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하고 싶은 날 ④ - 내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이유
'아 그거 별로라던데, 내가 알기로는~'
꽤 오랫동안 친했던 친구가 내게 자주 했던 말들이다. 그 친구와 직접 만나거나 메신저로 대화를 하고 날 때면 왠지 모를 찝찝함이 느껴졌다. 친구와 대화를 하는 즐거움 한편에는 언제는 미묘한 복잡함이 존재했다. 처음엔 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 친구는 나보다 먼저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때마침 잦은 야근과 피로한 인간관계로 언제나 마음이 지쳐있던 나는 그 친구의 조언을 철석같이 믿어 왔다.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내게 단단한 확신이 있는 그 친구는 어른 같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의지할 곳이 없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 친구를 자주 찾게 됐다.
그럴 때마다 뒤끝이 없고 흔히 말해 쿨하다는 그 친구는 시원시원하게 내게 조언을 건넸다. 판단력이 흐려진 내게 그 친구의 한마디는 천금과도 같았다. 무시할 수 없도록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그 친구는 내 결정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나를 덮치는 불안감과 걱정들로 참 많이 힘들 때는 그 친구의 존재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새 다시 돌이켜보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생각했던 그 친구는 오히려 나를 흔들어 두는, 불안한 정서를 증폭시키는 존재였다.
조언을 들으며 고맙다는 인사 뒤에 남은 잔잔한 찝찝함을 나는 그냥 무시하곤 했다. 은연중에 드는 나의 불필요한 감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감정은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흐려진 판단력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나를 지켜주려 했던 신호였다.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항상 내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 내가 생각한 건 잘못되었고 본인의 생각이 맞다는 것이다. 불안정에 익숙해진 내게 친구가 주는 확신은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줬다. 금세 나는 그 친구가 풍기는 오염된 안정감에 의존하게 됐다. 내게는 부족한 확신과 자신감이 가득했던 친구의 말 한마디는 내 정신을 휩쓸었고 결론적으로 나는 항상 결정을 번복했다. 초반에 가졌던 내 생각을 대부분 지키지 못했다.
나는 느꼈다. 중심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인지 말이다. 독불장군처럼 자신의 고집만 내세우라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에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흔들린다는 것은 영혼이 지쳐있다는 말의 반증이다. 그 사안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내 자신이 더 약하게 느껴지고 자꾸만 주변인에게 의지하게 된다. 고마운 사람들은 그런 내게 응원을 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내 정신을 마구 파헤쳐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도 한다. 분별력이 없을 때는 이마저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주관이 흔들리게 되면 불안은 더욱 쉽게 우리를 공격한다. 불안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친구의 진심 어린 조언을 참고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돼 너무 맹신한 나머지 자신의 주관을 버리는 행위는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내 판단을 좀 명확히 하면 주변인의 조언을 참고하면서 정말 필요한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불안이 침투할 구석이 없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할 때면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그럴 때는 타인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좋지만 너무 많은 것을 말하거나 의지하지 말자. 때로는 온전히 나만의 휴식을 취하자.
우리 마음도 조금 쉬고 나면 단단함을 찾을 것이다. 나 자신은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존재이다. 조금만 기다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