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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Jul 05. 2024

엄마로 인해

위안


엄청난 신기한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정말 웃기게도? 엄마와 내가 같이 백수가 되었다.

물론, 엄마는 다른 계획이 있어서 잘 다니던 일자리를 그만둔 것이고 나는 아무 계획 없이 상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잘 다니고 싶었던 직장의 폐업으로 인해 백수가 된 것인데 둘이 타이밍이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엄마가 가지고 있던 계획이 틀어지는 바람에 엄마도 나와 같이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나와 비슷한 듯 다른 점은 직장을 구해야 하고 새로운 곳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있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말로는 ‘나도 적응하려면 힘들지’라고 하지만 겉에서 풍겨져 오는 느낌에서는 위축된 모습이라던지 나처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것이 세월의 노하우이며 세월의 경험치인가?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새로운 곳에 면접을 보고 왔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라 애들 학교를 등교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연락을 해봤더니 아직 그곳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지금 아니면 같이 시간 보낼 타이밍을 놓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메뉴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생각하는 ‘쌀국수’


12시 약속시간 맞춰 나갔고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한 엄마가 나타나 말했다 “시간이 부족할 거 같아 근처에서 먹자”

딸아이의 하교 시간이 1시 30분쯤이라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하면 조금 애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쌀국수’를 먹고 싶었기에 말하려다 참았는데,

엄마가 먼저 그렇게 말해주니 아쉬우면서도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열심히 고르고 골라 근처 식당에 가서 둘 다 ‘비빔메밀’을 먹게 되었다


막상 동네에서 먹으니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고 걷는 걸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덥지 않고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서 걷고 또 걸으며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는 이어졌다.


사실, 언젠가 엄마랑 나눌 대화의 이야깃거리 종류가 사라져 간다고 느낀 적이 있었기에 이렇게 오래?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대화가 지속됐다는 것에 조금은 놀랐지만 아주 많이 기뻤다.


엄마와 둘이 함께 딸아이의 하교를 기다렸고 할머니까지 온 것을 본 딸아이의 얼굴엔 함박 미소가 지어졌다. 그 함박은 할머니가 와서 나타난 것임에도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 그래, 이렇게 자기 엄마가 와야 좋아하지. 한 달은 쭉 쉬어”

그렇게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나에게 깊은 위안을 안겨주는 말이었다.


나의 쉼을 좋아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을 하니 내가 지금 이렇게 쉬고 있는 걸 꼭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깊은 위안의 말이었다.


그래서 그냥 더 이상 혼자 이상한 쪽으로 음침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겪고 있고 겪고 지나가야 하는 이 순간을 감사히 즐기기로 했다. 내가 있어 행복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받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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