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후배는 퇴사하겠다고 말했을까? 그에게 숨겨진 비밀
퇴사하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춘다. 축하한다고 말하기엔 떠나는 그 마음의 무게가 느껴지고, 가지 말라고 말하기엔 이미 멀리 마음을 접은 눈빛이 보인다. 사람들은 대부분 연봉이 더 높아서, 조건이 좋아서 회사를 떠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무리 감춰도, 상처는 말끝에 스며 있다.
몇 년 전, 나는 한 후배를 보내야 했다. 누구보다 일 잘하고, 누구보다 조용히 자신의 길을 걷던 직원이었다. 말이 필요 없는 능력자였고, 집중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속도로 업무를 처리했고, 회의 중에도 이미 두세 걸음 앞서 있었다. 늘 정확하게, 단 한 번의 오차 없이.
그는 충분히 이 조직에서 칼이 될 수 있는 인재였다. 나는 그와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는 6시가 되면 퇴근했다. 그것도 당당하게. 남아있는 직원들은 그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못마땅해했다.
남아 있는 직원들은 야근을 했고, 이유 없는 불만이 쌓였다. 직원 각자 공평하게 나뉜 업무였지만, 그가 일찍 나가는 이유가 그저 ‘일을 잘해서’라는 사실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대신 "쉬운 일만 맡은 게 아니냐", "왜 자기는 혼자만 퇴근하냐"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말이 없었다. 조용히 웃으며,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의 일을 끝냈고, 퇴근 후에는 학원에 다니고, 자격증을 준비하며, 꿈을 키워나갔다. 그는 시간 안에 업무를 완료하기 위해 일이 많은 날은 점심도 줄이고, 화장실도 참았다. 하루 중 단 몇 시간 만 이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업무를 시간 안에 끝냈다. 그는 온몸으로 ‘업무 시간’을 집중했고,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줄였다.
하지만 그의 "다름"은 동료 직원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다. 팀워크라는 이름의 회식, '같이 늦게 가야 덜 미운' 문화 속에서, 그는 조금씩 외로워졌고, 질시와 왕따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 술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형, 나는 그냥… 나답게 살고 싶었어요.”
나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아니, 붙잡지 않았다. 그는 떠나야만 하는 사람이었고, 어쩌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 그가 떠난 자리엔 야근이 남아 있고, 불만이 남아 있다. 평균적인 업무, 평균적인 책임, 평균적인 야근 속에서 다들 '평균적인 불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후배는 그 누구보다 자기 시간을,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나는 오늘도 가끔 그를 떠올린다.
내가 그를 붙잡지 않은 것은
그는 이미, 붙잡을 수 없는 속도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한 명의 동료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어쩌면 아주 중요한 무언가도 함께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