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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섭 Jul 13. 2023

< 불편한 것에 대한 맛 >

< 불편한 것에 대한 맛 >



조금은 오래된 이야기지만, 남대문 바로 북쪽의 현대경제일보사(한국경제신문사 전신) 뒤쪽으로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져 있었고, 그 골목길을 구불구불 가다보면 간판이 있는 듯 없는 듯 다 쓰러질 듯 한 구 가옥의 보신탕집이 하나 있었다. 허름하기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구석구석 방마다 벽과 천정이 무너질 듯 내려앉을 듯 울퉁불퉁 한데 돈벌레가 여기저기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스르르 기어 다니고 가끔씩 고양이보다 조금 작은 쥐들이 천정을 뚫고 쿵! 떨어져 간이 작은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기 일쑤였는데 어디 그뿐인가? 언제 산 것인지 모를 수명이 다 된 선풍기는 성능은 고사하고 덜덜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한쪽에 모셔놓고 차라리 부채로 땀을 식히는 정도였다.

그 허름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집을 손님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점심시간이나 초저녁 무렵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미어 터졌다. 당시 말단 셀러리맨 신세였던 필자도 점심때면 자주 들르는 단골이었지만 소설가 송 모씨를 비롯, MBC 챔피온스카웃 해설자로 이름 떨치던 김 모씨, 자영업을 하는 백 모씨, 남대문 국민학교의 선생님, 특허국과 서울시 공무원들, 덕수궁 주위의 변호사들까지 안 오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가히 직업의 귀천 없이 드나드는 식당이 바로 그곳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느 날 돈 푼 꽤나 있다는 한 양반이 이런 광경을 유심히 관찰하던 끝에 머리를 엉뚱한데다 쓰고 말았다. 그 근처, 그 집보다 목이 한결 좋은 도로변에다가 최신식 칼라 알미늄 미닫이문에 근사한 홀과 널찍한 마루방을 여럿 만들고는 홀은 물론이요 각 방마다 성능 끝내주는 에어컨까지 설치하여 보란 듯이 개업을 한 것이었다. 게다가 일류 주방장까지 모셔다 놓았으니 아마도 업주는 그 동네에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호주머니 돈은 몽땅 다 쓸어 모을 것으로 기대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예상과는 달리 개업 후 몇 달이 지나 철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도대체 손님은커녕 에어컨에 얼어 죽을 파리마저 비실비실 맥을 못 추고 있었으니 이게 무슨 알다가도 모를 죽은 개 귀신의 조화란 말인가? 소문에 필자도 한 번 구경하는 셈 치고 가보긴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도대체 보신탕집의 털털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고 가뜩이나 황량하게 넓은 홀에 에어컨의 찬바람이 짧은 소매의 팔에다 소름만 돋게 하니 값비싼 고기와 별별 양념에 일류주방장의 솜씨인들 뭔가 썰렁하고 빠진 듯 한 분위기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얼마 안가 업종을 바꿨는지 폐업을 했는지 그 보신탕집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세상이 몇 번 바뀐 지금, 다시 그때를 생각해보아도 그 사건은 참으로 불가사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사라는 것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돈이 많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찾아가기도 어려운 미로는 둘째쳐놓고 보기에도 비위생적으로 지저분할 뿐 아니라 여름철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은 이열치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스런 것이었다. 그런데도 최신식 시설로 그런 곳과 경쟁하여 패배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해를 아주 못할 바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 한 겨울에도 코트가 필요 없을 정도로 앉기만 하면 금방 등과 궁둥이가 뜨거워지고 버튼 몇 번만 누르면 가는 길을 음성으로 안내해주는 편리하기 그지없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배가 고프면 5분도 안되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에다 사시사철 계절을 모르는 아파트와 사무실에서 풍요로운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과연 지금 사람들이 그때의 그 불편한 보신탕집을 들를 때보다 더 만족하며 사는가?

나는 가끔 식탁에 앉으면 분에 넘치게도 짜증이 날 때가 있다. 결코 반찬이 나빠서가 아니라 반찬이 너무 좋아서 그런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서 그런지 수시로 먹는 생선에다 고기반찬이며 고급화되어만 가는 인스턴트식품들이 나에게는 정말로 고통스러울 때가 많은 것이다. 나는 가끔 위생관리를 잘 못해 벌레 한두 마리가 빠져 있고 마땅하게 넣을 것이 없어 멸치와 두부가 전부였던 그 된장찌개가 너무나 먹고 싶을 만큼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물론 마트에 가면 마디마디 무뎌지게 거친 손으로 장을 담가 끓여주시던 그 된장보다 훨씬 영양가 많고 깔끔하게 정제된 맛을 내는 신제품들이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진열대에 올려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도 왜 그 옛날 이빨 빠진 뚝배기에서 끓던 툭툭한 된장찌개가 그토록 찐하게 생각이 나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생활이 너무 편리해서 탈이다. 여름철 보신탕이 아니어도 좋다. 닭 한 마리를 먹어도 자연바람에 땀을 식혀야 몸에 좋고 겨울이 되면 쌓인 눈을 뽀드득 밟고 다녀야 계절 바뀌는 색다른 맛이 나는 것 아닌가?

하긴 요즘도 전라도 남원시 변두리의 어느 집에 가면 허름한 가정집(그 보신탕집보다는 훨씬 신식이지만)에 손님이 미어터진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한 여름 얼음보다 차가운 우물물을 한 대접 쭈~욱 들여 마시고 나서, 탁 트인 방으로 들어와 설레설레 부채질하며 시래기 듬뿍 넣어 먹는 추어탕, 그 털털하고 불편한 것에 대한 버릴 수 없는 맛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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