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에 살아도 행복하지 않은 건

2. 구로구 항동

by 고생끝에골병난다


"서울 지도를 보면, 서울시 경계선. 그 선 위에 우리 집이 있어."


이사 날에 동생이 그랬다. 겨울 신도시 풍경은 어딘가 황량한 구석이 있었다. 우리 동네는 서울의 가장 변방이다. 스무살 되던 해, 경기도에서 구로구 항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린벨트를 없애고 들어선 소규모 신도시였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 모두가 집을 소유해야 한다며 보금자리 주택사업을 추진했다. 압구정부터 분당까지, 택지 개발 사업은 항상 서민 내 집 마련을 표방하며 출발해서 계층 고착화로 이어지지만, 보금자리 주택사업 때 지어진 동네들은 그래도 공공 주택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린벨트를 개발하는 데 따르는 정치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함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 공공 개발 계획이라 불리던 이 사업은 수도권의 자연 녹지 지역을 없앤 땅에서 펼쳐졌다. 지금 권력을 잡은 사람들도 그린벨트를 가만히 두지 않으려 한다니 이제 서울의 녹지는 대부분 사라질 운명이다. 지방 소멸과 기후위기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주민으로서는 그린벨트였던 동네의 흔적이 마음에 드는 순간이 있다. 주차장에 출몰하는 너구리나, 밤이면 들리는 금개구리 소리는 서울 도심에서는 누릴 수 없는 특권이다. 항동을 찾은 지인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여기가 서울 맞아?"



이사 첫해의 지인 없는 생활은 외로웠다. 하지만 초목이 울창해지자 동네에 조금씩 정이 붙기도 했다. 항동은 버려진 철길과 저수지를 활용한 공원을 둘러싼 동네이다. 어린이 비율이 높고,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급한 임대 주택 '항동 하버라인'과 민간 분양 아파트가 섞여있다. 규모가 작은 만큼 늘 깔끔하고 고요하다.


공간은 기억의 총합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면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에 잠시 마을이 소란스러워진다. 그런데 지역 커뮤니티에는 '배우자가 외로워한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가족들도 이사를 왔지만 주말이면 모두 지인을 만나러 경기도에 돌아간다. 적요한 동네에 사는 일은 대체로 쾌적하지만 오히려 답답할 때도 있다. 택지 개발 지역은 외곽의 빈 땅을 활용하기 때문에 도심 접근성이 비교적 떨어진다. 공공 개발 비중이 높다는 것은 해당 지역의 채산성이 낮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항동 지구는 사방이 천왕산과 경기도권 그린벨트, 얕은 동산과 서울푸른수목원에 둘러쌓여 있다. 언덕을 한두차례 넘어야 1호선 역곡역이 나온다. 이 탓에 주민들이 고립감을 느끼기도 쉽다. 경전철 신구로선이 예정되어 있으나 사업성 검토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지하철이 가깝지 않으면 서울이어도 서울 시내는 멀리 있다. 동생은 언젠가 이사를 오고 고립된 기분이 든다고 했다. 기억 없이 깔끔한 이곳에서 사람들이 덩그러니 살고 있다.


주거학을 공부하면 '공간은 내가 살아온 기억의 총합'이라고 배운다. 커뮤니티가 없다면 깔끔하고 정돈된 신도시 생활은 오히려 정서적으로 황폐하다. 누적된 기억이 부재하고 지인이 없는 신도시에서는 집이 있어도 이방인이다. 더구나 동생은 안전한 가족의 품을 떠나 홀로 서야 하는 과정에 있다. 경기도에 가면 차라리 익숙한 품에 돌아온 기분이지만, 서울에 있으면 이방인으로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할 것 같은 불안이 움튼다. 경기도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친구도 만나느라 하루하루가 정신 없었다. 동생이 굳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서울 시내에 방을 얻은 것은 이런 기억 때문이었다. 그때처럼 치열한 삶에 스스로를 던져야 불안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기도에 돌아가면 지인을 만나고 기억을 되짚으며 오래된 아파트를 산책한다. 재건축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이곳도 곧 낯설고 멀끔한 뉴타운이 될 것이다.



기억 없는 마을


얼마 전 유행한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는 평생 제주에서 산 애순이와 서울에 간 금명이의 이야기다. 둘 중 더 행복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애순은 동네의 여성 관계망 속에서 사회와 맞서고 삶의 난관을 풀어낸다. 금명이는 그러지 못했다. '영범'의 가족으로 상징되는 가부장제를 이겨내지 못했으며, 출세도 혼자 힘으로 이루어낸다. 모두가 드라마 속 판타지 같은 배우자를 만나고 '에버스터디'를 창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애순이처럼 주변 관계망의 조력이 있는 마을에서 행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행복은 관계와 분리된 채로 이룰 수 있지 않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서사의 종말>에서 "행복은 과거까지 닿아있는 긴 꼬리를 갖는다"라고 했다. 행복은 개인의 역사와 관계망을 구원함으로써 가능하다.


경계선에 놓인 신도시 주민들은 누적된 기억이 없는 마을에 산다. 과거 정부의 목표처럼 집을 '소유'하게 되었으나, 동시에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정주 동물인 인간은 살던 곳을 쉽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류가 최초로 초원을 벗어난 이유는 환경 변화로 생존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더이상 살 수 없을 때 떠난다. 지역에 가망이 없으니 수도권으로 모여든다. 모여든 곳에는 아무런 기억이 없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외로워한다.


서울 지하철은 항상 만원이고, 청년들은 좁은 방에서 잠을 청한다. 연연할 관계가 없으니 동네에 정이 들지 않는다. 신도시에는 어릴 때 넘어지던 계단이, 친구와 산책하던 공원이 없다. 그러니 동네에 정 붙이는 대신 더 높은 아파트, 더 좋은 입지를 선망한다. 2호선이 연결되는 곳. GTX가 놓인다는 곳. 모든 수요가 모이는 강남 집값은 끝없이 오른다.


내가 사는 신도시 주민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이 기억 없는 마을에서도 다시 '상급지'로의 진출을 꿈꾼다. 잠시 성취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한국의 도시 사람들이 정말 행복한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더 어른이 되면, 사람이 뿌리내린 동네를 일굴 수 있을까.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단지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마을. 서로를 지탱하고 보듬어주는 관계망의 마을. 나를 나답게 하는 기억이 남아있는 도시를 상상하며, 우리들은 다시 고요한 신도시에서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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