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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oboros May 20. 2024

insomnia4

이것 또한 빛나는 인생이라 말해주길

insomnia     


 엄마의 타협안을 받아들인 민서는 하루에 한 번 20분 정도의 산책을 하고 돌아와 하루에 두 번 보니와 보나를 마당에 풀어 두었다. 다행히 두 녀석은 크게 답답해하진 않았다.

마당이래 봤자 그리 넓은 것도 아니었다. 민서는 마당 한구석에 의자를 놓고 보니와 보나가 뛰어노는 것을 지켜보았다. 주말이 되자 아빠가 셋을 위해 그늘막을 설치해 줘서 한낮에도 집 밖에 앉아 있을 만했다.

바로 어제 꿰매고 온 상처는 퉁퉁 부어 통증이 심했다. 곧 있으면 혜진을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민서는 걸어가야 할지 버스를 타야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다리로 약속장소까지 걸어가는 것은 무리가 있었지만 죽어도 버스는 타기 싫었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기엔 택시비가 너무 비싸 혜진을 만나 간단한 음료 한 잔 마시기도 버거울 것이다. 민서는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보니와 보나를 번쩍 들어 안아 집안으로 들여놓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민서의 옷장엔 무채색의 옷이 가득했다. 상의와 하의를 바닥에 펼쳐놓고 최대한 멋져 보이는 구성으로 옷을 맞추어 보았지만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가진 옷들은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아서 어떻게 짜 맞추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펑퍼짐한 반팔 티와 바지를 입고는 팔토시까지 하고 나서야, 민서는 신발을 신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천천히 걸어 약속장소로 향할 수 있었다.


 혜진은 민서를 배려해 동네에 한적한 카페로 그녀를 불러내었다. 민서의 상태를 알고 배려해 주는 몇 안 되는 친구였다. 평소라면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30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혜진은 벌써 도착해 있었고 혜진뿐만 아니라 연진, 현지도 함께였다. 그녀들은 반갑게 민서를 맞이했다. 민서의 생일에 축하문자를 보낸 유일한 친구들이었다. 민서 몫의 레모네이드가 이미 주문되어 있었다. “돈 줄게, 늦어서 미안해” 민서가 머쓱하게 말했다.

“괜찮아 생일 선물인 셈 쳐” 연진이 말했다.


 민서는 자리에 앉아 그동안 친구들의 근황을 들었다. 혜진은미술을 배우고 있었는데 요즘 마음처럼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한탄을 늘어놓았다. 민서가 보기에 그녀는 꽤나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래들보다 섬세한 그림을 그렸고 가끔 그녀 스스로 창작한 그림을 보면 그림에 문외한인 민서조차도 ‘잘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엔 주변 사람들을 스케치하는 연작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연진은 요리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요리사가 될지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제과제빵에 흥미가 생겨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만든 요리를 친구들에게 대접하고는 평가받는 일을 취미처럼 여기고 있어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쯤 연진의 집에 모여 그녀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칭찬을 늘어놓는 일을 하곤 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친구들은 곧 그녀가 만든 빵을 맛볼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찼다. 연진의 요리는 대체로 맛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그녀가 언제쯤 자신들을 집에 초대할지 기대하곤 했다.

 

현지는 태권도를 했는데 그녀의 입으론 취미로 하는 일이라고 했지만 모두가 그녀가 장래에 멋진 선수가 되어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중학생인 그녀는 이미 여러 대회에 나가 수상한 경력이 있었고 그녀 스스로도 운동을 진심으로 즐겼다. 몇 달 전 있었던 대회에서 아쉽게도 우승을 놓쳐 2등에 머무른 이야기를 무척이나 상심한 듯 말하여 모두가 그녀를 위로했다.     


 자연스럽게 민서가 이야기할 차례가 다가왔다.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 현지가 물었다.

민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최근에 새로 생긴 취미 아닌 취미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더 생겼어. 엄마가 생일날 데리고 왔는데 이름은 보나야.” 그러게 말하며 민서는 핸드폰으로 찍어둔 보나의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요즘엔 보니와 보나랑 산책하는 게 취미야”

“너무 귀엽다. 엄청 작아”

“맞아 그래서 보나는 아직 가방에 넣어서 산책을 가”

한참을 보니와 보나에 대해 떠들던 민서에게 혜진이 물었다.

“학교엔 다시 올 거야? 검정고시 합격하면 고등학교에 다시 갈 수 있잖아. 우리 모두 같은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

민서는 잠시 말없이 웃었다. 모두가 말이 없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난 학교에 가더라도 너네들 보다 1년은 늦게 학교에 갈 거야. 학교 입학은 3월인데 검정고시는 4월이거든. 검정고시에 합격해도 1년은 기다려야 입학할 수 있어.”

 

민서는 사실 고등학교에 갈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교까지 검정고시로 마치고 대학은 천천히 생각할 요량이었다. 하나씩 장래에 대한 계획이 있는 친구들과 달리 그녀는 하고 싶은 게 없었고 학교에 돌아가는 것은 끔찍이도 싫었다. 그런 생각에 잠기자 민서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고 혜진과 현지는 무슨 말을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말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그녀가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혜진은 자신이 괜한 소리를 한 건 아닌지 자책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우리가 먼저 학교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천천히 와 대신 우리 보고 언니라고 불러야 해 그때쯤이면 우린 2학년이고 넌 1학년이니까.”

연진이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언제나 활기차고 해맑아서 다른 사람의 걱정도 날려주는 것만 같은 목소리를 내곤 했다. 연진의 한마디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언젠가 학교에 가서 너희들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민서가 말했다. 다들 그 말을 듣곤 조금 안심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민서가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민서가 조금이라도 밝은 이야기를 하면 다들 안심하고는 했다.      


 한참을 카페에서 떠들고 난 후에야 자리가 정리되었다. 주말이었고 할 일이 없어진 청소년들은 삼삼오오 돈을 모아 PC방에 가기로 했다. 한참 유행하는 FPS게임으로 제일 많이 진 사람이 저녁을 사기로 내기를 걸고 왁자하게 떠들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걷는 와중에 민서는 조금씩 뒤처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걷는 버릇과 아픈 다리가 원인이었다. 숨을 헉헉거리며 친구들을 쫓아가 보았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아 민서는 포기하고 멀리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그런 민서를 제일 먼저 발견한 건 혜진이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멀리 거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민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혜진이 말을 걸어왔다.

“힘들어? 얼굴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그냥 좀. 이렇게 나오는 게 오랜만이라서” 민서는 에둘러 말했지만 자신의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혜진이 알아차렸음을 알았다.

“다리는 왜 그래?”

혜진의 물음에 민서는 난처하게 웃었다.

“또 그런 일을 한건 아니겠지” 혜진의 목소리가 조금 단호해졌다. 민서는 대답이 없었다.

“힘들면 천천히 가자. 쟤네는 먼저 가라 그러고. 같이 걸어줄게”

 그렇게 말 한 혜진은 앞서가는 연진과 현지에게 먼저 가라고 소리친 뒤 민서의 발걸음에 맞추어 걷기 시작했다.

“난 네가 다시 학교에 왔으면 좋겠어. 공부도 꽤 잘했잖아”

“그랬었지”

“그리고 네가 다시 건강해졌으면 좋겠어. 지금 네 모습을 봐. 전혀 건강해 보이지 않아.”

민서는 다시 대답이 없었다. 혜진은 민서에게 언니 같은 존재였다. 종종 이런 대화를 할 때면 혜진은 맞는 말만 해대서 민서가 할 말을 찾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그렇다고 민서가 혜진의 말을 불쾌히 여기지도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정했고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을게. 그렇지만 네가 말하고 싶어 진다면 나는 언제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쟤네도 마찬가지야.” 혜진은 앞서가는 연진과 현지를 곁눈질로 가리켰다. 두 사람은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쟤네가 생각이 없어 보여도 니 걱정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그 말에 민서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 다들 꾸준히 연락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그리고 우리 같은 학교에 지원하기로 했어. 대한여고 알지? 너희 집 근처에 있는 곳 말이야. 안 될 수도 있지만 생각이 있다면 검정고시 마치고 그리로 와. 우린 정말 널 기다릴 거야”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사실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를 치를 생각이야. 학교라는 장소에 가면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평생을 그렇게 살 순 없어 민서야.”


 그 말에 민서는 멈칫했다. 맞는 말이었다. 평생을 숨어 살 순 없었다. 지금이야 부모님 곁에서 보나와 보니를 하루종일 쓰다듬고, 원할 때 먹고, 원할 때 자고, 원할 때 공부하고, 원할 때 쉬는 방탕하기까지 한 삶을 과연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친구들이 그런 자신의 옆에 언제까지고 있어 줄까?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당장 내일이라도 친구들이 그녀의 곁을 떠난다 해도 민서는 그들을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겐 남는 것이 없다고 그녀의 아빠는 늘 말해왔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그 방법을 몰라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민서는 저녁을 먹고 왔음을 알리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오늘 논만큼 공부를 해두지 않으면 내년 4월에 있을 검정고시에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잠들기 전까지는 오늘 공부하기로 한 분량을 채워야만 했다.

친구들과의 내기는 현지의 패배로 막을 내렸고 동네에서 유명한 분식집에서 거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녀의 친구들이 생일 선물로 평소 민서가 가지고 싶어 했던 책인 ‘은하철도의 밤’을 선물해 주어 집에 오자마자 그 책을 소중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어서 빨리 공부를 마치고 책을 읽고 싶었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책이어서 도서관에서 몇 번이나 빌려 읽은 책이었다.


 은하철도의 밤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민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그 책에 깊게 매료되었다. 또 그 책에는 아름다운 은하수가 곳곳에 삽화로 가득 그려져 있어 그 삽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다. ‘나의 인생도 저 은하수처럼 빛 날 수 있을까’ 민서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했다.



 12시까지 공부를 하고 나서야 민서는 침대에 누워 친구들이 선물한 ‘은하철도의 밤’을 읽다 잠이 들었다. 조반니가 은하철도를 타고 모험을 떠나듯 그녀도 은하철도에 몸을 싣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민서는 그 은하철도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승객은 그녀 한 명뿐이었다. 고요하고 이따금씩 기차의 피리부는 듯한 증기 소리가 들려오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민서에게는 캄파넬라가 가진 멋진 지도도 없었고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조반니의 어디로든 갈 수있는 기차표 같은 것도 없었다. 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채 그저 실려갈 뿐이었다. 목적지를 알려주는 전광판 따위도 없었다.


드르륵-


 문이 열렸다. 차장이 나타나 기차표가 없는 민서는 잔뜩 몸을 움츠렸다. 모자를 푹 눌러쓴 차장은 뚜벅뚜벅 민서의 앞으로 걸어와 기차표를 요구했다."표를 보여주세요."

“기차표는 없어요”

“그럼 내리셔야 합니다. 저 바깥으로요.”

차장은 민서의 팔을 붙잡으며 차창 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떠올리기 싫은 그 무리의 ‘얼굴들’과 김진성과 오빠 민석이 나란히 서 있었다. 얼굴들과 사람들 뒤로 무너져 폐허가 된 학교 건물이 우뚝 솟아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아름다운 '은하철도의 밤'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끔찍한것들 사이로 떨어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저항했다. 차장의 힘은 사람의 것이 아닌 양 민서를 번쩍 들어 차창 밖으로 민서를 던져 버렸다. 차창 밖으로 던져지며 민서는 차장의 얼굴을 보았다. 차장은 민서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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