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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 Mar 03. 2024

진실은 추악하다 (2)

세상 남자들이 다 아빠같다면 나는 누구와도 결혼을 하지 않을거야

상간녀 O와 통화를 마치고 친구들 앞에서 악에 바친 눈물을 쏟아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통화 내용을 작은엄마와 엄마에게 얘기하니 작은엄마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저자세에, 기가 죽었냐며 화를 내셨다.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던 것 같다. 서운했다. 사랑하는 딸이 남편의 상간녀에게 막말을 들으면 보통의 엄마들은 눈이 돌지 않을까. 아니면 엄마도 만약 내 상황이었다면 나처럼 행동했으리라 예감했기 때문에 침묵한 걸까.


'너희가 잘못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친가 식구들도 상간녀도 우리가 아빠에게 상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가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고, 그래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에 핏대 높이는 대신 덜컥 겁이 나는 건 아빠에 대한 내 사랑이 충분치 않았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아이처럼 이 거짓말같은 현실을 '내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귀인하는 것일까? 세상으로부터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맞고 있는건 엄마와 나인데,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고 있는게 너무 이상했다.


이후 아빠의 사업체, 차명투자된 땅과 관련한 O와의 대화는 모두 삼촌이 일임하셨다. 엄마와 나 대신 삼촌이 서류상 대표직을 맡으시고 이후 주식, 대표자 연대보증, 주식 등 회사 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O를 배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O는 아빠가 계약금만 지불한 상황이었던 건물 매수 건과도 긴밀히 얽혀있었다. 아빠의 회사나 개인 신변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가 머뭇거릴 수 밖에 없는 것들을 O는 잘 알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상간녀의 도움 없이는 아빠의 회사나 신변 정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삼촌은 후에 O를 두고 순수하다고 말했다. 악의가 없고 순수하다고. O는 이후 삼촌과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며 명절이면 선물을 보냈고, 아빠의 장지를 다니고, 이후 수목장 위치를 옮기자 삼촌에게 바뀐 장소를 물어 그곳까지 따라갔다고 한다. O는 아빠와 동업했고, 청산하지 않은 금전관계가 있던 공인중개사 K가 아빠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다닐까봐 개인 사비로 몇천을 송금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우리 집이 어려울때는 아빠 대신 집 월세를 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O는 아빠의 겉옷, 이불, 가습기같은 것들을 챙겼다. 우리가 세탁소에 있다고 생각한 아빠의 옷을 다렸다. O대한 악의는 사라지지 않았으나 동시에 같은 여자로서 연민도 들었다. 사람들은 지금 누가 누굴 불쌍해 하냐고 욕을 하겠지만. 


O와 삼촌이 협력해서 회사 일을 해결해 나가고, O에 대한 이야기들을 건네 듣는게 익숙해지며 어느 정도 시점에서는 그녀에 대한 말이 나와도 웃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빠와 O, 두 사람 간에 어떤 일이 있었고 둘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이야기일것이다. 그러나 아빠의 사후, 아빠의 행적에 분노를 느끼고 있던 나로서는 이제 O가 아빠같은 사람에게 그 긴 시간 호구를 당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후 엄마와 나는 삼촌을 가운데에 끼고 O를 한 번 만났다. O는 이전의 전화에서처럼 공격적이지 않았다. 다만 지기 싫다는 듯 처음에는 눈을 홉뜨기는 했다. 나는 거기에 대거리하지 않고 차분하게 당일은 조금 당황했으나 우리는 그녀에 대한 미움이 없고 이제는 모두가 편안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얘기를 하다 복받치는지 눈물을 흘렸다. 말이 없던 엄마는 그녀에게 짧게 잘 살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를 내내 살피고, 엄마와 손을 잡은 채 자리를 떴다. 


이후 그녀는 삼촌에게 OO가 너무 예쁘다고, OO같은 딸이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삼촌은 웃으면서 돈 많고 능력 있는 새엄마가 생겼다고 생각하라고 농담을 하셨다. 나는 그 말에 따라 웃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예쁘고 똑똑하게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가진 건 나밖에 없으니까. 엄마가 자랑할 만한 게 나 하나인데 내가 볼품없어 보이면 안 되니까. 정작 이 안에 뭐가 들어앉았는지 아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떤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마땅히 느껴야 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나는 이 시간을 지나면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아빠의 상간녀가 불쌍하다'. 자신을 가둔 납치범에게 연민을 느끼는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어느 관공서에 다녀 오니 엄마와 작은엄마, H오빠웃으면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분명 내가 나가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던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하니 잠시 머뭇거리던 작은엄마는 아빠의 휴대폰에서 외도 흔적을 하나 발견했다고 하셨다. 심각한 것은 아니고,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었던 같다고. 


사람이 여러가지 일을 겪고, 그것이 자신의 인지 범위나 소화 가능 수준을 넘어서면 이성이 마비된다. 아마 엄마가 깔깔 웃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깊은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냥 동창회에서 만나서 잠깐 마음이 끌렸었나봐', 작은엄마는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냥 아빠가 참 부지런했구나 하는 생각만 들더라. 한꺼번에 4명의 여자를 인생에 두어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어떤 결핍과 해소되지 않은 정신적 문제가 아빠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을까.


어느 날, 자기 전 엄마는 조용히 자신은 아빠가 밉지 않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엄마가 숨겼을 뿐, 특히 내가 어렸을 때 아빠가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인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빠는 심지어 내가 아장아장 걸을 때는 직접 여자들이 나오는 유흥주점을 운영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아빠가 정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해.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래도 아빠가 엄마한테 잘 했잖아."


사람이 사람에게 '잘 한다'는 건 뭘까. 우리는 그놈의 '인간성'이라는 말을 핑계로 얼마나 많은 과오를 눈감아야 하는가. 나는 이것을 인간다움이라고 하고 싶지도, 죽음 앞에 모든 인간적 과오가 사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남자들은 원래 그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당연한걸까? 아빠는 접대가 많기로 유명한 건설업에 종사했고, 심지어 대표였으며, 여러개의 사업체를 운영했다. 그럼 외도가 당연하고,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 가는 것은 떳떳한 것이 되는 걸까? 나는 여성주의 정신으로 설립된 대학에서 공부했다. 아빠를 사랑했고 아빠로부터 끔찍한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빠같은 사람을 만날까 무서워 결혼하지 못할 같다. 내가 모르는 것을 상식이라고 말하며 그마저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세상이라 결혼하고 싶지 않다. 아빠는 부분에 대해 내게 사과해야 한다.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죄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란 걸 안다. 그러나 나는 단지 한 명의 사람일 뿐인 걸 알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죄에 대한 명분이 아니라, 아닌 것은 아니라고 믿고 지켜가면서 사는 게 나의 '인간성'이다.






아빠와 O가 처음 만난 시기를 알게 된 후, 엄마가 내게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시절 아빠가 이혼을 얘기했던 걸 기억하냐고 물었다. 기억한다. 밖에서 밥을 먹다 말고 아빠에게 엄마와 이혼하지 말라고 울었다. 그 날 처음으로 아빠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제대로 들었었다. 아빠의 어린 시절, 유기 경험, 자살 기도 등. 아빠는 엄마와 아빠는 너무 달라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아빠에게 엄마를 버리지 말라고 말했다. 아빠도 많이 울었다. 


나는 아직 어리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집에 와서 아빠의 말을 복기하며 그 대화를 기록으로 남겼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나중에는 이해하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집도 카페도 아니고 무슨 고깃집에서, 너무 울어서 코 밑이 빨개져서 돌아왔던 밤. 무슨 판도라의 상자도 아닌데 아직 그 어린애가 쓴 글을 읽어볼 용기조차 없지만.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너, 아빠한테 나를 버리지 말라고 했어?', 몇일 후 괴로운 듯 묻던 엄마의 목소리도. 이혼 얘기는 그 날 이후로 쏙 들어갔지만, 아마 아빠는 그때 O를 만나고 O와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 관계를 이어왔던 것 같다.


아빠의 외도가 여러 건이었다는 사실을 안 후 나는 징그럽다는 생각과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가졌다. 아빠에게 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충실, 책임감이라는 덕목이 뭐였을까 생각해본다. 인간은 양면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면모를 통해 그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런 핑계나 변명 뒤에 숨지 않고 스스로에게 떳떳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숨쉬는 세상에서 아빠에게 쉽게 면죄부를 주고 싶지는 않다.


우리 아빠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남편이자 아빠였다. 만약 정량적으로 측정한다면 아마 100명 중 98명은 좋아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만약 세상 남자들이 모두 다 아빠같은 사람이라면 나는 결혼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설마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서글픔은 없겠지. 내가 결혼을 꿈꾼다면 그 이유는 아빠같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기 위한 것이 아닐테니까.


죽음 앞에 외도는 하찮은 것이 되는 걸까? 모두 덮으면 남은 사람들의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들추는 것은 고인의 명예를 위해 옳지 않은 걸까? 모든 걸 따지고 드는 내가 잘못된 걸까?


아빠를 미워한다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지 못한대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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