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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uroboros May 24. 2024

관찰자

이것 또한 빛나는 인생이라고 말해주길

관찰자


 올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낡은 집에는 바람이 들어 보일러를 틀어도 공기가 차 민서는 감기를 달고 살아야 했다. 집 안에서도 양말을 신고 있어 답답했지만 감기가 나으려면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하고 있어야만 했다. 주말이 되면서 아빠가 커다란 방풍비닐을 어디선가 구해왔다. 집에는 아빠와 민서밖에 없었기 때문에 민서는 아빠를 도와 창문에 방풍비닐 다는 일을 했다. “거길 좀 더 위로 올려, 의자 위로 올라가.” 아빠의 키에 맞춰 비닐을 달기 위해 민서는 의자를 밟고 올라갔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자 아빠가 내려다 보였다. 아빠는 별로 말이 없었다. 친척 어른들은 민서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아빠는 키도 크고 덩치도 제법 있어서 민서는 언제나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아빠는 여전히 커다랬다. 민서에게 자주 시선을 주지는 않았지만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민서가 심하게 자해를 한 날에는 엄마에게 혼나는 민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중에서야 말없이 연고를 민서방에 툭 놓아주고 나가곤 했다. 아니면 쭈그리고 누워있는 민서 옆에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다가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나가거나.

아무리 위에서 내려다 보아도 민서의 눈에 아빠는 언제나 말 없는 바위 같았다.

“오늘은 어디 안 나가니?”무심하게 아빠가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창틀에 고정되어 있었다.

“병원에 갈 거예요”

“그래. 걸어가니?”

“아마도요.”

“올해가 지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봐.”

“네. 생각하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남들이 보면 어색하게까지 느껴질 짧은 대화였다. 그러나 그 부녀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자질구레한 말들은 생략하고 필요한 것만 묻고 대답했다. 그럼에도 서로의 목소리에 담긴 다정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에 이 무뚝뚝한 부녀는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이 걸려 모든 창문에 비닐을 다 달고 나서야 쉴 수 있었다. 창문에 비닐을 단 집은 조금은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것 같았다. 민서는 자신 몫의 차와 아빠에게 드릴 차를 준비해 하나는 아빠 앞에 놓고 하나는 자신의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꿈’을 생각했다.      

 

 몇 달 전 꾼 꿈은 이따금씩 튀어나와 민서를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자신을 차창 밖으로 내던진 이가 자신이었다니. 그 기차는 분명 자신을 편안한 곳으로 인도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민서는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왜 자신 스스로가 괴로운 것들이 잔뜩 있는 어두운 아래로 자신을 던졌을까. 민서는 문득 그 꿈이 생각날 때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은 채 개꿈이라고 여기려 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마법의 은하철도가 있다면 현실엔 민서의 ‘방’이 있다. 온통 민서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진 방. 민서는 산책 외엔 방에서 나가기를 꺼려했다. 유일하게 민서가 방에서 나올 때는 보니와 보나의 산책, 가끔 만나는 친구들과의 약속, 병원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땅바닥을 보고 걷느라 민서는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다.

민서는 오늘도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만이 오직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도구였다. 창문 안쪽에 몸을 숨기고 밖을 바라보면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보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난 것을 증명하듯이 창밖의 풍경도 변해있었다. 겨울이었다. 계절에 맞게 하늘은 우중충했다. 이런 날이면 민서의 기분은 평소보다 더욱 가라앉고는 했다. 계절성 우울증이란 것이 있다고 어디선가 얼핏 들은 적이 있어 자신도 그런 것일까 생각하곤 했다. ‘내가 우울한 건 날씨 탓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민서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다. 더 꾸물거리다간 예약시간에 맞추어 병원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민서는 옷장을 열어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데로 옷을 껴입었다. 거울은 볼 필요도 없었다. 민서는 겨울이 좋았다. 여름옷 보다 몸을 더 잘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자에 장갑까지 갖추어 온몸을 완벽하게 가리고 나면 민서는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다녀올게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아빠는 민서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차가운 바람에 볼이 시렸다. ‘오늘은 보니와 보나와 함께 산책을 못하겠구나’했다. 날씨가 너무 추우면 녀석들은 걷지 않으려 하거나 현관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그럼 민서도 포기하고 두 녀석을 끌어안고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다. 오늘도 딱 그런 날씨였다.

민서의 집이 있는 언덕 아래에는 빙판이 얼어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병원이 있는 시내까지 걸어가려면 족히 1시간은 걸릴 테지만 그럼에도 민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다. 자신을 거대한 곰을 보듯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고, 옷으로 가려놓아도 몸에 새긴 상처가 사람들에게 보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민서는 꿋꿋이 걸어 목적지로 향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오전 진료만 하기 때문에 민서는 평소보다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요즘엔 어떤가요?”

“늘 똑같아요. 요즘엔 더 우울한 것 같기도 해요”

늘 비슷하게 반복되는 대화였다.

“계절이 바뀌면서 기분이 변화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것들은 대체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약을 조절해 줄게요. 또 다른 특별한 일은 없나요?”

의사가 다정히 웃으며 물었다. 민서는 여전히 그를 조금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의사의 책장에 놓인 기차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꿈을 떠올렸다.

“몇 달 전에 꿈을 꿨어요. 은하철도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고... 창 밖에는 제가 싫어하는 것들이 잔뜩 있었고요. 전 기차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기차표가 없어서 차장이 저를 창 밖으로 내던졌어요. 알고 보니 그 차장은 저였고요. 제가 저를 지옥으로 떨어트렸어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요”

진료실에서 민서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한 건 처음이었다. 의사도 잠시 놀란 듯 민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꿈은 우리의 마음의 창이라고도 하죠. 우리의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라고도 하고요. 의미가 없는 꿈은 아니에요. 무언가 민서 양이 바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런 식의 꿈으로 나타난 걸 수도 있어요. 어쩌면 트라우마가 아직 해소되지 않아서 그런 꿈을 꾼 걸 수도 있고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세요.”

의사의 말은 민서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다.  

    


 그날도 민서는 꿈을 꾸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한, 반 친구들과 떨어져 걸으려고 했다. 그녀의 등 뒤에 딱 붙은 낙서 투성이의 책상이 그녀의 걸음을 느리게 만들었고 모두가 그것을 보고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느리게 걸을 수도 없었다. 그녀의 뒤에 김진성이 서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하면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 어떤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계속 반 친구들과 가까워지지 않고, 진성에게 붙잡히지 않을 만한 거리를 유지하며 긴장한 채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길 곳곳에는 깊은 구덩이까지 있어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민서의 걸음은 느려져만 갔다. 그럴수록 뒤에서 의기양양하게 서있는 진성이 가까워졌다. 진성에게 붙잡히지 않으려 발걸음을 서두르다 보니 몇 번이나 구덩이에 빠질뻔했다. 그녀는 땅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깊은 구덩이들은 민서를 향해 그 깊고 어두운 아귀를 벌리며 자리했다. 저 안에는 뭐가 있을까. 무엇이 있든 간에 그 구덩이는 깊은 무저갱으로 향하는 입구일 것이다.

걸을수록 책상은 점점 거대해지고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아니, 실제로 책상은 점점 거대해지고 무거워지고 있었다. 책상이 거대해지는 만큼 민서의 허리는 굽어만 갔고 코가 땅에 닿을 때쯤, 바로 앞에 놓인 깊은 구덩이를 피하지 못하고 책상과 함께 떨어졌다.


 배경은 바뀌고 한여름날의 교실에 낙서투성이 책상과 함께 민서가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민서의 앞엔 행동대장 윤희가 서 있다. 그리고 그 뒤엔 무리의 리더 진선이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동안 학교에 안 왔어? 보고 싶었잖아”

윤희가 말한다. 민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낙서로 가득한 거대한 책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걔 말 못 해. 병신이잖아”

뒤에서 진선이 비웃듯 말했다. 진선은 예쁘장하게 생겼다. 공부도 잘하고 교실에서도 진선의 말을 거스르는 이가 없다. 무엇이든 민서와 반대되는 아이였다. 처음 민서를 무리에 끼워준 것도 진선이었고 무리에서 민서를 추방해 장난감 다루듯 괴롭히는 것도 진선이었다. 얼핏 잘 사는 집 아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가져오라고 한건 가져왔어?”

민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요구한 건 돈이었다. 그러나 민서의 집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고 그들이 요구하는 큰 금액의 돈을 민서가 구할 방법은 없었다.

“병신이라서 돈도 없나 봐, 야, 너네 집 가난해?”

수치심에 몸이 떨리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심장이 벌렁거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그만 괴롭히라고 말하고 싶었다.

“야, 말을 해”

툭, 툭,

윤희가 민서의 머리를 툭툭 치더니 교복치마에 손을 쓰윽 닦는다.

“더러워 진짜. 괜히 만졌어”

“쟤네 엄마도 쟤랑 똑같을 거야, 돈 없는 거지에 더러운 돼지”


 순간 눈앞이 까매졌다.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책상과 의자가 널브러져 있었고 윤희와 진선은 민서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당황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화가 난 민서가 마구잡이로 책상과 의자를 집어던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키 큰 윤희가 민서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가슴이 서늘해지고 찡하게 울렸다. 그다음은 무자비한 발길질이 이어졌고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이 퍼부어졌다. 민서는 황망했다. 아무리 저항해도 끝은 이런 꼴이라니 눈물이 났다. 발길질이 끝나고 나서야 윤희와 진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교실을 빠져나갔고 민서는 다시 혼자 덩그러니 교실에 남겨졌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마구 비벼 눈물을 닦았다.

어질러진 교실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뒤에서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민서”

담임선생님의 뒤엔 윤희와 진선이 서 있었다.

“교무실로 따라와”

민서는 저항 없이 교무실로 끌려갔다. 민서는 갑자기 책상을 집어던진 것도 모자라 윤희와 진선을 괴롭히고 욕설을 퍼부은 몹쓸 아이가 되어있었다. 교무실에서도 민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윤희와 진선은 가식적 이게도 “갑자기 민서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말을 할 뿐이었다.


 윤희와 진선의 가식적인 태도에 다시 민서가 그들을 향해 달려들 때, 하늘과 땅이 뒤집히더니 민서는  다시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낙하했다. 끝없이 낙하하다 시간감각을 잃을 때쯤, 민서는 은하철도에 앉아 있었고 창 밖은 새카만 어둠뿐이었다. 그리고 민서의 맞은편에 차장이 앉아 있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차장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걸요. 교무실에 있었어요.”

“이번에도 기차표는 없나요?”

“... 네”

차장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민서를 바라보았다. 턱 끝까지 올라오는 외투 때문에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외투와 모자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민서와 꼭 닮아 있었다. 어쩌면 이 기차는 조반니가 탔던 은하철도가 아니라 무저갱을 탐험하는 지옥열차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 기차에 타는 손님들은 모두 자신이 목적지를 정한답니다. 당신도 목적지를 정해야 해요.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기차표도 없는 것이랍니다. 우린 목적지가 없는 손님은 태우지 않아요. 그들은 영원히 기차에 머물며 새카만 밤이 되어버리거든요.”

차장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걸요.”

“생각해 보세요. 이 기차에서 또 내던져지기 전에.”

차장이 외투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잠에서 깬 민서는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려 사이다를 통째로 들이켰다. 그리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왜 항상 잠에만 들면 그런 꿈을 꾸는지 알 수도 없었고 미칠 노릇이었다.

 바깥의 날씨만큼 민서의 기분도 우중충했다. 불안한 듯 방안을 뱅글뱅글 돌던 민서는 결국 책상 밑에 칼을 찾아 팔뚝에 갖다 대었다. 이미 여기저기 흉이 남아 울퉁불퉁했다. 더 그을 곳도 없어 민서는 흉터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내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며 민서의 팔을 타고 흘러 옷을 더럽혔다. 민서는 자신이 더럽혀졌다고 느꼈다. 상처를 내고 나서야 진정이 된 민서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왜 자신이 그런 일들을 당해야 했는지. 왜 그런 일들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이해되는 게 없었다.

한참을 주저앉아 울었다. 그러고 나서야 민서는 팔뚝에 난 상처가 꽤나 깊다는 것을 알고 처치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들키지 말아야지’하며 피로 얼룩진 옷들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핏물을 빼 세탁기에 집어넣었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 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팔과 다리에 난 상처와 흉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자신의 과거처럼 더럽고 지저분했다.

 뒤룩뒤룩 찐 살들 위에 가로그어진 상처들은 혐오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민서는 자신의 팔다리가 흉하나 없이 매끈해도, 연예인처럼 날씬해도 자신을 혐오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민서는 한참을 속옷만 입은 채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몸, 온갖 상처와 사건들로 더렵혀진 몸. 누가 과연 자신을 사랑해 줄지, 과연 사랑받을 수 있을지 같은 것을 생각하다 보니 다시 우울해졌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 자신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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