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줄기가 한창 뜨거웠던 우리의 시간을 저물어져 가는 태양과 함께 흘려보내던 순간. 그 순간이 지나, 우리를 감쌌던 태양의 흔적은 갈 곳 잃은 채 방황하여 이리저리 거닐면서 허전한 밤공기를 메워갔고. 푸른 하늘을 그리기 시작한, 새벽의 이슬은 이내 지금 이 세상을 외면한 채 촉촉이 오늘의 공기를 적셔가 습기 한가득 내뿜고 있었다. 그 습기에 우리의 생명력은 서서히 빛을 잃어갔으며. 육신은 강한 중력의 영향을 받아 지금 이 자리에 주저앉아버려 소멸하는 듯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 오듯 흘렸던 이 세상도 우리도 어느새 한때의 추억으로 기화된 채 우리들 몸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내 옆에.. 그리고 그 옆에 너와 네가 있기 때문에..
스이도바시 역에 도착한 우리. 그전에 환승을 위해 아키하바라역에 내렸을 때 진의 눈빛이 갑자기 바뀌더니 내게 말했다.
마치,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채 나를 바라보는데.. 순간 어색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진이 이런 눈빛을 할 수 있단 말이야?? 유치원 졸업과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그 천진난만함과 설렘 가득한 눈빛. 20년이 넘는 시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연어가 결국 강을 거슬러 가서 자신이 태어난 모천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길고도 긴 시간 만에 다시 처음 내가 본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온 그. 행복해하고 설레하는 그의 이런 모습을 본 나는 괜히 가슴 뭉클해지면서 반가운 마음 마저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좋았던 점들이 있다면, 바로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자기 혼자 따로 갔다오겠다고 말했던 진. 그런 그에게 내가 웃으며 해준 말은 이거였다.
응! 안돼~
너무 늦은 시간이야~ 밤 9시를 살짝 넘은 시각이었는데, 택도 없는 소리였다~ 진에게는 미.. 전혀 미안하지 않아~ 아키하바라를 구경한다고 해봤자, 9시가 넘는 시간에 여는 곳은 얼마 없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지하철 시간이 걱정되었다. 지하철을 못 타면, 숙소까지는 어떻게 간단 말인가?
걸어서 가는 수밖에 없는데 밤 9시가 넘는 시간에 싸움을 전혀 못하는 사람 2명과 싸움을 잘할 것으로 보이나 실은 겁쟁이인 사람 1명이 돌아다니기에는 다소 무서우니~ 안전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하게 여기는 나로선 생각도 안 할 내용이었다.
그래서 바로 스이도바시로 향했고. 스이도바시역에 도착해서 우린 구글 맵을 켜고 숙소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숙소를 찾아 걸으면서 거리 구경도 했는데, 정말 특색 있어 보였다~
일본 드라마 현장에 온 듯했으며, 내가 일본에 왔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가타카나와 히라가나, 한자가 뒤섞인 간판과 경차 몇 대와 자동차들이 거리 위를 달리고 있었고. 거리에는 양복이나 교복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었다. 후텁지근하고도 조금 더운 날씨 속에서도 찡그리는 표정 없이 묵묵히 걷고 있었다. 거리에는 쓰레기 하나 볼 수 없었으며, 군데군데 음식점들도 보여서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신디~~~ 이게 바로 일본이구나~~~ 싶어~~~"
숙소 근처가 상당히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게 유흥 업소도 없고, 안전한 곳으로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 잠길 때쯤, 도로변을 따라 상가 건물들 앞에서 "~~ 엔"이라 쓰여있는 표지판을 든 채, 서있는 여성들을 보고 조금 전에 했던 생각을 번복하게 되었다.
"아.. 신디.. 아까 내가 했던 말 취소..."
"응?? 왜..?? 아...."
우리 둘은 말이 없었다. 이렇게 대놓고?? 이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까 했던 생각과 같은 문장이지만 다른 의미의 말이었다.
'이게 바로 일본이구나...'
그런데, 일본 여행하면서 생각보다 많이 볼 수 있었다. "~~ 엔"이라는 표지판을 들고 있던 여성들을. 마스크 쓴 채 서있던 여성들도 있었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여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에게 일본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어린 시절에는 꿈이었다. 울트라맨이나 전대물, 로봇 등이 나오는 만화영화들을 보고 자라왔으니까. 특히, 포켓몬과 디지몬 세대였던 우리에게 일본은 유년시절의 꿈을 키우게 한 존재였다. 그러나, 자라면서 역사를 알게 되면서 우리에게 일본은 마냥 좋아할 수 없게 되어버린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마냥 예전처럼 좋아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때 우리의 추억에는 늘 함께 했었기에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존재. 그게 바로 일본이 아닐까..
내 개인적으로는 일본 역사를 공부하면서, 많은 뉴스들을 접하면서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일본이 아닌 거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순박한 듯 보이면서도 극단적인 느낌을 받기도 했고.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 칼을 내미는 느낌도 많이 받았었다. 내 개인적으로 느끼는 일본은 이렇다.
"체제에 순응하는 민족성.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눈물과 화 등의 감정 표현을 애써 참고 참는 민족성. 그리고, 깨끗하고 좋은 이미지만 보이려 하지만, 그 이미지의 뒤편에는 더럽고도 감추고 싶은 어둠이 많이 보이는.. 그런 모습."
이번 여행에서 그런 어둠을 많이 목도한 듯했다. 그래서 설레면서도 가슴 한편이 씁쓸한.. 그런 인상을 받았었다.
이런 생각들을 가진 채, 찍은 숙소 주변 모습들~~~
전부 흐릿했던 게 함정...
전부 사진이 흐릿하게 나왔다는 걸 알고 나서 비로소 그날 내 컨디션을 알 수 있었다.
진짜 피곤했구나.. 허허허~~
그 어느 한 장이라도 선명하게 나온 게 없었다..
그러나, 신디 사진을 찍을 때는 신기하게~~~ 선명하게 찍혔다는 사실~~ 정말 신기했다. 본능인 걸까? 그래! 이건 본능일 거야~~ 아름다운 피사체의 찰나라도 흘려보낼 수 없어서 사진으로 길이길이 남기를 바라는, 예술가의 본능일까? 흐흐~~
숙소에 체크인한 우리는 바로 나와서 도쿄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도쿄돔이 있었기 때문에, 도쿄돔을 가고자 했던 것이다. 마냥 숙소에서 쉬기에는 여행 일정이 너무 짧으니까~~
궁금하기도 했다. 도쿄돔~~~ 어떨까, 도쿄돔??
숱한 많은 가수들이 공연했던 곳. 누군가에게는 공연장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야구장인 곳.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가는 곳이지만, 각기 다른 추억과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는 곳. 누군가에게는 꿈의 장소이자, 추억의 장소. 미디어로 접할 때와 직접 현장에서 보는 것은 다르니까~ 꼭 두 눈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신디와 진과 함께 걸어 도쿄돔으로 향했다.
지금 내가 서있는 다리를 지나, 멀리 보이는 빌딩과 관람차를 향해 걸어가니 어느새 도쿄돔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전광판들과 네온사인들. 그 사이에 도쿄돔이라는 글자가 내 눈앞에 선명하게, 크게 드리우기 시작하는데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도쿄돔~~~
도쿄돔을 마주하고 느낀 건, 엄청 크다.. 였다. 그리고 그 내부에 거대한 크기로 야구 선수들 모습이 그려진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다채로웠고,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디자인도 현대적이었으며, 세련미가 느껴져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웅장함을 느끼게 하였다. 왜 그렇게 허구연 총재님께서 돔구장~ 노래를 부르셨는지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달까?? ㅋㅋㅋ
특히, 멀리 보였던 관람차와 롤러코스터가 인상적이었다. 타보고 싶었지만.. 너무 시간이 늦었을까.. 탈 수 없었다. 이게 너무 아쉬웠다. 낮에 갔었을 때는 탈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낮에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을 자아낼 만큼 인상적인 장소였다.
우린 도쿄돔 주변을 거닐면서 도쿄돔의 매력을 찬찬히 음미하면서 즐기고 있었다.
한참을 거닐던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고.
근처 편의점을 들러, 과자 몇 개 정도를 사서 숙소에서 먹으면서 도쿄 여행 첫째 날을 마무리하였다.
역시, 여행 가면, 그 나라 과자들을 먹는 게 국룰 아니겠어~~??? ㅋㅋ (안 그러니? 신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