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살 빼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시간만 되면 낮이고 밤이고
무조건 운동을 빠지지 않았어. 이때를 기점으로 삶은 달걀과 고구마를 아주 열심히 그것도 맛있다고 느끼며 먹어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
그런 나의 노력은 운동이 끝나고 저녁만 되면 창문 밖에서
불러대는 친구들로 인해 물까지는 아니고 거품이 된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날이 그 많았던 순간 중 하루였지
하필 친구의 새로운 남자친구를 처음 만나는 자리라
더욱 길게 이어진 술자리였어, 이젠 알지? 맞아 르미!
르미는 우리와 술을 마시다가 남자 친구가 오기로 했다면서 무슨 작정한 사람처럼 이전에 잘 볼 수 없었던 속도로 부어라 마셔라를 했어. 맞아 한마디로, 퍼 마시고 있었어
그렇게 먹으니 당연한 결말이겠지만 정말 취할 대로 취한
르미는 결국 남자친구가 오기 전, 술집 화장실에서 전세 낸 듯 그리고 자신의 집처럼 드러누웠지
근데 그거 알잖아, 르미 키 174.. 내 키를 훨씬 뛰어 넘는거
그렇게 취하면 이고 지고 가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정말 하늘이 도운건 르미의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거였어
더 다행인 건 그 남자친구가 르미보다 키도, 덩치도 컸기에 큰 어려움 없이 르미를 데리고 갔다는 거야.. 그렇게 르미를 보내고 남아있던 우리도 슬슬 집에 가자는 분위기였지.
그래서 나도 나가기 전 화장실을 들렸던 거야
화장실을 다녀오던 순간, 보인 상황에 깜짝 놀랐지 뭐야
세상에나, 그곳에서 당신을 만날 줄이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일이었기에 그만큼 매우 반가웠어.
그래서 당신에게 다가갔지. 물론 술기운이 있어서 할 수 있던 행동이었겠지만. 그때만큼 술이 고마운 적은 없는듯하네?
다행히 나와의 만남을 당신도 반가워하는듯했고 술이 오른 나는 민망함도 부끄러움도 없이 아주 자연스레 옆에 앉았어.
당신 또한 자연스럽게 맥주 한잔 마실 거냐고 물었잖아
시그널까진 아니더라도 나쁘다는 건 아니라는 게 느껴졌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며 한 번의 튕김 없이 앉아서 마셔댔지
그때 나랑 같이 온 남자인 친구 있었잖아. 어 맞아 구경이!
구경이는 항상 아무런 말 없이 나를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던 친구라 술이 오른 나를 두고 가는 걸 찝찝해했어.
그렇게 가지 않으려고 하는 구경이를 최대한 멀쩡한 행동과 말투로 연기하며 겨우겨우 보내고 나서야 당신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지
아, 그때 당시 당신이랑 기자 오빠가 같이 있었지만
근데 그때에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거 같았고 그냥
우리가 이렇게 우연히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낼 기회를 맞이했다는 거에 집중하며 결코 놓칠 수 없었어
술이 오른 나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셋이 술집을 나섰고
내가 그랬다고 하는데 정말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길에서 계속되는 뺑뺑이 속에 기자 오빠는 다음날 중요한 시험이 있다며 먼저 갔잖아. 드디어 갔네 갔어
정말 우리 둘만의 시간. 그날 우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자연스레 시작하게 되었지.
나중에야 알게 된 거지만 나는 거의 대부분 동네에 크게 자리 잡고 있던 ‘알바트로스’ 라는 술집의 단골이었거든
근데 당신은 그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의 오는 일이 없다고 했잖아. 그날은 시간이 늦어 주변에 갈 곳이 없어 가고 싶지 않았지만 왔다고 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우린 인연이 아닐까? 싶었어
뭐, 이렇게라도 끼워 맞춘 우연을 가장한 우린 인연이라는 걸강조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정말 그날 그곳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이어질 수 없었을 거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