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KTX를 타다.
설렘과 기다림
스마트폰에 저장된 승차권을 며칠째 들여다보았다. 부산행 KTX, 15시 56분. 이번 여행은 단순한 기차 여행이 아니었다. 37년 만에 찾아온 기적, 첫 손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침대 옆 서랍에는 낡은 보자기에 싸인 작은 상자가 있다. 1988년, 아들의 첫돌 날 친정어머니가 손수 끼워주신 금팔찌와 반지. IMF의 광풍 속에 다른 귀금속은 다 내놓았지만, 이것만은 끝까지 지켰다. "아들이 장가가면 주마." 그 약속을 37년간 붙들어 왔다. 보자기를 펼칠 때마다 떠오르는 건, 늘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어머니의 주름진 손이었다. 이제 그 사랑을 손주에게 물려줄 차례다.
수원역을 출발한 기차는 시속 300km로 달렸지만 내 마음은 느릿했다. 떠난 곳도, 도착한 곳도 아닌,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시간. 차 한잔을 준비하고『어린 왕자』를 펼쳤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수없이 읽은 문장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직 보지 못한 손자의 얼굴이 문장 위에 겹쳤다. 사진 속 작은 존재가 이미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랑은 만나기 전부터 넘쳐흘렀다.
대전, 동대구, 울산이 별처럼 스쳐 갔다. 나는 내 별을 향해 달리고 있다. 로운이라는, 내 우주에 새로 생긴 별을 향해.
부산역 광장에서 아들이 손을 흔들었다. 1년 만의 상봉. 영국에 살고 있는 아들은 얼굴은 여위었지만 눈빛은 아버지가 되어 더욱 깊어졌다. 숙소에 도착해 며느리가 아이를 내 품에 안겨 주었다. 시간이 멈췄다.
따뜻했다. 작은 몸이 이렇게 뜨겁다니. 별처럼 까만 눈동자가 내 얼굴을 응시하다가 까르륵 웃었다. 그 웃음에 방 안이 환해졌다. 작은 손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내 검지를 꼭 움켜쥐었다. 다섯 개의 손가락 안에 온 우주가 들어 있었다. 지난 4월에 태어난 로운 이는 5개월이 지났다.
“로운아, 할머니란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보자기를 꺼내 금팔찌와 반지를 전달해 주었다.
“첫돌 때 외할머니가 주신 거란다. 37년 동안 간직했어.”
아들의 눈이 커졌다. IMF 때도 내놓지 않은 이유를 말하자 며느리의 눈시울이 젖었다.
“로운이가 크면 전해 줘. 얼마나 사랑받고 태어난 아이인지.”
다음 날 아침 아들이 안내한 곳은 현지인 단골집 돼지국밥집이었다. 뽀얀 국물 한 숟가락을 떠 넣자 나는 50년 전으로 돌아갔다. 엄마 손잡고 읍내 오일장에서 처음 맛본 국밥. 고기를 내 그릇에만 자꾸 덜어주던 엄마.
“엄마는 안 먹어?”
“엄마는 네가 잘 먹으면 그걸로 배불러.”
그제야 알았다. 그것이 사랑의 맛이었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아들과 마주하고 국밥을 먹고 있다.
아들과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목소리에서 내 어머니의 억양이 들렸다. 모정은 이렇게 흐른다. 국밥 한 그릇처럼, 뜨겁고 구수하게, 숟가락을 놓으며 조용히 기도했다. 언젠가 아들이 마음이 힘든 날, 오늘 이 맛을 기억하기를, 그리고 그 기억이 힘든 날의 위로가 되기를 ….
점심으로 유명하다는 ‘낙곱새’를 먹고 해운대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하얀 파도와 바람, 관광객의 웃음소리에 유모차 안의 로운 이는 눈을 반짝였다. 신기한 듯 세상구경을 한다. 시간이 지나고 하늘에선 축복의 이슬비가 내린다. 카페로 들어가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눈 대화는 한 폭의 그림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아들과 며느리, 손자와 함께한 시간은 그 자체로 충만했다. 행복이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바다를 보고, 아이의 옹알이에 웃는 것. 그게 전부였다.
작별의 순간, 멀어지는 로운이의 손을 바라보며 눈물이 흘렀다. 이별의 아픔조차 사랑의 증거였다. 기차는 어둠 속을 달렸다. 창밖으로 불빛들이 흘러갔다.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저녁, 누군가의 사랑이 그 불빛 속에 있다. 나는 핸드폰 열어 네컷 사진과 함께 찍은 사진첩을 열었다. 로운이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까만 눈동자, 까르륵 웃는 입, 작은 주먹. 세상은 이렇게 흘러간다. 할머니가 손주를 안고,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국밥 한 그릇에 세월이 녹아들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어린 왕자』를 다시 펼쳤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내 삶의 사막에도 샘이 있다. 로운이라는 맑고 깊은 샘. 그 물 한 모금이 지난 세월의 목마름을 적셔주었다.
집에 돌아왔지만 허전하지 않았다. 국밥의 온기, 아들의 목소리, 손주의 웃음이 여전히 내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손이 잡아 준 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내 삶 전체였다.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로운아,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 할머니 또 보자.”
그 약속은 공기 속에 스며들었지만, 분명히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