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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런 Nov 26. 2024

나는 왜 출근이 고통스러운가

잠적하고 싶은 날 - ⓛ 단지 잘하고 싶어서

항상 살얼음판이었던 구직 시장 속에서 탈락이라는 글자를 거듭하며 드디어 나도 직장인이 되었다. 인생의 큰 산을 넘은 기분이었다. 가족들, 친구들과 취업 축하 파티를 하며 무지갯빛 미래를 상상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하며 나도 이제 온전한 성인이 된 것 같은 행복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입사 초반만 해도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미세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좀 더 예민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회사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학생에서 직장인이 된 내게 갑자기 커진 책임의 범위는 종종 간밤의 잠을 설치게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반이라 더욱 그랬을 수 있지만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차가운 유리 성에 갇힌 기분이었다. 


수습 기간이 지나고 맡게 되는 업무가 늘어나면서 제시간에 퇴근을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러다 점점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친구를 만나다가도 회사 일에 대한 걱정으로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없게 됐다. 


내 일상은 사라져 갔다. 그저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나의 뇌는 회사와 일에 대해 집착했다.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도 한 몫했다. 난생처음 해 본 일을 맡게 될 때면 전날 밤 미리 시뮬레이션을 그려보느라 토막잠을 잤다. 


웃음도 잃어 갔다. 주변에서 요새 무슨 일 있냐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지만 난 더욱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던 프로젝트에서 예상치 못한 실수를 하게 되고 일에 대한 집착은 공포로 변했다. 실수 하나쯤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당시 내게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워졌다. 출근을 해야 하는 아침만 되면 알 수 없는 불안에 잠식당했다. 심장은 큰 소리로 뛰었고 누구 하나라도 말을 걸면 화를 낼 것 같은 예민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예전 조그만 것 하나에도 낄낄거리고 달콤한 잠을 즐기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무렵 거울 속에는 노랗게 질린 얼굴로 표정을 잃은 잿빛 여자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자 건강도 나빠졌다. 불안감은 곧 우울감으로 전환됐고 이러다가 무슨 일이 날 것 같았다. 아무 계획도 없이 출근한 어느 여름날, 나는 상사에게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염원해서 들어온 회사였는데 결말이 이렇게 되니 마음이 아렸다. 폭주하던 기관차에서 내리자 정신이 든 걸까.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모든 순간을 불안으로 맞이하지 않아도 됐었다. 왜 그렇게 일이 무섭고 두려웠을까. 


그렇다. 나는 '잘한다'라는 말에 너무 목숨을 걸었던 것이 아닐까.


쉬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며칠간뿐이었다. 백수 생활을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감과 또 다른 불안이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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