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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Oct 22. 2024

우리의 첫 만남은

[1]

그날을 기억해? 나는 지금도 여전히 아니,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하게 머리에 자리 잡는 순간이 우리가

처음 만났을 그때라고 생각이 들어


그때 나는 친구들과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동네로 돌아온 참이었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한국에 오면 살빼야겠다고 생각했고 동네의 한 체육관을 갈 거라고 계획하고 있었거든


어떤 운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친구 두 명, 나까지

세 명이 함께 복싱 체육관을 향해 걸으며 계단을 올라갔더니 문 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상치 못한 강한 압박감에? 우리 누구도 문을 쉽사리 열지 못했어


그래서 우린 유치하지만 가장 정당한 방법으로 가위바위보를 했고 하필 내가 진거야. 두 눈 꼭 감고 조금은 무거운 유리문을 잡아당겼지. 여는 순간 딸랑 종소리가 울렸고 순간 우리 쪽으로 쏠리는 여러 눈빛 속에서도 당신만 보이던 그 순간-


어느 만화에서 보았던 주인공처럼 큰 창틀 앞에 앉아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초등학생들에 둘러싸여 핸드폰을 잡고 있던 그 모습. 문이 열리고 한번 쓱 쳐다볼 뿐 곧바로 고개를 돌려 게임에 집중하던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반짝 빛나 보였을까?

햇빛 때문이었을까, 아님 당신의 민머리가 이유였을까?

아님 그 다른 것이 있었던 걸까.


앳돼 보이는 당신과 중년의 여성이 있었는데 그 중년의 여자가 우리를 상담해 줬고 그날 바로 입관을 했지


마침 우리가 갔던 시간이 뮤직복싱이라고 단체로 노래에

맞춰 복싱 동작을 한다고 하길래 맨 뒤에 가서 서서 하는데

당연한 거였지만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냥 막 따라 했지.

막 힘들기만 했지만 하고 나니 힘든 만큼 살이 빠질 것만 같이 느끼지기에 열심히 하고 싶어졌어.


거기다 한 가지의 이유를 덧붙이자면  잘하는 앞줄 사람들은 당신이 일대일로 미트를 받아주는 거야. 거기에 나도 그 한 사람으로 끼고 싶었거든. 그래서 나는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사람들이 안 보는 곳이면 뮤직복싱의 동작을 계속해서 연습했어 머릿속으로도 몸으로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하다 보니 한 줄 한 줄 앞줄로 나아가며 미트를 칠 수 있는 실력이 되었지

그땐 운동하는 게 얼마나 기다려지고 재밌던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날수록 기다려지는 게 운동이 아니라

당신을 만나는 시간이라는 걸 알아버리게 된 그 순간도

잊지 못해.


그렇지만 정말 당신에게 사적인 흑심을 차마 내진 못했어

친구들에게도 우리 관장님 멋있다고만 할 뿐, 사귀라는 장난스러운 말을 나에게 해댈 때면 정색하고 말했지.

그런 거 아니라고, 관장님은 관장님으로써 멋있고 좋은 거고

그 좋음과 이 좋음은 다른 거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지-


나는 내 주제를 우리의 현실을 잘 알고 있어서 그랬던 거 같아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이던 나와 체육관 관장의 차이.

거기다 12살의 나이차이. 내가 용기 내지 못한 이유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었지-


나중에 당신과 회원들이 일대일로 문자를 주고받는 친밀한 관계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억울하기까지 했다니까?

나는 정말 그런 상황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그림이니 말이야.


그렇게 내 첫 만남의 느낌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재밌게

운동하고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해 가던 중 운동이 끝나면

창 문 밑에서 내 이름 소리가 들려와 내다보면 술 먹자고

몰려온 친구들. 풋풋했던 우리-


그거 알지? 땀 뻘뻘, 성취감 가득 찬 운동 끝나고 마시는 술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하고 막힘없이 들어간다는 거

그리고 그날이 우리의 막힘없이 새로운 첫 만남이 된 달콤한 날이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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