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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Dec 13. 2021

아버지를 인터뷰하다

딸은 과연 아버지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2018년 5월 24     


오전 9시 30분. 아빠와의 인터뷰를 잡아놓고 솔직히 후회를 했다. 데면데면한 아버지와의 인터뷰라니,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을 삼십 분 앞두고 아빠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그와 5분 이상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었다. 한번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을버스에서 아빠를 만난 적이 있다. 


  - 아…… 아빠!

  - 어? 이제 오니?

  - 네. 식사하셨어요?

  - 암, 먹었지.  

  - 네…….(어색 어색^^::)    


금세 어색한 공기가 주변을 감싼다. 아빠와 나는 늘 거기까지였다. 안부를 묻는 것 외에 더 이상 나눌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꽤 오랜 시간, 돌이켜보니 무려 20년 이상 나는 아빠와 어색한 관계로 지냈다. 뭐랄까, 싫은 건 아닌데 한 마디로 말해 좀 불편했다. 혹은 대화가 통할 리 없다고 지레짐작했다. 그래선지 아빠와 허물없이 사이좋게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 늘 의아했다. 한 친구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속상한 일이 생기면 아빠에게 전화 걸어 투정을 부린다고 했다. 그런 관계가 부러우면서도 나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빠와 나, 우린 언제부터 멀어지게 되었을까? 너무나 아득해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때 우리는 꽤 살가운 사이였던 것 같다. 지갑 속에 넣어둔 한 장의 사진이 그걸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각각 네 살과 일곱 살인 나와 언니가 아빠의 커다란 품에 안겨있는 사진이 있다. 두 딸을 양손으로 번쩍 안아든 사십대 중반의 아빠는 젊고 다부진 몸에 자신감까지 넘쳐 보인다. 강원도의 어느 바닷가, 경포대쯤이 아니었을까? 햇살은 몹시 뜨거웠고 나는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렸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아빠를 좋아했던 게 분명하다. 우린 대체 언제부터 멀어지게 되었을까?

1980년대 초, 아빠랑 언니랑 해변에서

        

첫 번째 인터뷰가 잡힌 날, 동네 카페에서 아빠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불편하고 어색한 마음과 더불어 묘한 설렘이 느껴졌다. 낯선 감정을 품고 카페로 향하는 데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중요한 약속 장소에라도 가는 듯 한껏 잘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카키 색 모자에 베이지색 스트라이프 재킷을 갖춰 입은 멋스러운 노인이 저만치 서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옷발은 참 잘 받아, 라는 생각을 하는데 아빠가 먼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경희야!      


아빠는 더 없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마주 선 채로 서로를 바라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색해 죽겠는데 아빠는 손까지 흔들며 나를 향해 웃었다. 나도 도리 없이 한 손을 들어 몇 번 흔들었다. 잠시 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고 어느 지점부터 우리는 나란히 카페 방향으로 걸었다. 닿을 듯 말 듯 손끝이 몇 번 스쳤지만 그 누구도 상대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기분이 묘하게 좋아졌다. 나란히 걷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러고 보니 아빠와 함께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몇 발이라도 앞서 걸었고 우리는 따라가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지금의 나도 아이와 어딘가로 향할 때 나란히 걷기보다는 앞서 걷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유전인 걸까?        




오전 10시. 아빠와 나란히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공간에 들어와서야 나는 또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빠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셔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십분 정도 지나자 언니가 뒤늦게 카페에 도착했다. 그녀에게 인터뷰 참석을 제안한 것 역시 아빠와의 어색함을 희석시키기 위함이었다. 여든을 넘긴 아빠와 마흔을 넘긴 두 딸은 어색함과 후회, 그리고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각자 마실 거리를 주문했다. 아빠가 먼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나는 그가 커피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 커피 좋아하세요?

    - 그럼. 가끔 이렇게 한 잔씩 마시지.

    - 누구랑 요?

    - 같이 그림 배우는 사람들과 종종 카페에 가지. 

       나이 많은 내가 커피 한 잔씩이라도 사야 하지 않겠니?         


언니와 나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아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인터뷰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조금 저릿하고 이상했다. 아빠는 원 샷도 아닌 투 샷이 담긴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는 두어 번 재킷을 고쳐 입으셨는데 빳빳하게 다린 셔츠가 스트라이프 재킷과 참 잘 어울렸다. 어깨 깡패인 아빠는 티셔츠 보다 재킷을 입을 때 자태가 더욱 돋보인다. 사람에게 자태가 좋다는 건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생각이다. 문득 어릴 때 동네 골목 어귀에서 아빠를 마주친 기억이 났다. 그때도 아빠는 재킷 안에 잘 다린 셔츠를 갖춰 입으셨다. 그는 잠깐 외출하더라도 흐트러진 차림으로 동네를 활보한 적이 없다. 여든이 넘었음에도 패션 감각도 좋은 편이다. 대충 걸쳐 입은 것 같지만 안에 받쳐 입은 옷과 겉옷의 색상 배치까지 신경 쓴다. 한 마디로 감각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것이 공간의 힘이라는 걸까?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과 조명이 감싸는 카페에 서 아빠를 만나니 전에 몰랐던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내가 40여 년 동안 알아온 사람이 아니라 마치 처음 만난 사람과 마주 앉은 기분이었다.       


  - 아빠, 이제 녹음 시작할까요?

  - 그래. 해보자꾸나. 

  - 제가 질문하면 편하게 답 하시면 돼요.

  - 그러자. 뭐 재밌을 것 같구나.      


아빠가 먼저 여유롭게 웃었다. 그는 역시 고수였다. 서두르지 않았고 느긋했으며 한없이 자애로워 보였다. 역시 뭐든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예상과 달리 인터뷰는 편안하게 진행되었다. 아빠는 인터뷰를 많이 해본 사람처럼 대화에 거침이 없었고 표현력도 좋았다. 우리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크게 여러 번 웃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꽤나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커피가 식어갈 즈음 첫 번째 인터뷰가 끝났다. 


어쩌면 이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빠랑 마주앉아 커피 마시기

     


딸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http://naver.me/5YiuzOhl


김경희 / 공명(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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