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마음도 모두 다 사랑인걸까?
얼마 전 SNS에서 아빠와 딸이 등장하는 짧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겨우 돌이 지났을까 말까한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가 남편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아빠를 보자 무표정이던 아기가 신이나 비명을 지르는 영상이었다. 또 다른 동영상 속 아기도 현관에 들어서는 아빠를 보자마자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영상 속 아기들이 너무 깜찍한데다 아빠들의 반응도 감동적이라 나는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돌려 보기도 했다. 아버지들의 전성기는 바로 그때가 아닐까.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람 사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TV는 거의 시청하지 않고 SNS로 영상을 보는 게 익숙한 요즘이지만 가끔은 엄마와 나란히 앉아 TV를 볼 때가 있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잠시나마 엄마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보려는 것이다. 물론 엄마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나와 취향이 맞지 않는다. 특히 일일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가 그렇다. 게다가 그런 류의 드라마를 볼 때 엄마는 TV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집중한다. 아무 때나 어떤 회차를 시청하더라도 단 5분이면 전체 스토리가 짐작 가능한 뻔한 내용이지만 그건 나이들고 시간은 남아도는 엄마의 유일한 낙이다. 예전에는 저런 걸 대체 왜 봐? 라고 마뜩치 않아 했는데 요즘 우리 자매는 그냥 나란히 앉아서 그런 드라마를 함께 본다.
한번은 주말 드라마에서 어린 딸이 아빠에게 가지 말라고 하는 장면이 나왔다. 방금 전 일은 깜빡깜빡하는데 과거는 어쩜 그리 완벽하게 소환되는 건지, 그럴 때면 엄마는 아빠 이야기를 꺼낸다. 아빠와 산 세월이 지긋지긋 하다면서도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아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싫든 좋은 50년이나 함께 산 세월은 무시할 수 없는 가보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올라오기 전이니 아마도 197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시골 생활을 청산할 결심을 하고 본격적으로 서울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아빠에게는 젊은 아내와 4살짜리 아들, 그리고 두 살짜리 딸이 있었다. 서울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아빠는 한 달에 한번 씩 집에 다녀갔는데, 돌이 지난 어린 딸은 신기하게 단박에 아빠를 알아보았다. 하룻밤, 혹은 이틀 밤 겨우 자고 아빠가 다시 서울로 가려고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하면 어린 딸은 아빠의 바지자락에 매달려서 가지 말라는 표현을 했다. 엄마 말로는 언니가 말이 늦어 매달리는 것 외에 달리 표현할 줄 몰랐다고 한다. 엄마는 40년도 더 지난 이야긴데 엊그제 일처럼 말했다. 생각할수록 애틋한 상황이다.
그렇다. 거의 모든 딸들은 한때 아버지를 사랑했었다. 그런데 어쩌다 서로 소원해졌고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고 말았다. 그건 우리 자매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한번은 동네 엄마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내가 독서모임이란 걸 만들어 활동했을 때 나눈 이야기였다. 무슨 오지랖인지 10년 전 아이가 아직 유치원생이었을 때 나는 독서모임 한 그룹을 조성했다. 그 모임을 만든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저 육아가 지겨워서.
덧붙이자면 육아를 하면서 알게 된 동네 엄마들과 시시콜콜 살림 이야기만 하는 것이 어쩐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치찌개에 두부를 넣니 안 넣니, 마늘을 몇 쪽을 넣니, 그런 주제를 두고 카페에서 한 시간 씩 이야기 나누는 것이 나는 너무 지루했다. 물론 그건 취향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왕 남아도는 시간, 좀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싶어 내가 먼저 독서모임에 대한 화두를 꺼내놓았다. 5명 중 2명은 찬성이었고 2명은 반대의견을 냈는데, 두 엄마가 밝힌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한 달은 텀이 너무 길고, 2주에 한 권 정해진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첫 책은 모임의 사기진작을 위해 알랭드보통의 ‘인생학교 – 섹스편’이었고, 두 번째로 고른 책이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였다. 물론 5명 중 책을 읽지 않고 오는 참가자 2명이 존재했지만 어쨌든 참여율 100%의 독서모임인 건 분명했다. 두 번째 모임에서 책을 읽었든 안 읽었든 우리는 어느새 각자의 엄마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그날 나는 몹시 놀랐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아버지에 대해 불편하면서도 묘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점이다. 딸들은 어쩌다 아빠를 불편하게 느끼게 된 걸까?
우리는 다함께 크게 웃었는데, 웃음의 끝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용량 초과된 와사비가 듬뿍 들어간 초밥을 먹은 것처럼 어쩐지 코끝이 알싸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다. 다투는 일이 잦은 아빠와 엄마를 보면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결혼이란 걸 했지만, 이십여 년 혹은 삼십 여년의 짧은 경험으로 판단하기에 결혼이란 건 너무 복잡한 시스템이니까. 그날 독서모임에서 우리는 각자의 아버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누군가는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아빠와 잘 지내보고 싶은데 막상 만나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 우리는 책을 덮고 멤버 2명이 원하는 대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걸로 그날의 모임을 끝냈다.
거의 모든 딸들은 한때 아빠를 보면 좋아서 박수를 치고, 빙글빙글 돌며 사랑을 표현했지만 어느 순간 그들과 소원해지고 말았다. 요즘 세대의 아빠와 딸들은 좀 다르더라. 우리 세대의 아빠와 딸들 이야기다. 요즘 친구들처럼 아빠랑 카페투어나 빵지순례도 하면서 추억을 많이 남겼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랬다면 훨씬 근사한 아빠 모습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아빠들은 자신에게 있던 딸의 사랑이 다른 남자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슬픈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가히 가슴 쥐어뜯기는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그때 아빠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결국 지독한 사랑만 받고 보답은 하지도 못한 채 그를 보내고 말았다. 매우 늦었지만 나는 이제야 아빠의 사랑에 눈을 뜬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