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하고 싶은 날 ⑤ - 상황은 흐른다
시간이 약이다.
흔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말이다. 이런 일 저런 일로 힘들 때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지친 나를 위한 임기응변적 위로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상황도 흐르고 슬픔은 옅어졌다.
엄마는 내게 곧잘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을 1년 뒤에도 똑같이 하고 있을 것 같니?'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과 걱정의 늪에 빠져 있을 때면 이 불안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도무지 문제의 해결책은 안 보이고 어둠 속에서 질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성격이 급하기도 했던 터라 하루빨리 갈등 상황을 해결하고 손을 털고 싶었지만 난관에 봉착한 순간만큼 머리가 굳는 시점은 없을 것이다.
문제, 걱정, 불안, 고민
모두 내 생각 회로를 방해하는 단어들이다. 불안은 에너지를 앗아간다. 평소에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나는 걱정과 고민이 생길 때면 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오로지 여력이 되는 일이라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생각의 늪을 헤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만 하는 것은 내 불안을 더 강화하고 문제를 악화시키기만 한다. 아무 짝에 쓸모가 없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생각'만'하는 것은 내 삶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부정적 감정은 중독되기 쉬워서 한 번 고민을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힘들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생각을 쉴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보자. 그 상황에서 잠시만이라도 벗어나자. 내 주의를 환기하자는 말이다.
계속 같은 생각만 하게 되면 생각의 쳇바퀴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해결 방안도 떠오르지 않게 된다. 하지만 고민을 잠시 중단하고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활동으로 관심을 돌리면 예상하지 못한 묘책이 떠오르기도 한다.
또, 생각만 하며 괴로워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 1년 전 했던 고민이 아주 명확하게 떠오르는가. 고민의 연속인 일상을 사는 나도 1년 전 이맘 때 했던 고민이 뭔지 모르겠다.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힘들다가도 생각지도 못한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정말 괴롭고 힘들겠지만 맛있는 것을 먹는다든가,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상을 본다든가 가벼운 일상을 살다 보면 미래의 내가 또는 제3의 인물 및 요소가 전혀 새로운 결말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상황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상황은 흐른다. 힘들었다가도 행복해진다. 우울하다가도 즐거워진다.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만 말자. 바닥을 친 만큼 도약할 일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