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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Jul 06. 2020

5.18 정신의 산실,
들불열사기념사업회

들불열사기념사업회


(2004년 6월 29일 ~ )


1. 개요


 엄혹했던 1978년 7월, 선구적인 소수의 사회운동가들이 광주 광천동 광주공단에 노동야학 '들불야학'을 설립했다. 이들의 활동은 광주·전남 지역 노동운동의 시초로 평가된다. 들불야학은 노동자들과 함께 세상에 대해 공부하는 야간학교였음에도 교사와 학생이라는 진부한 구분을 채택하지 않았다. 이들은 교사와 학생 대신, '강학'과 '학강'이라는 개념을 채택했다. 강학, 가르치면서 또한 배운다. 학강, 배우면서 또한 가르친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동등한 주체로서 만남을 가질 때, 비로소 교육은 자유의 실천이 된다고 주장한 파울로 프레이리의 저서 '페다고지'에서 차용한 실천이었다. 그해 10월, 들불야학 강학 박기순과 윤상원은 나란히 광주·전남 지역 최초의 위장취업자가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가혹한 것이었다.


 들불야학은 설립 2년 만에 5·18 민중항쟁의 거센 파고에 휩쓸렸다. 들불야학 활동가들은 투사회보 제작을 시작으로 광주항쟁에 뛰어들었으며, 항쟁지도부 구성과 최후의 항전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들불야학은 인명피해를 포함한 심대한 타격을 입었으며, 결국 1981년 4월, 역사 속으로 소멸했다. 5·18을 전후로 들불야학에서 강학으로 활동했던 사회운동가들 중 일곱 사람이 짧게는 21세에서 길게는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들불야학 강학들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이들 일곱 사람이 노동운동,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청년운동, 주민운동, 문화운동의 영역에서 핵심적이고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2001년,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들불열사' 기념 활동을 종합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해, 들불야학 7열사를 기리는 '들불열사기념사업회'가 임시적으로 조직되었고 자료집 발간과 들불열사 추모비를 건립을 진행했다. 이후 사업회는 일시적으로 해소되었으나, 2004년을 기점으로 들불열사들과 관련된 활동을 이어가기로 하고, 2004년 6월 29일에 '들불열사기념사업회'를 창립하였다. 5.18 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로 알려진 합수 윤한봉이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2. 들불야학 7열사


박기순 (1954.11.07 ~ 1978.12.26) - 전남대학교 국사교육과 재학 시절 학내 시위를 주동하여 학교에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들불야학 설립을 주도했으나 1978년 12월 26일 불의의 연탄가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윤상원 (1950.08.19 ~ 1980.05.27) -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주택은행 서울 봉천동 지점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나, 회의감을 느끼고 광주로 돌아왔다. 이후 박기순의 권유로 들불야학에 합류하여 사회 강학으로 활동했다. 5.18 당시에는 도청항쟁지도부 대변인을 맡아 외신기자 대상 기자회견 등을 진행했다. 1980년 5월 27일 윤상원은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던 중에 계엄군이 발포한 M-16 총탄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박용준 (1956.07.09 ~ 1980.05.27) - 태어난 직후 영신영아원에 맡겨져 천애고아로서 성장했다. 성인이 된 후 영아원 서경자 원장의 도움으로 광주 YWCA에 취업하여 간사로 근무했으며, 광주 YWCA 신협에서 근무하던 김영철과 의형제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들불야학에 강학으로 합류한다. 1980년 5월 27일 박용준은 마지막까지 광주 YWCA를 지키던 중에 계엄군이 발포한 총탄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박관현 (1953.06.10 ~ 1982.10.12) - 전남대학교 법대생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중에 지인의 권유로 들불야학 활동가들이 구성한 '광주공단 노동자 실태조사팀'에 합류했다. 이후 윤상원의 제안으로 들불야학 강학이 되었으며, 1980년 4월에는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재건을 주도한 후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직후 예비검속을 피해 여수로 몸을 피했고, 그곳에서 5·18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1982년, 박관현은 도피생활 끝에 체포되어 내란주요임무종사죄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으며,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40일간 단식투쟁을 진행한 끝에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영일 (1958.10.08 ~ 1988.05.09) - 박기순과 함께 들불야학에서 초창기 멤버로 활동하였으며 전남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81년 5.18 진상규명을 요구한 전남대 9·29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후 광주교도소에서 박관현과 함께 40일간의 단식투쟁을 진행했으며 이로 인해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출소 이후 5.3 인천항쟁을 비롯한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결국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철 (1948.08.18 ~ 1998.08.16) - 박용준과 함께 광천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들불야학과 인연을 맺고 특별강학으로 들불야학에 합류했다. 이후 5·18이 발발하자 도청항쟁지도부 기획실장으로 항쟁에 뛰어들었으며 1980년 5월 27일 윤상원과 함께 도청을 지키던 중에 계엄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상무대로 끌려가 연일 가혹한 고문을 당했고, 석방 직후 심각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결국 김영철은 정신병원을 전전하던 중에 생을 마감했다. 


박효선 (1954.10.13 ~ 1998.09.10) - 들불야학 문화강학으로 활동했으며, 5.18 당시 도청항쟁지도부 홍보부장을 맡아 활동했으나 도청에 남지 못했다. 그는 이후 깊은 죄책감을 느꼈고, "4명이 있었다. 두 명은 죽었고 (윤상원, 박용준), 한 명은 미쳤고 (김영철), 한 명은 도망쳤다 (박효선)"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5·18 이후에는 평생에 걸쳐 5·18을 소재로 한 연극 10여 편을 제작하는 등의 문화운동을 주도했으며 과로 끝에 간암 판정을 받고 운명했다.


3. 들불열사 추모비


 엄혹했던 1970년대 후반. 광주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시대의 어둠을 밝히고자 했던 '들불야학'이 있었다. 1980년, '들불야학'은 5·18 민중항쟁이라는 거센 파도에 휩쓸렸고, 강학으로 활동했던 이들 7명 (박기순·윤상원·박용준·박관현·신영일·김영철·박효선)이 5·18을 전후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에 지난 2002년, 살아남은 사람들이 들불야학 일곱 열사를 기리는 영구 불망(永久不忘)의 기념비를 광주 서구 치평동 5·18 자유공원 앞 공터에 건립했다.


 들불열사 추모비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는데, 각 별의 위치에 들불야학 열사들의 얼굴이 세상을 떠난 순서대로 새겨져 있다. 북두칠성은 북반구에서 1년 내내 관측되는 별로, 나아갈 길을 확인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추모비의 이러한 형태는 방향성을 잃었을 때, 이곳을 찾아와 삶의 좌표를 찾아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두칠성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칠흑 어둠 속에서 별은 빛나고 혹한을 지나 들꽃은 피어납니다.

다만 지극히 낮고 뜨거운 열정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타올라 영원한 들불 한 점, 밝은 별은 노동자와 민중의 가슴에 깃들어

모든 억압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벗이 되었습니다.

삼가 세상의 순결한 것들의 이름을 빌어

아름답고 고귀한 님들의 자취를 여기에 세웁니다."


- 임오년 오월 들불열사기념사업회 -


4. 들불상


 들불열사기념사업회가 매년 수여하는 상으로 먼저 간 열사들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제정되었다. 들불상은 매년 1회 개인 혹은 단체가 수상하며, 상패와 함께 상금 1천만 원이 전달된다. 들불상에는 해당 연도에 부합하는 열사의 상징 및 수상 부문이 있기 때문에, 7년을 주기로 상징이 돌아온다. 들불상 각 열사들의 상징은 다음과 같다.


박기순 모범적인 여성 운동가

윤상원 모범적인 남성 운동가

박용준 모범적인 소년소녀 가장

박관현 모범적인 인권 운동가

신영일 모범적인 소수자 인권운동가

김영철 모범적인 빈민운동가

박효선 모범적인 문화운동가


5. 역대 들불상 수상자


2006년 제1회 들불상 - 모범적인 여성운동가(박기순)


민효준 (익산컨트리클럽 노동조합 위원장)

김소연 (전국금속노동조합총연맹 기륭전자분회장)


2007년 제2회 들불상 - 모범적인 남성운동가(윤상원)


이지경 (전 포항지역건설노동조합 위원장)


2008년 제3회 들불상 - 모범적인 소년소녀가장(박용준)


정세영 (광주 동신여자고등학교)


2009년 제4회 들불상 - 모범적인 인권운동가(박관현)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2010년 제5회 들불상 - 모범적인 소수자 인권운동가(신영일)


박경석 (전국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2011년 제6회 들불상 - 모범적인 빈민운동가(김영철)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

홈리스 행동 


2012년 제7회 들불상 - 모범적인 문화운동가(박효선)


송경동 시인

고 최정완 연출가

문화연대


2013년 제8회 들불상 - 모범적인 여성운동가(박기순)


김혜란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투쟁위원회)

공공운수노동조합 서경지부 홍익대분회


2014년 제9회 들불상 - 모범적인 남성운동가(윤상원)


조장희 (전국금속노동조합 경기지부 삼성지회 부위원장)


2015년 제10회 들불상 - 모범적인 소년소녀가장(박용준)


김효진 (세상을 떠난 쌍용차 노동조합 김종성씨 자녀)


2016년 제11회 들불상 - 모범적인 인권운동가(박관현)


문규현 신부


2017년 제12회 들불상 - 모범적인 소수자 인권운동가(신영일)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시민상주모임


2018년 제13회 들불상 - 모범적인 빈민운동가(김영철)


서지현 검사


2019년 제14회 들불상 - 모범적인 문화운동가(박효선)


김미숙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2020년 제15회 들불상 - 모범적인 여성운동가(박기순)


민주일반연맹 톨게이트 노동조합


2021년 제16회 들불상 - 모범적인 남성운동가(윤상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2022년 제17회 들불상 - 모범적인 여성운동가(박기순)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2018년 들불상의 경우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이사였던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의 추천으로 서지현 검사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들불상은 들불야학 일곱 열사들의 숭고한 정신 및 5.18의 역사성을 고려할 때, 향후 대한민국 사회운동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상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


6. 그외


- 들불열사기념사업회는 주요 사업으로 1박 2일 5.18 청소년 캠프를 매년 10회 가량 진행하고 있다.


-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사무실은 광주 동구 지산동 필문대로 205번길 10-1, 1층 오월의 숲 공간에 위치한다. 사무공간을 합수 윤한봉 기념사업회와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1층 공간을 작은 도서관 및 청소년 카페로도 활용하여,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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