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인연

by oj

어제 시이모님을 꿈에서 뵈었다. 작년에 돌아가셔서 1주기가 지났는데 평소 그대로의 모습으로 너무 생생하게 나타나셨다. 명절을 함께 보내고 인사를 전하고, 곧 김장까지 함께 하는 꿈이었다. 평소에도 활달하시고 씩씩한 이모님이셨는데 호탕한 목소리로 김장을 진두지휘하셨다. 그 꿈이 너무 생생해서 깨고나선 "이모님 돌아가셨지" 스스로 되뇔 정도였다.


시이모님과 나는 특별한 친분이 있다. 경기도 변두리 작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데 어렸을 때 한 집에서 같이 살았던 분이 시이모님 가족이었다. 시어머님의 언니로 공주가 고향이셨던 두 분은 시어머님이 먼저 이곳에 자리 잡으시고 시이모님을 올라오라고 부르셨다. 당시 시이모님은 이모부가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6남매를 홀로 키우셔야 했다. 막내가 돌도 안 지났을 때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얼마나 막막하셨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혼자 6남매를 키워야하는 이모님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동생과 의지하면서 가까이에서 어떻게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70년 대 가난했던 시절 이사를 와야 하는데 6남매를 전세로 받아주는 곳이 없을 때 우리 엄마가 선뜻 옆 방을 내어주신 것이다. 우리도 5남매였으니 혼자서 6남매를 키우는 이모님 처지가 딱해서

"아이들 많아도 괜찮으니 어서 이사 오시라"

고 흔쾌히 받아주신 걸 두고두고 고맙다며 잊지 않으셨다.


이모님은 다섯 명의 아들에 고명딸을 하나 두셨다. 이모님은 시장에서 야채 장사를 시작하셨고 셋째인 딸은 어린 동생들의 엄마 역할을 자처했다. 우리 옆 방에서 살 때 언니와 놀던 기억이 새록하다. 지금 다니는 교회로 동네 아이들을 전도한 사람도 언니였다. 지금 남편이랑 사촌 누나이고 남편과 그 교회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가족이 된 셈이니 인연은 그때부터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꽤 오래 우리 집 옆 방에서 살다가 시어머님이 집을 지으시고 아랫 집으로 이사 오시게 하셨다. 그곳에서 위 아래집으로 사시면서 어머님 4형제, 시이모님 6남매는 형제처럼 의지하며 대식구처럼 북적거리며 사셨다.


졸업을 하고 대학에 들어가서 청년부에서 막 제대한 남편과 사귀게 되었을 때 언니와 시이모님은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셨다. 함께 살았던 친분과 엄마의 성품을 익히 아신 이모님은 우리 시부모님께 적극적으로 나를 가족으로 들이라고 권하셨다. 언니는 본격적으로 연애가 시작되기 전부터 나와 남편 사이의 오작교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남편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언니네 집에 놀러가면 바로 윗집이 남편 집이어서 자연스럽게 더 자주 만날 수 있어 쉽게 친근해진 듯했다.


그런 시이모님은 결혼 후에도 나를 참 예뻐해주셨다. 동네에서 가끔 엄마라도 마주칠 때면 그렇게 반가워하셨다. 어머님과는 다르게 무척 활달하신 이모님이셨다. 화초를 키우는 걸 좋아해서 시들어 버려진 화초를 갖고 와서 다시 살리고 나면 주변에 나눔을 해주셨다. 집 앞 텃밭에서 늘상 채소를 키우시면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우리에게 한아름 안겨주기도 했다. 명절 때 인사하러 가면 뭐라도 챙겨 주시려고 하실 만큼 인정도 많으신 분이셨다. 혼자서 억척같이 일하시고 아들들 키우시고, 결혼시키고 손자 손녀들과 다복하게 사셨지만 황혼에 급성 치매가 찾아왔다. 집에서 투병하시다가 더 이상 케어가 안 되셔서 요양원으로 모셨다. 명절이면 집으로 모셔서 인사하러 갈 때면 나를 알아보시고 엄마까지 기억하시며 반색하셨다. 내 손을 잡고 눈물까지 흘리시는 이모님 모습이 잊히지 않는데 삶을 다하시고 돌아가셨다.


시어머님은 한 분밖에 없는 언니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천국에 가셨다며 위안하셨다. 이모님 케어로 힘들었지만 고명딸로서 엄마의 손과 발이 되어준 언니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효녀딸인 언니를 꼭 안아주었다. 장례를 마치고 1주기 때도 어머님을 모시고 추도 예배에 참석했다. 평생을 홀로 외롭게 사셨지만 6남매가 엄마를 끔찍이도 위했고 모두 효자 효부였다. 여장부 같으시던 이모님의 억척스러웠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꿈을 꾼 아침 언니에게 이모님을 꿈에서 봤는데 그 모습이 생생했다고 톡을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엄마생신이 다가오니까...

너네가 그리우셨나보다

이뻐하셨잖아.

지금쯤 천국에서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우리 위해 기도하고 계시겠지~~~"


생신이 다가오신다는 말을 들으니 더 그리워지는 듯하다.

"이모님, 고통 없는 천국에서 편히 계시지요?

저희들 지켜봐주시고 어머님도 천국 가시는 그날까지 편안하게 사시다가 천국에서 만나시기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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