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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행길 잘 찾아가고 있나요?

by 이미경

길을 헤멜 수도 있지요


여러분은 스스로 인정한 약점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먼저 제 약점부터 고백해야겠네요.

저는 타고난 길치입니다. 어느 정도냐고요? 여행을 가면 초등학생 딸아이에게 길 안내를 맡길 정도입니다.

제약영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의정부 성모병원부터 저 아래 고대 안산병원까지 직접 운전해서 다녔는데, 지도 읽는 게 영 어려워서 처음엔 동료가 그려준 약도를 보고 다녔습니다. 병원까지 운전하는 데 기본 2~3시간이 걸리던 시절이었죠.


그러다 내비게이션이 처음 나왔을 때, 저는 마치 저를 위해 만들어진 신문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제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아직 도착지가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경로를 종료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죠. 그래도 내비게이션 덕분에 3시간 걸리던 길이 1시간 반으로 줄었으니, 한결 나아졌던 건 분명합니다. 가끔은 '신석기 시대에 태어났으면 집에 돌아가는 길을 못 찾아 일찍 죽었을 운명이었겠구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최근 약국에서 일하다 고객에게 약을 배달해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마침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날이었죠. 제 실수로 약이 나가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그 비를 뚫고 직접 배달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가는 고객의 집 주소를 입력하고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순간이 찾아오더군요. 낯선 환경에서 지도와 주변 건물을 번갈아 확인하며 헤매고,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한 끝에 겨우 도착해서 고객에게 무사히 약을 전달했습니다. 내비게이션 예상 도착 시간보다는 좀 더 걸렸지만요.


임무를 완수하고 마음 편안하게 다시 내비게이션을 켜고, 새로운 길로 무사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빗속을 뚫고 걷고 처음 타는 버스 노선을 짚는 이 모든 과정에서 깊이 생각했습니다.

일단 내비게이션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마치 미션 완주를 위해 하는 모험 게임처럼 느껴져서 즐거웠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초행길

그 과정에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상황처럼,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처음 가는 길 아닌가요?

저처럼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길치인 사람은 엄청나게 헤매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약국 근무는 언젠가는 하겠지, 막연히 생각만 했던 일인데 제 인생에 있어 완전히 '초행길'입니다. 아직 적응하는 중입니다. 제약회사에서 end-user라고 했던 환자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직 신기하기도 하고 직접 그들의 고충을 들으면서 공감할 수도 있고 많이 배우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조제 감수해야 하는 과정에서 에러를 줄이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써야 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경력과 경험이 저를 어디로 데려갈지 솔직히 알 수 없습니다.


빗속을 뚫고 다녀오는 중에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완주하는 것이 아닐까였습니다.

목적지까지 어떻게,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완주해야만 하겠지요.

그리고 누구나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가겠지만, 그 과정은 분명 다를 겁니다.

어차피 헤매면서 처음 가는 길을 가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모험이라 생각하고 즐겨보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나요? 그 과정에 무엇을 느끼고 있나요?


무엇보다 목적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다른 브런치 글: 당신의 버킷리스트에 몇 개의 소망이 들어있나요?)

또한, 내비게이션처럼 길을 잃을 때마다 이정표가 되어줄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다른 브런치 글: 생각나는 한마디가 있나요?)


매끄럽게 쭉 가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제 인생의 완주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완주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목적지는 잘 입력되어 있나요?

가는 길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 것 같나요? 생각보다 그 과정이 힘든가요?

괜찮아요. 우리, 가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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