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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 Feb 26. 2024

진실은 추악하다 (1)

아빠의 신변 정리를 하다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직면하고 고인의 신변 정리를 하다 보면 때때로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휴대폰에 있는 내용들을 들킬까 무서워 자살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밈처럼,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모서리들을 측근들이 없도록 미리 정리하며 죽음을 대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니까. 나 또한 아빠의 신변 정리 내가 몰랐거나, 직감했으나 모른 척했던 진실들과 목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추악한 것 중 하나가 외도였다. 못 본 척 감을 수도 없게, 아빠의 죽음과 사업체에 아주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던 여러 개의 외도.


'죽음'이라는 거대함 앞에서는 많은 것들이 중요치 않은 것으로 격하된다. 나는 '아빠의 외도'라는 주제를 언급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발언권을 영원히 잃은 아빠에게 과연 공평한 것인지 고민해 왔다. 누군가는 아빠의 죽음 앞에 그런 것들이 중요하냐고 나를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빠의 죽음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가 스스로 했던 단 하나의 약속은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하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고인의 명예를 위해 이를 무덤에 함께 묻는 대신 처절할 정도로 솔직하고자 한다. 나는 아빠의 잘못을 '인간다움'이라는 세간의 흔한 변명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아는 아빠의 인간성은 훨씬 더 좋은 것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빠는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아빠는 조수석에 탑승 중이었고, 운전자는 아빠의 외도 상대 B였다. 뒷자리에는 동승자가 2명 있었고, 그중 한 명이 아빠와 응급실까지 동행했다 도주한 사람(S)이었다. S는 아빠가 대표로 있는 건설회사의 클라이언트이자 아빠의 친한 지인이었다. B는 사건조사 중, 경찰에 S가 사고 직후 '여자들이랑 있던 걸 알면 집에서 시끄러워지니까' 구급차를 부르지 말고 낙상으로 입을 맞추자고 제안했다고 진술했다.


아빠는 B의 지인이던 S에게 B를 소개받았다. 나는 발인 이후 아빠의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해당 내용을 발견했으나 우선 침묵을 택했다. 며칠 후 내가 집을 비운 사이 같은 내용을 발견한 엄마는 내가 볼까 놀라 대화방을 나와버렸다고 한다. '왜 그랬어?' 물으니 '니가 아빠 미워할까 봐' 그랬다고 했다. 


만약 물증이 없었다 한들 어떻게 모를 수 있었겠는가. 내가 알고 있었지만 포기하거나 모르는 척 한 아빠의 잘못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엄마? 외도 사실 자체로 아빠라는 사람이 새삼 미워지지는 않았다. 그저... 가지가지한다 싶었다. 한심하고, 애잔하고, 수치스러웠다. 그저 사람들에게 기억될 아빠의 마지막이 이런 식이라는 것이 불쌍하고 부끄러웠다. 추한 것들은 좋은 것들보다 오래 기억되니까.


음주운전 당사자인 B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은 이후 사고 관련 민형사 소송에서 아주 불리하게 작용했다. 당시 택시가 잡히지 않아 B가 운전을 고집했지만 아빠가 음주운전을 만류했고, 중간에 차에서 내려 택시를 부르려고 했던 시도 등은 인정되지 않았다. 나는 B를 용서하지 못하겠지만 그 이유는 단순히 B가 상간녀 이어서가 아니다. 만약 아빠가 살아있을 때 외도를 들켰더라도 내 비난의 방향은 오직 아빠만을 향했을 것이다. B는 우리 엄마나 나에게 어떤 책임도 없다. 외도는 B 본인의 인간적 결함과 하자에서 비롯된 것이지 우리 모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다르다. 아빠는 아빠의 외도가 우리를 상처 입힐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한 것이다. 그러니 나는 세상이 선고한 아빠의 '과실비율'을 붙잡고 늘어나고 싶지 않다. 왜냐면...


아빠. 아빠가 정말 잘못한 거야.






사망 신고와 함께 신청한 재산 내역 조회 서비스 결과가 도착했다. 내역은 개판이었다. 사업체를 확장하는 것에 주력했으니 이렇다 현금 자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상속받을 재산이 많을 것이라 수군댔지만, 정말 우리는 당장 살고 있는 집부터 나가야 할 판이었다. 엄마는 그래도 사채를 쓰지 않은 다행일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상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D리 땅이 포함되지 않은 점이었다. 땅은 아빠가 구입 당시부터 자주 언급하면서 엄마를 데려가거나, 최근까지도 내게 명의 변경 등을 얘기했던 재산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확실하다'라고 있는 되는 재산이었기 때문에 내역에도 당연히 포함되는 게 맞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빠에게는 B와 별개로 10년이 훨씬 넘은 내연녀 O가 있었고, 해당 땅은 그 사람의 명의를 빌려 한 차명투자였다(O는 공동투자였다고 말한다). O는 아빠가 대표로 있는 회사의 3대 주주 중 한 명이었고, 아빠의 측근들이나 회사 직원 중 몇 명도 암암리에 그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아빠의 죽음 이후 아빠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 수상했던 저장명. 어떤 이름에 대해 질문하니 '사모님 아니세요?' 하던 한 직원, '혹시 알고 계셨나요?'라는 질문에 난처하게 선을 긋던 H상무. 엄마와 내가 아빠의 회사 운영과 관련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겠지만... 아빠는 정말 조금도 조심하지 않았구나, 조심할 생각조차 없었구나 싶어 마음이 쓰렸다. 우리가 바보 같아 보였을까?


아빠는 회사 옆의 땅을 사고, 그곳을 회사 자재를 보관하는 창고이자 작게 농사를 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진돗개도 두 마리 길렀다. 대충 집 비슷한 것을 지어두고 밥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커다랗고 제대로 된 집에, 하루에 한 번씩 청소를 해 주고, 주말에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 밥을 챙기러 갈 정도로 정성이었다. 우리는 아빠가 떠난 후에 하루에 한 번씩 그곳에 들러 밥을 줬다. 개를 키워본 적이 없어 뭘 줘야 할지도 몰랐지만 우선 가장 좋다는 사료를 시키고, 어색하게 호스로 주변을 청소했다. 


그런데 당시 오가던 중에 몇 번쯤 익숙한 차를 마주쳤다. 땅 주위에 둘러진 높은 펜스 옆에 주차된 차는 매번 우리의 도착하기 바쁘게 자리를 떴다. 엄마는 그 차가 엄마가 이전에 타던 차인 것 같다고 했다. 아빠가 엄마에게 새 차를 사 주고, 전에 쓰던 차는 회사 차로 쓰겠다며 가져갔는데 아무래도 그 차인 것 같다고. 엄마는 아무래도 두 개의 이름이 O와 O의 친구의 본명을 딴 것 같다고 했다. 작은엄마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하셨다. 엄마가 그 이름으로 개들을 부르고 싶지 않다고 해서 내가 다른 이름을 지어주었다. 성견이 된 진돗개들은 이미 주인을 알아보고 충성하는 상태라 선뜻 데려가겠다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그 개들을 겨우 다른 사람들 편에 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차마 만져보지도 못했지만, 엄마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잘 키워 주겠지? 잡아먹는 거 아니겠지? 미안하다. 잘 살아야 돼.


그러면서. 개들을 보내는 날도 시리게 추웠다. 두 개 중 한 마리가 자꾸 목줄을 풀고 달아나려고 했다. 엄마는 그 개를 다독이면서 계속 울었다. 처음 아빠의 영정사진을 들고 이곳을 찾았던 날이 생각났다. 기억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아빠의 옷을 들고 왔을 때, '알아보나 봐' 하며 웃었던 것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B와 아빠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였고, 관계의 깊이와 관련 없이 경찰과 변호사에게 일임할 문제였다. 하지만 O는 달랐다. O는 땅과 회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하는 존재였다. 엄마가 머뭇거리자 작은엄마가 대신 전화를 거셨다. 작은엄마는 'OO의 작은엄마'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O의 집에 있는 아빠의 물건을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O는 그것을 아는 스님에게 물어 이미 태웠다고 답했다. O의 태도가 너무 당당하고 뻔뻔해서 충격적일 지경이었다. 아빠의 물건을 유족의 동의 없이 멋대로 처분했다는 말에 분노로 피가 말랐다. 이 사람은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보이는 걸까?


누군가를 직접 대면한 적 없는 상황에서, 파편화된 일화나 옮겨지는 말로만 어떤 사람을 상상하면 불안이 더 커지는 법이다. 나는 유족이었고 켕기거나 부끄러운 것이 없었다. 반면 엄마는 침울하고 기가 죽어 있었고 나는 그 꼴을 눈 뜨고 보기가 힘들었다. 결국 방으로 조용히 들어와 베란다에서 O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또 받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가 길렀던 개들의 이름 중 하나를 딴 O의 친구이자, O가 현재 일하고 있다던 부동산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부동산 맞나요?"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혹시 O씨 계신가요?"

"지금 자리 비우셨는데요. 어쩐 일로 전화하셨어요?"


나는 나중에 다시 걸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O에게 문자를 보냈다. 'A의 딸 OO인데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답장은 없었다. 힘이 쭉 빠졌다. 심장은 계속 쿵쾅거렸다.


다음 날 아침 친구 한 명이 인터폰을 호출했다. 울고 있었다. 전날 통화 연결에 실패하고 친구들 중 한 명에게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신변 정리를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걸 어떤 암시라고 받아들인 것 같았다. 나와 연락을 한 친구가 자신도 곧 갈 테니 먼저 가서 내가 괜찮은지 봐 달라고 했다고 한다. 친구들을 보니 감정이 줄줄 새 나왔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미치겠다고, 세상이 나보고 죽으라는 것 같다고 악을 쓰고 울고 싶었다. 부모뻘 능구렁이들 상대하면서 숨겨진 진의를 짐작하는 것도 힘들고, 자기가 잘못해 놓고 당당한 사람들한테 분노하는 것도 소름 끼치고 질린다고, 엄마는 나만 쳐다보고 있는데 사실 나 정말 숨 막혀 죽을 것 같다고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깨끗하고 착한 사람들.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생각하는 인연들. 그 사람들에게 내가 처한 추한 현실을 고백하기가 너무 수치스러웠다. 얘들아, 사실은. 우리 아빠가 타고 있던 음주운전 차 운전자가 내연녀래. 근데 그게 다가 아니야. 아빠 회사 이사이자 우리가 알고 있던 재산 실 명의자도 내연녀래. 이쪽은 10년도 훨씬 넘었대. 근데 이 사람들이랑 대화를 해야 돼. 따져 묻고 악 쓰고 책임을 묻는 입장이 아니라 우리가 답답하고 아쉬운 입장이 됐어. 나 어떻게 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친구에게 휴대폰을 빌려 전화를 걸었다. O가 받았다. 


"O씨 맞으신가요?"

"네. 맞는데요?"

"저 A씨 딸 OO입니다."

"알아요. 왜 전화했대?"

"네? 저희 할 얘기가 많지 않나요?"


나는 당황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길게 산 것은 아니고, 따지고 보면 좋은 환경에서 똑똑한 사람들과 어울린 것은 맞지만 그래도 어딜 가나 이상하고 무례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O의 목소리에서는 유족에 대한 예의나 도의상의 미안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낭랑하고 뻔뻔했다. 형식적으로나마 예의를 갖출 것을 예상했던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말을 더듬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데?"

"땅 관련해서도, 회사 관련해서도요. 전화는 왜 피하셨어요? 제가 부동산으로도 걸었는데."

"그러니까. 나 있는지만 물어보고 왜 전화하라는 말은 안 해?"

"네? 전화 걸었잖아요. 그리고 남의 사업장인데 상도덕이 있지 그런 얘기는 하면 안 되죠."


나는 분노에 차서 말했다. 일부러 더 버르장머리 없이, 무서울 것 없는 척을 했다.


"왜 그렇게 당당하세요?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세요?"

"내가? 아니? 난 당당해.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는 너희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희가요? 저희가 뭐가 부끄러워요? 부끄러울 짓을 안 했는데요?"

"너희가 잘 안 했으니까 날 만난 거 아니야."


이쯤 되니 정말 분노로 이가 떨렸다. '너희'가 '부끄러워해야 한다'라니.


"그래서 저희랑 대화 안 하실 거예요?"

"난 할 얘기가 없다니까? 하, 나도 머리가 아파. 지금 해결해야 될 게 한 두 개가 아니야. A가 죽는 바람에..."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주저앉아 울었다. 아빠가 떠난 뒤로 아빠가 가장 미웠다. 어떻게 만나도 저렇게 병신 같은 사람을 만나. 왜 저딴 년을 만나서 엄마랑 나한테 이런 소리를 듣게 해. 왜 나한테 이런 일을 겪게 해.


분하고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결국 눈물을 보였다. 패배감이 들었다. 굴욕적이었다. 내연녀가 엄마를 욕보였다. 나를 우습게 알고 무시했다. 아빠가 죽는 '바람에'라고 했다. 


"나 이렇게 살기 싫어. 나는 한스럽게 살기 싫어. 이런 말 듣고 평생 수치스러운 기억 안고 살기 싫어. 잘못한 건 저 사람인데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돼? 내가 하지도 않은 짓 때문에 왜 이렇게 괴로워야 해? 나 앞으로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이런 패배감을 느껴야 돼? 죽기보다 싫어. 난 그럴 바에 그냥 죽을 거야..."


나는 포기하고 엉엉 울었다. 우는 게 굴욕적이라서 몸이 벌벌 떨렸다. 엄마한테 말해야 할까, 내가 이런 얘기를 들은 걸 알면 우리 엄마 속이 어떨까. 속이 썩어 들어갔다. 엄마한테 안겨 울고 싶은데, 지금 나한테 내어줄 품이 있을까.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고 있었다. 하나 확실한 건, 이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아빠가 너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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