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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라고 부르지 마

[6] 네 편, 내편

by 은조

새아빠가 가장 많이 하던 말, 언제나 그 말을 들을 때면 난 속으로 비웃어댔다. 우리는 가족이야.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야-


주입식으로 입력시키듯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재혼가정에선 아주 쉽게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이 엄청난 일로 돌아와 그냥 넘어가지 못하게 되는 일들로 뻥튀기되어 터져 버린다.


그러려고 했든 안 했든 그런 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그걸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태도만이 어떤지가 중요할 뿐.

대부분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불화는 가족회의라는

이름을 가진 채 편 가르의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 자신만의 생각을 주장하다 소리가 높아지고 자연스레

누구 한 명 눈물샘이 터지고 그러다 셋, 둘 편이 나뉜다

새아빠, 언니, 친구 그렇게 셋. 엄마와 나 이렇게 둘

원래 처음 모였던 그대로 -


그렇게 평소에는 가족이라고 가족이라고-

우린 무조건 한 가족이라며 강조하고 또 강조해 보지만

결국 작은 싸움일지라도 일이 일어나기만 하면 바로 싹-

빠르게 남처럼 선이 그어지는 현실이 어쩔 수 없는 재혼가정이라는 건 숨길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평소에 그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물론,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삐딱선을 탔던 건 아니었고

사실 처음 재혼하고 나선 그래도 아빠다 생겼다는 상황이

나름 좋기도 했던 거 같다. 그 후부턴 아빠라는 단어만 들어도 터졌던 눈물이 더 이상 흐르지 않았던 걸 보니-


그러나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 재혼을 하고 나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는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적어도 재혼 전, 엄마와 오빠 셋이 살 때는 찢어지게 가난하긴 했어도 엄마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보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 순간은 어찌나 고통스럽던지


둘의 싸움은 엄마 오빠가 싸우던 둘의 사춘기 싸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반 가족 싸움이 아닌, 엄마의 죽음까지도 걱정이 되었던 그 어린 날의 마음 기억이 아직도 이토록 선명하니


한날도 일방적인 싸움은 시작되었고 우리 엄마가 당하는

모습에 무섭지만 새아빠에게 울고불고 말리며 매달렸다.

아빠 그러지 말라고, 아빠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아빠라고 부르지 마! 네 아빠 아니야!


얼음에서 땡 하고 깨어나듯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때부터

현실을 직시했고 그제야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맞아, 아빠 아니지. 남이지-


두 어른은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며 우리 어린이들에게 상처를 밥 먹듯 주었고 그렇게 계속될수록 상처와 물론 증오심을 더해주었던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더 이상 나에게 그 집단은 가족이 아니게 되어갔다

원래부터 가족이 될 수 없었던 것이었지만 말이다


어느 순간에도 편은 나뉘게 되었고 우리의 싸움이 어른들의 싸움이 되면서 가족대 가족싸움으로 변해갔고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된 우리도 점차 쉽게 화해하고 쉽게 마음을 풀지 못하는 순간이 많아졌는데, 그런 모습이 오래갈 때면 새아빠는 꼭 우리를 불러 앉혀 놓고 이렇게 말을 했다.

-이혼하길 원하는 사람 손 들어


그럼 언니랑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바로 번쩍 손을 들었지만 동갑인 친구만 들지 않았던 것. 매번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고 나면 새아빠가 하는 말이 있었다.

- 잘 살아야지. 우리 누구보다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늘 이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갔다.

왜? 우리는 이혼하길 원하는데 왜?

어차피 결론을 이혼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왜 묻는 건지 그럴 거면 묻지나 말던지 감정 가지고 장난하는 건가? 또다시 반항적인 마음이 치솟으며 도저히 나에게 그곳은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없는 곳이 되어갔다.


그렇지만 그 집단에선 그들이 보기엔 나만 유별나고 나만 튀는 행동을 하는 문제아였다. 그냥 무난하게 따라가고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으면 되는 거였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그때그때 내 생각에 반응했고 하라고 해도 내 생각에 행동했으니 말이다. 그런 나에게 계속해서 다가오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진심이 아니란 걸 너무 빨리 알아버린 탓에 나는 전속력을 다해 도망쳤다.


그것이 나의 20살 독립이었다.

한동네 살면서도 굳이 월급에 많은 돈을 월세에 지출하면서도 나는 나와서 살아야 했다.

비겁하지만 내가 살아야 했으니 조금이나마 살고 싶게 마음을 열어주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마저도 별난 행동을 한다고 손가락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알아서 내 두 발로 그 집단에서 걸어 나가준 나에게 고마워한다는 걸 난 알고 있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라는 걸

그러고도 충분한 사람들이기에-


지금도 딱 콕 집어서 누구 향한 것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큰 덩어리로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편들은 여전히 잘 지켜져서 살아가고 있는 반면에

내편들은 몸도 마음도 흩어져 살아가고 있으니-


한쪽은 여전히 철석같이 잘 붙어살고 있는데 한쪽은 여전히 갈기갈기 찢어져 살아가야 하니.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지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에 서글픔이 차오른다


그런 뼈저린 아픔을 경험해 봤기에 미래에 내 자식들에겐 절대 나와 같은 아픔을 물려주고 싶지 않던 나에게 하늘에서 선물로 내려주듯 운명 같은 남자가 나타났고 감사하게도

그 남자는 나의 남편이 되어주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최고의 남편일 될 거라는 생각보단 생각을 나눌수록 분명 이 사람은 최고의 아빠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바르고 튼튼하고 단단하게 가정을 이뤄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그런 확신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까지는 나의 지난날의 겪었던 과정들과 경험들이 있어야만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아, 이렇게 나의 결핍을 최대로 채울 수 있는 날을 맞이하기 위해 버텨야만 했던 세월이었던 것이라는 걸-


그런 날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고도

귀한 것이라는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고 그러니 꼭 그 모든 순간들이 최악만을 아니었다는 것을 그 안에서도 배우고 채우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이런 소중한 가정 안에서 느끼고 알아가야 할 것이 있다면

흩어진, 찢어진 원래 우리 편들을 다시 합칠 수 있도록

졌다는 마음과 서글픔이라는 감정에 쌓여 더 나아가야 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은 그만두고, 또 다른 세상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나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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