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체질의학 소설> 흉중생진

흉중생진 (胸中生塵): 사람을 잊지 않고 생각은 오래 하면서 만나지 못함

by 백승헌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62. 그리움의 고통은 잔인한 아픔이다.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냐?”

8일 만에 돌아온 유림과 승학을 보고 유림 부모님은 분노했다. 당장이라도 큰 칼로 목을 벨 것 같은 기세였다. 유림은 두려움에 떨었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승학은 담담했다. 온갖 고통을 겪은 승학에게 그런 분노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 승학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유림의 아버지는 다시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분명하게 대답해? 절대로 안 되는 일이야. 그것을 인정하겠느냐?”

마침내 승학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의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저를 당장 죽여도 저는 변함없습니다. 반드시 유림 씨와 결혼할 것입니다.”

“누구 맘대로 그럴 수 있단 말이야. 네가 손 원장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이미 병신이 되었거나 죽었을 것이야. 일단 손 원장을 수소문해서 부른 후에 너의 거취를 결정하겠다. 네가 겁을 상실했구나.”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습니다. 그 죽음의 경계를 몇 번이나 갔다 왔습니다.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유림씨와 영원한 약속을 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그것을 지킬 겁니다.”

승학은 당당하게 맞섰다. 화가 난 유림의 아버지는 밖으로 잠시 나갔다.

유림의 어머니가 곁에서 보다 못해 말했다.

“유 선생은 유림의 마음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자신을 뒤돌아보세요. 가난한 집안 출신에 변변한 직업도 없고 앞으로 희망도 없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소중한 딸을 원할 수가 있어요. 이건 날강도 심보와 같은 거예요. 유림을 생각해서도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그런 잣대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유림 씨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습니다.”

“어느 천 년에 발전을 하겠어요. 이러다 무슨 큰 일 당하기 전에 빨리 포기하고 편안하게 사세요. 손 원장 아니었으면 벌써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를 몸이에요. 저도 말릴 수가 없어요.”

두 사람은 협박과 회유를 번갈아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유림이 말했다.

“엄마. 그만 해요. 두 분이 뭐하시는 거예요. 이 분이 제 목숨을 구했어요. 매일 같이 죽어가는 저를 구한 사람이 이분 인 것을 알잖아요. 그런데 그 은혜는 왜 말씀하지 않으세요.”

“얘야. 그건 다른 이야기잖아. 넌 가만히 있어.”

“엄마, 그런 아니잖아. 내가 다 나으면 유 선생님 소원 한 가지는 들어준다고 약속했잖아. 아빠도 동의했었어. 그 소원을 들어 줘야 되지 않아요?”

그 말에 유림의 어머니는 멈칫했다. 유림은 평생 신의를 강조했던 그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았다. 유림의 아버지는 다시 들어와서 마지막 통고를 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내 딸을 만날 수 없을 것이야. 네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일을 덮는 것으로 대신 할 것이야. 그러나 앞으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야. 손 원장이 오면 그 점을 더욱 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것이야. 그리 알게나.”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함께 수선재를 떠났다. 승학은 그가 한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림이 한 말을 되새겼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다려야 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갈 것이니까, 기다려요. 우리의 영혼은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해요. 약속해요?”

승학은 유림과 굳게 약속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친다해도 그 말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을 터였다. 흉중생진이 얼마나 오래 걸리던 승학은 기다릴 것이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결론이 나고 그들은 사라졌다.

처음에 승학은 유림과의 약속을 믿고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홀로 수선재에 남아 있는 시간들은 그리움의 잔인한 고통이었다. 깊은 산속에서의 절대고독을 통과한 그로서도 상상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아무런 일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매일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대나무 숲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그림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한 달을 그렇게 보내고 있을 때 사부 손원장이 돌아왔다.

“자네 때문에 잠시 돌아왔네. 대략적으로 이야기는 들었네.”

승학은 무릎을 끓고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했다.

“편하게 앉게. 자네의 행동이 잘 못은 아닐세. 남녀의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야. 내가 온 것은 자네를 탓하거나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야. 앞으로의 거취 때문에 온 것이야.”

그제 서야 승학은 편하게 앉으며 말했다.

“예. 사부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나는 괜찮네. 그보다 나는 오는 길에 유림의 아버지를 만나고 왔네. 그 사람은 흉폭한 기질이 있기로 유명하다네. 그런데도 자네에게는 관대했더군. 그 불칼같은 성격에 자네를 요절내지 않은 것만 해도 이상한 일이야. 아마 신의를 워낙 소중히 하던 터라 그렇게 마무리 된 것 같네. 그래도 한가지 실수에 대해서 말하더군.”

“그게 뭐라고 하던가요?”

“유림이 나으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 실수라고 하더군. 평생 신의를 지키며 살았다는 자부심이 좀 무너진 느낌이 든다고 하더군. 그 한 가지 소원에 대해 마음에 걸린다고 하더군.”

“그 분이 한 가지 소원은 지난 일을 덮는 것이라 하고 가셨습니다.”

“그거야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런 소원이 어디에 있어. 자네가 유림과 사랑을 나누는 건 절대 잘못이 아닐세. 난 자네는 한 가지 소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네. 하지만 그 사랑이 잘 안된다고 해서 이렇게 낙담하고 살면 안되네. 자네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가야 하지 않겠나.”

“예. 한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단군 의통의 천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럼 됐네. 이제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해서 떠나도록 하게. 내가 그 준비를 하고 자네가 떠나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소백산으로 돌아갈 것이야.”



승학은 유림의 소식이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질문을 하기엔 분위기가 애매했다. 잠시 생각을 하는 중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유림의 소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네. 내가 애써 유림의 몸이 어떤가 하고 물어보았네. 한동안 건강하게 지내다가 최근에 다시 심하게 아프다고 하더군. 음식을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는다고 하더군.”

승학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사부님, 정말 그렇던가요?”

“내가 진맥을 한번 보겠다고 해서 잠시 만났다네. 그러자 그녀가 부모가 없는 틈에 내게 잠시 귓뜸을 했어.

‘승학 씨한테 가기 위해서 아파요. 정말 아프기도 하고 아파야 해요. 빨리 승학 씨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도록 해주세요. 그래야 해요. 최대한 빨리 떠나서 오직 공부만 하고 저를 기다리라고 해요. 반드시 찾아갈 거라고 전해주세요.’그렇게 말했어. 자넨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된 것이야. 최대한 빨리 떠나도록 하게. 내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리 되도록 해 주겠네.”

승학은 자신이 가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선재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흉중생진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승학은 영원히 유림을 기다릴 것이라는 한 가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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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학은 사부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단군 의통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과 유림을 기다리는 심사를 가슴 깊이 품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승학은 곧 바로 적응을 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마음을 두면 정착하게 되어 있었다.

승학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유림에 대한 그리움으로 온 몸이 고통스러웠다.

소식 단절과 그리움의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적국의 스파이가 잡혀 고문받는 고통과 같았다.

그리움 역시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승학은 온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승학은 그렇게 고통스런 시간을 오로지 학문연구에만 쏟았다.

마치 실형을 선고받고 감방에 갇혀 있는 죄수처럼 승학은 오로지 공부와 연구만 집중하며 살았다. 간절히 기다렸지만 유림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몇 년의 시간이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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