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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l 17. 2022

간소, 검소의 사이에서


우리 집 설거지 담당인 남편이 저녁을 먹은 후에 설거지를 하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내가 쳐다보자 "손이 미끄러워서~" 나는 남편이 다쳤을까 봐 "조심해~"라고 말을 했다. 그때만 해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나중에 설거지가 된 그릇을 그릇장에 정리하려고 보니 그릇이 깨져있었다. 오 마이 갓! 마다 열심히 설거지를 했던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 그런데 겨우 그릇 하나를 깬 것 가지고 계속 잔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매일 깨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하필 나에겐 아끼던 그릇이 깨진 것이다. 가지고 있는 중에 가장 비싼 그릇은 아니었지만 가장 큰 그릇이었다. 크고 투박하지만 감성 있는 그릇이었다. 특히 그 그릇은 커서 삼계탕을 담아내기에도 좋았고(하필 어제는 초복이었다), 요리 중에 자박자박 국물 있는 메인 요리를 담아내기에 안성맞춤인 그릇이었다. 벼르고 벼르다 산 그릇세트 중에 메인 그릇이었는데 하필 깨졌다. 왜 많고 많은 그릇 중에 그 그릇이 깨진 걸까!(꼭 그러더라)



올해 벌써 컵이 2개가 깨지고 그릇이 2개가 깨졌다. 단기간 4개가 사라졌다. 그릇이 깨진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예쁜 것 일까? 아니면 별로 원하지 않던 그릇일까? 누가 더 많이 깼을까? 그 4개 중에 2개는 아끼던 것이고, 2개는 그냥 그랬던 것이니 랜덤으로 깨지는 것 같다. 내가 그릇을 3개 깨고. 남편이 1개를 깼으니 내가 더 많이 깼다.



사실 이 집을 떠날 때 정리하려던 그릇이 몇 가지가 있었다. 이사를 많이 다니는 터라 중간중간 그릇을 정리하며 지냈어야 하는데 원래 가지고 있던 그릇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가지고 있는 그릇 80%는 이미 너무 잘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리할 것없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흘러 흘러 결혼한 지 10년 차 되다 보니 이제는 좀 정리해도 되겠다 싶은 것, 아니 이제 그만 사용하고 버리고 싶은 몇 가지가 생겨났다.




그런데 하필, 오늘 깨진 그릇은 가진 것 중에 가장 신상 축에 속하는, 앞으로 10년을 더 사용하고 싶었던 그런 그릇이다. 아... 정말 아까워라.





그릇이 또 깨지다니...









간소라는 말과 검소라는 말은 비슷한 듯 보여도 전혀 다릅니다. '간소'는 불필요한 물건을 도려내고 또 도려내가는 것이다.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분별해가는 것이지요. 한편 '검소'란 가치가 낮은 물건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검소한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자신의 생활 중에서 무엇을 간소하게 하고 무엇을 검소하게 할 것인가, 그것을 분별하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갖고 있는 것 중에 불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진짜로 마음을 채워주는 것은 무엇인가, 항상 그런 의식을 갖고 살아가면 집 안은 저절로 산뜻해집니다.



                       일상을 심플하게,  p34,35, 마스노 순묘




얼마 전 마스노 순묘의 책을 읽다가 간소와 검소를 분별한다는 제목의 글을 읽게 되었다. 이 글에서 마스노 순묘는 검소와 간소의 차이를 가치로써 설명하는데, 검소란 가치를 따지지 않고 사는 것이기에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반면, 간소란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 가치 있는 것들을 골라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했다.



나는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분명 간소하게 살고 싶었다. 조금 가격이 있더라도, 마음에 꼭 드는 것들을 사서 오랫동안 사용하고 싶다. 대신에 물건이 많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가지고 있는 물건이 많은 편이다. 반면에 남편은 검소하게 살아간다. 원래 물건에 대한 욕심도 없을뿐더러 비싼 물건을 사는 법이 거의 없다.



분명 나는 간소하게 살고 싶다지만 간소하게 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면 검소하기라도 해야 할 텐데 딱히 검소하지도 않은 것 같다. 분명 이런 생각을 하고 산지 몇 년은 된 것 같은데 왜 점점 늘어나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만약 간소하다면 오늘 그릇이 깨졌으니 난 곧 그것을 대체할 만한 것을 집에서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찾을 것이다. 우리 집에 어울릴만한, 내 취향에 맞을만한 그런 그릇이 있는가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검소하려면 집에 있는 그릇 중에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 아마 그 간소와 검소 사이 중에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간소와 검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 와중에 또 이러한 욕망이 생겨난다. 오늘도 컵을 사려다 참았다. 그놈의 컵 투명한 컵이다. 그곳에 브랜드 로고가 은색으로 박힌 이게 뭐라고 갖고 싶은지 모르겠다. 쓰다 보니 더 갖고 싶어 진다. 얼마 전 투명한 컵을 깨긴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평소에도 컵을 보면 마음이 동요하는 것이 어쩌면 평생 검소하게 살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참을 고민했다. 옆에 앉아서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는 검소한 남편은 내 머릿속이 온통 컵으로 지배하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 컵을 자세히 보려 3번이나 다녀왔다. 그러다 문득 이러한 나의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미칠 것 같이 갖고 싶지만 내 평생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고비만 잘 넘기면 된다.



이 물건과 앞으로 펼쳐질 핑크빛 미래를 잠시 뒤로해본다. 나는 그냥 이럴 바엔 배고픈 뱃속이나 채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대신 케이크를 하나 주문했다. 먹는 것은 없어지기라도 하고, 달콤한 것을 먹는 동안은 또 잠시 물욕이 사라져 버렸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길을 걷다가 어떤 물건에 눈이 가서 갖고 싶어 졌다고 합시다. 욕망에 지배되어버리면 무심코 충동구매를 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 '갖고 싶은 것은 세 번째에 산다'는 규율을 정해두면 어떨까요.

그런 자기 나름의 규율을 만들어봅니다. 자신의 욕망과 냉정하게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충동적으로 욕망을 채우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상담한 후에 행동으로 옮겨갑니다. 이러한 규율을 세우면 불필요한 쇼핑은 분명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일상을 심플하게, 43p, 마스노 순묘



다시 글을 읽다가 다짐해보았다. 너무 물건에 휘둘리지 말자. 그리고 제발 세 번만 참아보자. 그 욕망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마음을 잘 다스리자. 그릇이 깨졌다고 그릇을 살 생각만을 하는 것 이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자.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제발, 간소하고 검소하게 살아가자.



오늘도 또 다짐해본다.








메인 사진 : https://pin.it/vlD4NS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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