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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웰컴투 AIS

And 8교시의 지옥

by 작은 브러시

국제학교에 간 첫날이었다.

괜히 속이 울렁거리고 덜덜 떨렸다. 싱가포르에 온 지 2주 만에 처음 가는 거여서 마음에 준비가 된 줄 알았는데, 안 됐나 보다. 외국 애들이랑 어떻게 얘기하지? 친구는 만들 수 있을까? 중국어까지 배운다는데 어떡해? 너무 불안해서 그날 아침에 엄마께 한참을 물었던 것 같다.

그러자 엄마께서 말씀하셨다.

"괜찮아, 처음이잖아. 체험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냥 며칠 재미로 놀러 갔다고 생각해 봐. 중국어는 시험 빵점 맞아도 아무 말 안 할게."

그 말을 듣자 그나마 안심이 됐다. 못해도 상관없다, 그냥 체험이다, 괜찮다....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교실로 들어서자 3초 후,

반애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사실 그날 다른 전학생도 있었던 터라 다들 나에게 관심을 주진 않았다. 뭐, 오히려 좋았다. 그랬다면 부담스러워서 미쳐버렸을 거다. 그래도 은근 관심받는 걸 좋아해서 그 상황을 내심 즐기긴 했다. 처음 온 신입생이니까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으신 담임쌤이 교복에 빨간 리본을 달아주셨다. 쌤은 다행히

친절하셨다. 스타일이 꽤 화려하시긴 했지만;^^


책상에 앉자 몇몇 여자아이들이 날 둘러싸고 질문을 퍼부었다. 나는 어설픈 영어실력으로 간신히 코리안이라는 것을 증명(?)하곤, 한 일본 여자아이와 인도 여자아이를 따라서 학교구경을 좀 더 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잘 못 알아들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그런데 정말 1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와— 정말 무슨 외계어를 듣는 줄 알았다. 칠판에 쓰여있는 글자를 읽어보려 해도 머리만 더욱 복잡해졌다. 다른 애들은 모두 이해하는 듯이 손을 들고 블라블라 발표를 해댔다. 뭔가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을 아시는지라 중간중간 번역기를 돌려주셔서 감사했다.


몇 차례 수업 후, 약간 멍해지고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뭘 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엄청 큰 회오리가 다 휩쓸고 간 느낌. 너무나 피곤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외국어를 들어보긴 처음이었다. 지금이 고작 첫날이고 이제부터 시작이란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그나마 수업 사이에 간식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기 호주 국제학교 점심시간은 놀이터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고 노는 것이었다. 사물함에서 도시락을 꺼내 들고 놀 애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같은 반 인도 여자애가 같이 놀자고 했다. 이제부터 그에의 이니셜을 따서 T 양이라 부르겠다

알고 보니 담임쌤이 시키신 거였지만 어찌 됐든 고마웠다.

같이 점심을 먹은 후 T양과 놀이기구에 매달리면서 놀았고 꽤나 재밌었다. 첫날에 바로 외국친구가 생기다니! 완전 행운이었다. 하지만 더 럭키였던 것은 따로 있었다.


T양은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센스 있게 다른 반 한국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마침 반에 한국 친구가 없어서 절망하던 차였는데 정말이지 기뻤다.

그렇게 수다쟁이 카피바라와 카리스마 바퀴(두 친구의 별명)를 만나서 실컷 놀았다.


점심시간 후, 반애들이 영어수업을 할 때(걔들한테는 국어)

나와 소수의 아이들은 영어보충반 EAL(English as an additional language)에 따로 가서 수업을 들었다. 다른 두 반과 섞어서 수업했는데 마침 카피바라도 있어서 반가웠다. 평상시 수업보다 비교적 쉽고 재밌었다.

오후 간식시간을 보내고는 중국어 수업을 하러 갔다.

또다시 카피바라를 만났다. 대박, 너무 좋았다. 숫자 한자도 잘 못 써가지고 어떻게 배우지 하고 긴장했는데 단어 하나씩 차근차근 배워서 오히려 약간 재밌었다.


그렇게 약 8시부터 3시까지 약 7시간의 학교생활이 끝나고 난 녹초가 돼있었다. 와.. 불태웠다... 힘들었지만 정말 뭐랄까, 싱가포르에서 외국애들과 학교를 다니는 나라니.. 약간 우쭐해졌다.


그때는 몰랐다. 이곳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미니 메시지 to. 독자 여러분

국제학교에 다닐 예정인 분들,
물론 새로운 환경이니까 처음엔 꽤나 힘들 거예요.
저는 국제학교 일주일 동안은 맨날 우울하고 학교 가기 싫었거든요.(그 감정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쓸 예정) 영어도 너무 힘들고, 수업도 어렵고 여러 가지 이유로 너무 속상했거든요.
그래도 2 주되니까 적응되고 나아지더라고요.
6개월 되면 꽤 많이 익숙해졌고 1년 넘으니까 다니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졌어요. ㅎㅎ
처음에 힘든 건 당연하니까 좌절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 갖고 다니다 보면 괜찮아져요!

그 밖에 새로운 시작을 코 앞에 두고 계신 분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긴장되고 두렵죠.
막상 기대하다 실망도 하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의외의
행복이 있기도 하잖아요.
저도 올해 중학교 가는데, 진짜 떨리거든요.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나만 떨린 건 아니겠구나 싶더라고요.
나만 이렇게 불안한 거 아니다, 처음이니까 당연히 떨릴 수 있다, 좋은 일 많을 거다 생각해 보자고요.
우리 다 같이 새 출발을 위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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