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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Jun 20. 2021

힘이 있으세요

아침에 일어나 세수만 하고 밖으로 나갔다.   천변을 걸었다.   사이에 달라진 . 무겁고 아픈 . 병원을 다닌다고 나아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은 스스로 몸을 돌봐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미쳤다.


“너무 안 드셨네요. 음식을 안 먹어도 살이 찌거든요.”


나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이가 말했다. 그리고 몇 달을 돌아보니 제대로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그제야 깨달았다. 생활을 했다기보다, 삶을 살았다기보다는 그저 끝나기만을 바랐다는 것을. 솔직히 나는 그냥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리하고, 다시 시작되는 일상이 아닌 모든 것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지워지기를. 그런 와중에도 내 몸은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다. 음식이 들어오지 않으니 언제가 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들어오는 양분을 붙들고 버티고 있었다.


봄이 지나고 몸이 더 무거워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원인 모를 통증이 생겼다. 봄이 되면서 내 생활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끼니를 챙기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게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두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너무 힘겹게 느껴질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과 발이 퉁퉁 부었다. 조금만 걸어도 허리가 앞으로 숙여졌다. 목부터 허리까지 이어지는 통증은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했을 때, 강사가 내게 말했다. 그동안 너무 먹지 않고 살았다고. 심지어 하루에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은 날도 있었다. 웃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괜찮다고 말하고 있던 나는 서서히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 마지막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이 조금씩 사라지기를. 버티는 것도 잘 지내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처음 하시는 데도 잘하시네요. 잘 이해하시고, 걱정하셨던 것보다 힘이 있으세요."


운동을 시작하고 한 달이 조금 못 되었을 때 그가 내게 말했다. 운동을 하고 나면 정확히 아파야 할 부위만 아팠다. 의식해서 들숨과 날숨을 들이쉬고 뱉고. 동작을 하면서 힘이 들어가는 근육들에 집중했다. 그렇게 50분을 꼬박 채우고 다음날이 되면 힘주어 움직였던 부위가 아팠다. 몸은 아팠지만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리고 운동을 하면서 들었던 말이 내게 힘이 됐다.


힘이 있으세요


버티는 동작을 해야 할 때, 흔들림이 적고 정확히 힘을 주어야 하는 부위를 알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버티는 것이 내가 할 줄 유일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던 시간이 길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가 싫었다. 그런데 운동을 할 때에는 그 과정을 버티는 힘이 꼭 필요했다. 자세가 무너지지 않고, 짧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몸에 힘을 균일하게 주면서 동작을 해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짧은 순간을 버틸 힘이 남았나 보다.


아침 천변을 걷다가 근처에 있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많은 종류의 운동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가장 즐겁게 했던 운동은 수영이었다. 늘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수영장 입구로 들어가 당장 강습 등록이 가능한지 물었다. 강습이 진행 중인 반이 있었고, 당장 내일부터도 가능하다고 했다. 망설임 없이 등록을 했다. 그리고 다시 천변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상자 속에 넣어 두었던 수영복과 수모, 수경을 꺼냈다.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7시에 시작하는 강습이다.


화요일 아침. 세수만 하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몇 년 만에 발을 차고 팔로 물을 가르며 앞으로 향했다. 몸이 잘 기억하고 있었다.


"숨쉬기는 상급반처럼 잘하시네요. 아까웠겠어요."


수영 강사가 말했다. 평영에서 더 배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다.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전에 배웠던 자유형과 배영을 다시 천천히 시작했다. 급하게 팔을 뻗지 않고, 3초 정도의 여유를 가지라 했다. 나의 조급함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면 강사가 크게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새롭게 수영을 시작하는 첫날. 나는 조급함을 가라앉히는 법을 배웠다. 그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3초의 시간을 기다리고 팔을 뻗어야 한다고. 모든 운동이 그렇듯 힘을 주거나 조급함을 다독이며 버텨야 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을 돌보고 마음을 돌보며 나에게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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