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포신(除舊布新): 낡은 것을 없애 새로운 것을 펼쳐내다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61.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나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유림이 승학에게 말했다. 승학은 유림을 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미 몇 번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직 유림 씨만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 설악산의 천년바위처럼 꼼짝 하지 않을 겁니다. “
그녀는 몇 번이고 다짐을 했다. 승학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소백산 근처의 한적한 국도변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하며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사실 저의 부모님은 무서운 분이에요. 보통 사람들이 아니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무서운 조직을 거느린 사업을 하고 있어요. 제가 그토록 억압과 통제를 받은 것은 그 때문이었어요.”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가 이번에 그 위험한 상황임에도 왜 이 선택을 했을까요? 저로서는 이것이 제가 자유와 사랑을 선택할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부모님 정말 만만한 분들이 아니에요. 이번에 여행을 한 것은 저의 오빠가 뒤에서 도와준 덕택이었어요.”
“오빠가 어떻게 도와준 건가요?”
“수선재에 있어도 어디선가에는 늘 감시와 통제를 받아왔어요. 그런데 제 오빠가 그들을 불러들인 바로 그날 제가 나온 것이었어요. 오빠는 제 마음을 알아요. 오빠 역시 무서운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지만 저를 사랑해서 자유와 사랑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것이었어요.”
“아. 그랬었군요.”
승학은 유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을 했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어떤 두려움도 불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령 어떤 참혹한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유림은 말을 계속했다.
“아마 이번 일에 부모님은 충격을 받으셨을 거예요.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요. 큰일은 없을 거예요. 승학 씨도 기억하죠. 내가 병이 나으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줄 것이라고 부모님이 약속한 사실 말이에요. 그것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것과 우리의 일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나요?”
“그분들은 자신이 한 약속은 꼭 지켜요. 신의를 목숨처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 한 가지 소원이 승학 씨가 저와의 결혼을 원한다고 말할 거예요. 승학 씨도 기억하세요. 꼭 저와의 결혼이 한 가지 소원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하셔야 해요.”
“예. 그렇게 해야죠. 정말 제 한 가지 소원은 당신과의 결혼이 맞습니다.”
“그럼 됐어요. 저는 그렇게 말할 거예요. 하지만 부모님은 그 소원은 안 들어줄 거예요. 이미 말씀드렸던 대기업 회장 아들과의 정략결혼에 눈이 멀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승학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칫 유림이 자신을 위해 재벌 회장과의 정략결혼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학의 불안한 눈빛을 읽고 유림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지키고 이겨낼게요.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들으셔야 해요. 일단 승학 씨는 소백산에서 사부님이신 손 원장님을 찾아뵈세요. 그리고 한 달 후에 수선재로 돌아오세요. 두 번째로 그곳에 제가 없으면 찾지 마시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나세요.”
그 말을 듣자 승학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그곳에 유림 씨가 없어요. 왜 찾으면 안 되죠?”
“그건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에요. 그 보다 전에 손 원장이 말씀하셨어요. 승학 씨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실 준비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예정대로 공부를 하러 떠나시면 돼요. 그다음은 제가 손 원장님과 연락하여 승학 씨를 찾아갈 거예요. 아셨죠?”
승학은 갑자기 벼랑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갑자기 펼쳐지고 있었다. 승학은 정신을 집중하고 유림에게 말했다.
“이 모든 계획을 그간 혼자서 구상하셨다는 건가요? 제가 옆에 있을 때도 그 생각을 하셨나요?”
“많이 억제하고 피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인력으로는 내면의 정염을 막을 수가 없었어요. 어쩌면 승학 씨를 너무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게 일어나는 일들은 괜찮습니다. 유림 씨가 혼자서 짊어진 삶의 무게들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요. 진작 말씀을 해주셨다면 힘을 보탤 수 있었을 겁니다.”
“지금이 그 시기예요. 제가 하는 말을 믿고 실행하시면 돼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해요. 저는 승학 씨를 만난 이후로 제 안에 엄청난 힘이 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이래 봬도 저 역시 무서운 여자예요.”
그녀는 갑자기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앞으로 내가 없는 모든 시간 승학 씨는 내 생각만 해야 해요. 만약 다른 여자를 만나거나 생각을 하면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 아셨죠?”
그녀는 승학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며 웃었다. 승학은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유림은 소백산 가까이의 펜션을 예약하고 그 앞에 승학을 내려놓고 바로 떠났다. 꿈결 같은 시간들이 차가운 현실의 유리막 사이에 막혀 있었다. 승학은 유림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승학은 유림이 떠난 이후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빈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시간의 흐름도 배고픔도 잊은 상태로 깊은 상념에 젖었다. 현실적으로 승학은 내세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단군 의통의 전수자는 은밀한 조직에서의 의미만 있었다.
사회적으로 당장 승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유림의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할 것은 뻔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제구포신(除舊布新)을 하는 것이었다.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펼쳐내는 것이었다.
유림은 언제까지나 기다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림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제구포신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청허 조사님이 말씀하신 그 공부가 이제 막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반드시 미국으로 가서 한의학 공부를 해야 하네. 새로운 의학이론을 한국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일세. 그러나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외국에서 인정을 받으면 그것은 오히려 인정을 받을 수 있다네. 또 공부를 한 후에 약초연구는 반드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에서 해야만 하네. 아시아의 3대 반도국에서 약초와 악재를 연구해야만 앞으로 닥쳐올 병겁에서 인류를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라네."
승학은 사조님께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굳은 약조를 했었다.
이제 그것을 실행해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유림은 승학에게 봉화대처럼 열정의 횃불을 일으켜 그것을 알린 것이었다.
승학은 날이 밝은 대로 스승을 만나 제구포신의 계획과 실행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밤은 괴로웠다. 불을 끈 상태로 승학은 앉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홀로 돌아간 유림의 안위가 염려가 되었다. 또한 그리움이 견딜 수 없이 몰려왔다.
승학은 뒤늦게 후회를 했다. 유림을 너무 사랑했기에 그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들은 자신이 미웠다.
승학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승학은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이 통증처럼 느껴졌다. 승학이 고통으로 몸부림을 칠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승학은 가만히 있었지만 계속해서 노크 소리가 났다. 승학은 불을 켜지 않은 채로 문을 빼꼼 열었다.
문 앞에는 유림이 울며 서 있었다. 승학은 와락 다가가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들은 서로 한참이나 부둥켜안고 울었다. 유림이 울음을 참아가며 말했다.
“당신 없이 도저히 갈 수가 없었어요. 저 근처에 주차한 상태로 당신이 있는 방만 보고 있었어요. 도저히 당신을 두고 갈 수는 없었어요.”
승학도 간절한 마음으로 말했다.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떤 상황에도 우린 같이 있어야 해요. 죽음이 갈라놓겠다면 나는 죽음을 선택할 겁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게요!!”
그들은 서로가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설명할 수 없는 완전한 일체감의 감정이었다. 그것은 육체와 정신의 결합을 넘어선 영혼의 교감이었다. 두 개의 자아가 트윈 프레임으로 하나가 되는 사랑이었다.
승학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친다고 해도 유림 앞에 서 있을 것이라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