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겪었다고, 사랑을 밀어낼 필요는 없었다. 또다시 상처받지 않으려 나를 잠가두고 모든 존재를 연기처럼 날려버릴 필요도 없었다. 되려 젊음이라는 귀한 손님을 귀히 맞이할 필요가 있었으며, 나의 첫 30살이라는 특별한 한 해를 슬픔, 우울, 절망보다는 기쁨, 산뜻함, 희망으로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있는 필요를 따르는 편이 행복할 선택이었다.
진지함-인생을 무겁고 심각하게 만드는 존재를 받아들여 그 커다란 바위에 내 삶을 묶어둘 필요도 없었다. 되려 나는 가벼워지기도 했다. 유쾌해지기로 했으며, 본래 나의 밝음을 다시 밝혀내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나를 가두어두었던 많은 울타리들의 나무를 하나하나 떼어보고 싶었다. 한 남자와 아이에게만 충실했던 그 시간을 후회하진 않았다. 또한 보수적이고 스스로를 통제했던 20대를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 또한 나였고, 지금의 나를 만든 나의 조각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도전한 일들은 이러했다.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과 수다 백 마디 떨어보기. 취한 채로 여러 가십거리와 작은 즐거움에 몸서리치게 웃고 떠들어보기.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클럽에 들어가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실어보기. 도서관에서 내가 원하는 공부 맘껏 해보기. 심리학, 철학, 좋아하지 않던 소설들까지 온갖 편견을 버리고 읽어보기.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날 훌쩍 혼자 여행을 떠나 해운대 바다 위 내려앉은 복숭아빛 하늘을 사랑해 보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에 나가보기 등등.
이혼은 나를 나다워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새로운 경험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삶. 나인 것 같지 않은 삶이지만, 이것 또한 나였다. 과거의 나 또한 타인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 삶까지도 만족스러웠다. 내가 발견한 나는 이와 같았다.
1. 생각보다 노는 걸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 나는 MBTI가 ENTJ가 나왔는데, (20대 때는 ENFP로 나 자신을 확신할 만큼 날 몰랐지만 아는 줄 알았다.) 20대 때부터 내가 E라는 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었다. 나는 I인 것 같은데, 굉장히 내성적이고 내향적이며,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사색을 좋아하며, 보수적이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결혼해서는 집안일, 저녁 준비 등의 이유로 더더욱이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특별히 해운대에 혼자 떠났던 여행에서 난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여자 동생과 친구가 되었으며, 새벽 3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다음 날 점심까지 같이 먹고 헤어졌다. 번호교환을 했고, 올라와서도 연락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분명한 E였다.
2. 관심사가 다양하고,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 아침마다 식사 준비, 아이 등원 준비 등의 이유로 아침이 늘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러나 이혼 이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영어공부 또는 독서, 요가나 스트레칭 등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친한 언니를 따라 재즈 공연을 몇 번 가게 되었는데, 재즈는 정말 몸을 움직이게도 하였고, 마음을 움직이게도 하였다. 그리고 퇴근 후 도서관에 들려 좋아하는 책들을 읽으며, 정말 놀이터처럼 책들의 메시지를 하나하나 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문장들에 잠기곤 했다. (물론 가끔 졸기도 하였다.)
3. 사랑이라는 낭만이 필요한 사람. 난 어릴 때부터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으니까.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사랑받기 위해 테토녀처럼 살았다. 하지만 나는 에겐녀였다.
사실 나는 작은 일에도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표현과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모성애와 헌신보다는 나를 아이처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 나를 보호해 주고 아껴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어릴 적 돌아가신 아빠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장면. 놀이터에서 놀림받고 울면서 돌아온 나를 보고, 분에 못 이겨 어디선가 막대기를 손에 들고 놀이터를 향해 앞서 가던 아빠. 물론 매우 과격한 방법이었지만, 나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안정감과 사랑을 느꼈었다.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는 요즘, 문득 이혼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나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계기가 얼마나 될까? 이혼이 아니었다면 나는 끝내 나를 찾아내기 힘들었을 거고, 나를 찾지 못한 결혼생활은 더욱 지옥 같았을 것이며, 물론 요즘 아이들은 똑 부러지지만 아이 또한 그런 나 같은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끝내 사랑하기로 했다. 사랑할 용기가 생겼다. 비로소 진정한 나를. 앞으로 더 새롭게 발견될 나의 모습들까지. 그리고 사랑받고 싶은 나를 인정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이혼한 만큼, 나는 이제 사랑을 받고 싶다. 낭만이 있어서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철없는 30살이지만, 정말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꾸밈없는 표현으로 나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 서로의 다름을 대화할 용기가 있는 사람. 그리고 함께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기다리보다는 이젠 찾기로 했다.
낭만이 기대된다. 나는 복숭아빛 하늘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