실에서 K양이 T양과 놀지 말라고 하고 자기냐 T 양이냐고 계속 물어본다. 정말 스트레스다. 아무 말도 못 하는 겁쟁이인 내가 한심해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