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아 Apr 08. 2024

사랑이고 바게트겠지, 파리

사랑이고 바게트겠지, 파리

신디, 여기서 미키 마우스가 나올 거 같아..


세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잿빛이 짙게 칠해진 벽에 뭔가 살짝 찝찝한 마음이 들게 하는, 뽀송뽀송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불과 출처를 알 수 없는 매트리스. 이 세상 푹신함 모조리 죽어버린 듯한 베개. 그리고, 화장실 쪽에 생뚱맞게 깔아져 있는 녹색 부직포 바닥까지 이 모든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꾀죄죄함과 꿉꿉함이란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지저스~~


게다가,


"자기야~ 여기 바닥이 흥건한 거 같아.. 방수가 안 되는 거 같아~"


화장실을 사용했던 우리. 그런데, 무슨 파이프가 화장실에서 옷장으로 연결되어 있는 건지 샤워를 할 때마다, 옷장 바닥에 물이 흥건히 젖는 게 아닌가!! 뭐지, 이 두뇌 전두엽 따귀를 때리는 상황은? 신디~ 이곳은 신기한 기능이 있어~ 바로, 워터파크 기능이지~ 워터파크에 가고 싶어? 우리가 만들어줄게, 바닥부터 차오르는 물을 느껴봐~ 이게 바로 워터파크다!


순간, 목숨의 위협을 느꼈달까?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했는데, 건물 파이프를 진짜 어떻게 작업하신 건지 이 건물 책임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것도 문화 충격이라면 충격이겠는데, 이 사실을 말하니 호텔 직원의 반응이 그 이상의 어떤 무언가였다.


(우리를 보며 시니컬한 태도로) 아 네..


뭐야? 그 태도는? 저기요? 바닥에서 물이 샌다니까요? 분출될 거 같다구요! 자기 일이 아니란 거야? 너도 한번 겪어볼래? 우리나라였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 텐데. 여기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저 무신경. 전형적인 나만 아니면 돼~ 였달까? 순간, 아른거렸던 726.08유로.. 최고의 입지 조건에 따른 최악의 시설이었달까? 우리의 첫 만남은 가히 최악! 마치, 벽장에 모든 잡동사니들을 처박아놔서 벽장문을 열면 모든 잡동사니들이 쏟아져버리는 상황처럼. 외형은 깔끔해 보였지만 그 내부는 정말이지 더러움이 한 방에 몰아진 듯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만히 이 숙소 구석구석을 본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키 마우스(쥐)가 나타나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져~


충분히 개연성 있어 보이는 소리였다. 물론, 신디는 이런 내 말에 퉤퉤퉤하라며 엄청 싫어했지만. 그런데 내가 쥐라도.. 이런 곳이 3성급이라면, 그 이하는 과연 어떠하다는 건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내부 사진을 안 찍었던 게 신의 한 수라면..


아무튼, 서둘러 이 지옥 같은 숙소(그러기엔 여행 내내 이 숙소에서 지내야 한다는 건 안 비밀..ㅠㅠ)에서 벗어나 우린 파리 거리를 거닐기 시작했다. 날이 무척 맑았다.



일기 예보에서 말하기를 흐리다고 했었는데, 그런 소리 한 사람 나와!!!! 일기 예보가 무색하게도 날이 무척 맑았다. 오히려 여름이 아직 느껴질 만큼, 햇살이 뜨거웠다. 그러나, 그 온기란 따스하게 느껴졌다. 저절로 낮잠이 올 것 같은 온기였다.


푸른 하늘과 따스한 온기, 건물 사이에서 불어오는 미세한 바람까지 모든 순간이 좋았다. 이때쯤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가 파리를 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신디와 나는 설렌 마음에 여러 장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나는 신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우리. 신디는 자유롭고도 포근한, 그 미소로 나에게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다.


서서히..

가까이..


노아, 나 행복해..


그 행복, 앞으로도 계속 느끼게 해 줄게~ 약속했잖아~ 


당장 우린 에펠탑으로 가야 했지만, 그전에 잠시나마 이 여유와 낭만을 느끼고 싶었다. 우리 인생에서 쉼표 같았던 순간이 없었으니까. 지금 쉼표와도 같은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누리고 싶어서. 거리를 거닐었다.



토익 시험지에서 볼법한 풍경을 보면서~ 내가 마치 토익 시험 문제 화면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곳저곳을 거닐고 있는 우리~



그러다가 우연히 한 빵집을 마주하게 되었다.


Boulangerie JOSEPH이란 베이커리였는데, 숙소 근처에 있었고. 당시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았지만, 파리 빵을 먹어보고 싶었던 우리로서는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이 베이커리에서 빵을 잠시 먹기로 했다.


그리고, 원래 여행 중 칼로리 생각은 안 하는 법이니까~ 칼로리는 틈이 없는 일정으로 소모될 거라 굳게 믿으면서~ 또, 파리 빵이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와 설렘 안고, 문을 열었다.


와.. 이 풍부한 빵들을 보라.. 영롱하다..


노아, 나 이 빵들 다 사도 돼?


응, 다 사~ 내가 쏜다~~ 이 빵들 다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빵이 이렇게 먹음직스럽게 크고 꽉 찬 느낌을 받은 게 내 인생 최초인 거 같았다. 한국에서의 빵들은 다 다이어트가 된 상태인 거구나라고 생각이 들게 할 만큼, 너무나 풍부하게 보였다. 풍부라는 표현을 쓰는 게 맞을 것이다. 그 정도로, 하나하나 가득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어떤 빵을 고를지 무척 힘이 들었다. 먹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우리의 위장은 한계가 있으므로..


그래서 아래의 빵들을 골랐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저 사진 속 그때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 건 기분 탓일까? 아.. 내가 파리 갔다 온 이후로 한국에서 빵을 못 먹어.. 장거리 연애하는 기분이랄까? 너무 보고 싶어. 만나고 싶어.. 아, 너를 마주했을 때 나의 감정이란..


그건 너일까. 고진감래란 의미가 실체화된다면, 그건 너일까? 습기 어린 시간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푸른 따스함. 그 꿈이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 그건 너일까? 수많은 상상 속에서도 결국 내가 마주하는 건 늘 너야. 내 앞에서 따스한 푸름으로 나를 맞이하는 네 모습. 


어쩌면, 아는 맛일 수도 있는 그저 그런 빵일 수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이 순간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리고 한 입 베어 먹은 순간..


와... 대박...



내 안에서 행복이 가득 채워지는 거 같아... 


행복이 압 안으로 새어 나오는 듯했다. 입 안이 충만함으로 채워지는 듯했다. 신선한 재료의 식감이 느껴지는 듯했고.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부함이 있었다. 가격대는 한국 빵들하고 가격이 비슷했거나 그 이상이었지만. 확실히 퀄리티는.. 생전 처음 느껴볼 정도였다. 감격이었다. 창문 너머 풍경을 보면서 신디와 빵을 먹는데, 너무나 행복했달까? 그러던 중에 카페가 보이는 게 아닌가?



"신디, 분명 프랑스 카페는 한국과 다르겠지? 가볼까?"


너무 궁금했다. 파리 카페는 어떨까? 하고. 뭐 한국하고 똑같겠지? 반! 그래도, 뭔가 다른 게 있겠지? 반! 기대와 무덤덤함 이 상반된 감정들이 뒤섞인 채, 빵을 다 먹은 우리는 우리 앞에 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그때 신디가 나에게 말했다.


파리에서는 식당이나 카페 직원을 부르는 게 아니라, 가만히 서서 직원들이 우리에게 안내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게 매너야!


아? 그거 알지~~ 드라마, 영화에서 봤어~ 신디의 말을 칼같이 듣는 나니까~ 다만, 1초의 공백이라도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직원 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날 봐라! 날 봐! 제발! 플리즈! 오우 지저스! 제발!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그리고, 우릴 본 직원 분은 우리를 카페 밖 테이블로 안내했고. 

우린 카페 테이블에 앉아 거리를 구경했다. 너무 여유로웠다. 시간이 천천히 간다, 빨리 간다 이런 개념이 아니라 그냥 없었다. 시공간이란 개념 자체가 아니라, 그냥 우리 둘만 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낯선 세계, 다른 언어권의 이방인들. 지금 이 세계에서 속하지 않는 듯한 너와 나. 철저히 그들로부터 이방인이 된 우리, 주체에서 객체가 되어간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자연스러운 널 마주한다. 신디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자유로움과 산뜻함이 만개하는 듯했다. 그런 너를 나는 그저 바라보았다. 


시린 겨울에서 봄날이 실체화된 너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모습을 계속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던 중, 신디가 나에게 말했다.


"아, 이 여유 좋지 않아? 너무 여유로워. 하루만 더 여기 있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짧아.."


흠흠.. 순간, 훅 올라온 그녀의 말에 나는 괜히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 날이 맑다~ 음식은 언제 나오려나~~"


그때 다행스럽게도 음식이 나왔고. 우린 또다시 감격의 물결 속으로~



세상에... 풍부함에 이어 또 다른 풍부함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적당히 기름진 비주얼에 서로 다른 듯 어울리는 색깔의 조합. 그리고 한국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양까지.. 그대에게 주어지는 합격의 목걸이~~ 나이프로 잘라먹기 싫을 정도로 너무나 예뻤다. 예술이었다. 음식 하나에도 예술이라고 느껴지게 만든 그대여.. 이래서 프랑스는 예술의 나라라고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음식 하나에도 단지 음식이 아닌, 예술로 생각하게 하니 말이다. 


맛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 입 베어 먹은 순간, 계란 프라이의 본연의 맛이 느껴졌고.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의 기름짐이 부드러운 와플로 감싸지면서 온화한 풍미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에 곁들여지는 과일 음료는 깔끔함과 산뜻함을 더해주었고. 최고였다. 먹고 나서 내 입에서 저절로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다.


행복하다..


그렇게 여유 한 스푼의 순간을 보낸 우리는 카페에서 일어나 바로 에펠탑으로 향했다. 그렇다. 내가 그토록 가기를 원했던 에펠탑으로~ 과연 어떤 모습일지 기대 가득 안고. 그렇게 에펠탑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전 07화 우리의 여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