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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Sep 15. 2022

더 이상 쓰지 않을 물건에게 내어줄 공간은 없지.

오랜만에 육지로

글이 뜸했다. 그 이유는 거의 1년 만에 서울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서울을 다녀오고 보니 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게다가 제주에 돌아오는 날부터 계속 비가 와서 몸 무겁고 피곤하기만 하다.



초기에 제주에 일 년살 이를 시작했을 때, 두 달에 한 번꼴로 서울을 가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는데 가지 않았다. 1년 정도 서울을 가지 않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딱히 서울을 갈 이유도 없었다. 명절에도 평소에도 부모님들과 친구들이 왔다 가곤 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에도 갈까 말까 심히 고민하다가 다녀왔다. 그런데 막상 서울에 가니 역시나 재밌는 것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가족친척들도 만나고, 가보고 싶은 곳도 다녀오고 친구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엔 내가 하던 것도, 다녔던 곳도 있었고, 또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특히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이번에는 명절이어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도 해야겠고 짧은 일정이어서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곳도 자유롭게  못했지만 그래 충분했다.



그런데 겨우 1년을 오지 않은 것뿐인데, 그 기간이 뭐라고 지하철 타는 것도 잊고, 쇼핑몰을 가면 눈이 휘둥그레지고, 서울 공기는 안 좋다고 투덜거리고, 사람이 너무 많아 복잡하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원래 그곳에 살았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고 편해지긴 하더라.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던가. 마지막 날엔 이렇게 떠나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더 길게 다녀올걸 그랬나?










이번에 육지에 간 김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시댁과 친정에 있는 우리의 묵은 짐을 최대한 정리하는 것이 목표였다. 낮에는 밖을 돌아다니고 밤이 되면 부모님들 집에 가져다 놓은 많은 짐들을 정리하였다. 시댁에는 지난번 이사하면서 가져다 놓은 짐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제주로 이사할 때도 많이 정리했는데도 가지고 있던 짐들이 꽤 많아 집안 곳곳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단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할 것 들을 신속하게 버렸다. 이 과정에서 아깝다, 다음에 쓸까 하는 마음은 과감히 내려왔다. 그리고 남겨져있던 옷(주로 아이 옷)을 헌 옷 수거함에 몽땅 버렸다. 그리고 남은 나눔이나 당근으로 처리할 물건들은 제주로 택배를 보냈다. 며칠을 정리하고 버렸는데도 여전히 어수선했다. 다음번에 다시 와서 한번 더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친정이다. 친정에는 내가 남겨놓은 육아용품들이 있었다. 아이를 한 명을 낳고는 당연히 둘째를 낳아야지 생각하고 보관해놓은 육아용품들이 방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첫째를 낳고 시간이 많이 흐른 데다가 이제 둘째는 포기했으니 이번 기회에 그것들을 싹  정리해야 했다. 심지어 친구가 준 유축기, 첫째가 쓰던 젖병소독기, 쏘서, 보행기 등등의 것들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는 보관도 오래되어 나눔도 판매도 어려운 것들이었다. 아까웠다. 언젠간 사용하겠지 하고 남겨진 것 들, 그것들의 대부분은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집안 곳곳 묵은짐들





분명 일 년 전 제주도로 이사 가면서  정리하고 처분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남아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서둘러 정리했다. 부피가 큰 물건들은 대형폐기물로 신고하고 내놓았다. 일부는 분리수거를 하고 분리수거가 안 되는 것들은 모두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정리한 김에 집안을 돌아다니며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모두 정리하다 보니 쓰레기봉투 100리터가 꽉 차게 나왔다. 집이 조금 비워진 듯 아닌 듯 보였지만 이렇게라도 최대한 정리를 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정에도 다음에 다시 한번 더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쓰지 않을 물건에게 줄 공간은 없다.





그동안 양쪽 부모님 집에는 우리가 소유했으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어서, 죽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집안 곳곳 짐들이 쌓여있었다. 하여 그 공간들은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부모님들은 그 물건들이 본인 것들이 아니기에 쉽사리 정리할 수도 없었. 엄마는 가끔 전화를 걸어 "이것들 좀 싹 치워라~ 집이 창고 같아"라고 말했던 것을 봐서는, 그 쌓여있는 짐들을 보며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이제는 나도 안다. 물건이 집안 곳곳에 쌓여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고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우리에게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어려운 사정이 있다. 우리는 이사를 계속 다닌다. 최소 2~3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니고 있다. 현재로서는 지금 살고 있는 제주에서 떠난다면 서울로 갈지 또는 어디로 가서 살게 될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러한 연유로 욕심내어 물건을 많이 소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보관할 곳이 있다는 이유로 물건을 소유하고 정리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도 부모님들에게도 얼마나 무거운 짐이고 부담인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아직 당장은 내 안에 가진 물욕을 완전히 잠재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최소한의 물건을 가지고 살고 싶다. 끝내 물건에 욕심을 버리고 싶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라도 그 과정으로 가고 있으니 조금 더 노력해봐야겠다.






메인 사진 : https://pin.it/6ECBck5

본문 사진 : https://blog.naver.com/dhexpress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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