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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 Jul 08. 2022

딸의 독립

#독립은 성인식 #젊은 세대의 삶 #홀로 사는 청춘


30년 전 나의 엄마는 서른이 훌쩍 넘어 과년한 딸이 독립해서 혼자 살겠다고 하니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우셨었다.

오랜 사회생활로 스스로의 삶을 꾸려갈 경제적 능력이 있었음에도 

결혼을 안 한 것이 독립을 하면 안 되는 큰 이유였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결혼 안 하고 혼자 독립해서 사는 것이 

큰 흠인 양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주위에 창피하고 독신으로 딸이 늙어가는 것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며

자리보전을 하고 누우시면서까지 딸의 독립을 극구 반대하셨다.

그런 엄마를 한 달 가까이 머리맡에서 조르고, 협박하고, 달래고 해서

가까스로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고 분가를 했었다.

나름 나 자신도 집요한 독립투쟁을 했었던 것이다. 

그것이 30 중반 무렵이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 독립생활은 몇 달을 채우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결혼으로 끝나버렸다.

나이 먹은 딸이 결혼도 안 하고 독립한다는 탓에 가슴앓이를 하던 엄마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독립을 시킬 걸 그랬다며 

머리를 동여맸던 수건을 풀어 던지고 신이 나셨었다.

그렇게 사고가 달라도 한참 달랐던 구시대에 나는 살았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딸은 

주위 친구들도 모두 독립을 했다며 자신도 독립을 하겠다 선언한다.

회사 생활도 안정이 되고, 돈도 조금 모아 여유가 생기면 독립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그러다 보면 독립을 못한다며 기를 쓰고 독립을 추진한다.

한시라도 빨리 부모의 그늘에서 자립을 해야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며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부모의 말은 그저 걱정이 지나치게 많은 꼰대 잔소리로 치부해 버린다.

그런 딸에게 서운한 마음도 올라온다. 

왜 그렇게 떠나려 애를 쓰나...

하긴 딸의 말이 맞는다.

거친 세상에 던져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는 게 현명한 일이라고 모두들 말한다.

사자도 새끼들을 절벽 밑으로 던져 살아 올라오는 놈만 기르지 않던가.

부모로서 그런 용기가 필요하지만 어디 말처럼 그것이 쉽던가.

이 험한 세상에 어떻게든 자식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남들이 누리는 것 다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자식들을 키워온 세대가 50, 60 세대인데...


어쨌든 딸은 목숨 걸고 독립 투쟁을 하는 투사인 듯 분가를 하기 위해 올인을 한다.

여러 날 집을 알아보고, 대출이며 자금 동원력도 계산하고, 부담해야 할 이자와 생활비도 따져보며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머리가 아플 과정을 겪어 나간다.

마침내 제 수준에 맞는 방을 얻고 나니 결혼 혼수도 아닌데 살림살이 장만에 또 정신 차릴 틈이 없다.

사람 사는데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던가.

한 사람이 살든 한 가족이 살든 필요한 것은 다 있어야 하는 것.

그렇게 많은 살림이 필요할 줄은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하다 못해 변기 청소하는 솔까지도 있어야 하는 것.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하고 살림살이를 사들이며 정리하는 딸을 보니 

참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은 어찌 됐던 해내고야 마는구나. 

독립할 만큼의 여유자금도 없으면서 집도 마련하고, 살림도 장만하고.

그렇게 여러 날을 진을 빼며 살 수 있을 만큼 자리를 꾸며 놓는 것을 보고 

여리게만 보았었던 딸아이가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이제 본격적인 홀로서기가 시작되는데 이 험한 세상을 씩씩하게 버텨나갈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은 딸아이 자신이 제일 크게 맞닥뜨린 것 같다.

이사 후 며칠 만에 마주 앉은 식탁에서 딸아이는  까칠한 얼굴 표정으로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는다.

막상 독립을 해 자신의 살림을 차려 놓으니 이제 정말로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꾸려가야 할 삶의 무게가 아주 현실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당연히 그렇겠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야 하니 그 부담이 어찌 가벼울까.

대학생활 때 잠시 집을 떠나 있던 것 외에는 이십여 년을 부모의 그늘에서 먹고, 자고 했었는데.

그 부모의 우산을 벗어났으니 독립의 즐거움을 느끼기 전에 

갑자기 밀려든 삶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극복해야 할 과정 중 일부일 터.

피곤함과 삶에 대한 걱정에 절어 힘들어하는 딸의 얼굴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 올라온다.


결혼으로 부모품을 떠나는 것이 아니었어도 

독립한 성인으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살아야 하는 새 출발을 하는 딸.

조금씩 홀로서기에 적응하면 독립의 행복함을 느끼며 당당하게 서는 날이 오겠지.

부모의 마음으로 걱정, 불안, 안쓰러움이 겹겹이 일어나지만,

그냥 딸을 믿고 건강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며 행복하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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