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하고 싶은 날 ⑥ -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자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나는 언제나 타인의 시선에 민감했다. 늘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신경 썼다. 정작 그들은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갈등이 싫었던 난 문제를 일으키기 싫었고 나보다는 타인의 감정을 우선 고려하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했다. 직장 동료와 지인들과의 소통은 즐거운 면도 있지만 대부분 나를 지치게 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유독 예민해졌다. 모든 신경 세포가 상대방에게 쏟아졌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것은 습관이 됐다.
상대방의 기분은 어떤지, 이야기의 주도권이 너무 나한테만 있는 건 아닌지, 내가 한 말을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등 타인의 의중을 고려하는 일은 꽤 많은 에너지를 동반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지쳤다. 특히 회사에서 업무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인간관계다. 상호작용이 필수적인 인간관계는 가뜩이나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내게 난제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인간관계를 망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존재했다.
일상적인 인사부터 거시적인 대화까지 사람을 마주하는 것은 곧 내게 부담이 되었다. 뇌가 너무 많이 지치다 보면 모든 것을 놓게 된다. 생각을 하다 보니 생각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때마침 받고 있던 부부상담의 상담사도 내게 힘을 좀 빼고 살라고 했다. 그렇게 일일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새삼 '잘 보이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잘 보이는 게 뭘까. 왜 잘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돌이켜보면 그렇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친분을 쌓지 못한 관계도 존재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노력은 정량적으로 가시화할 수 없었다. 즉,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도 다수였다.
친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내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한 사람이 나를 배신할 수도 있다. 알 수가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었다. 인간관계에 너무 집착하지도 말고 적당한 지점을 찾아 나를 보호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을 간소화했다. 다른 사람과 만날 일이 있으면 그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가상의 상황을 굳이 만들지 않았다. 그러자 내 삶은 더욱 담백해지고 명료해졌다. 잘 보이기 위해 더 꾸미거나 가식을 떨거나 포장을 하지도 않았다.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언행을 하거나 선을 넘지 않는 이상 자발적으로 인간관계를 크게 해칠 일은 극소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진심으로 소통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자. 인간 관계에 '만약'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