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사태 수육
“한 접시의 고기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고향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농촌에서 삶은 고단하면서도 따스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늘 농사일에 바쁘셨고, 우리는 소꿉놀이로 손끝에는 마르지 않는 흙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엔 지금도 잊지 못할 풍요로움이 숨어 있다. 마을을 감싸던 산자락은 아침마다 안개를 품어 몽환적인 풍경을 내어 주었고, 마당 옆 작은 밭은 우리의 밥상이자 장터였다. 시금치, 열무, 오이, 호박, 쪽파가 계절마다 고개를 내밀었고, 흙 묻은 채소를 부엌으로 가져가면 어머니는 금세 다듬고 씻어 정갈한 반찬으로 내놓으셨다. 자연의 바람과 햇살이 그대로 밥상에 올라와 우리를 든든히 채워주곤 했다.
여름이 물러나고 바람이 선선해질 무렵이면, 풍성하고 큰 명절 추석이 가까워져 온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집안의 큰 행사인 벌초가 기다리고 있다. 조상 묘가 층층이 놓인 산등성이에 오촌 당숙, 숙부, 사촌들이 모이면 선산은 금세 시끌벅적해진다. 낫질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웃음소리가 산허리를 울리고, 사촌들과 함께 뛰놀다 보면 아직 설익은 밤송이를 발견하게 된다. 나무를 흔들고, 막대기로 툭툭 찔러 밤송이를 벌리고, 그 안의 알밤을 꺼낸다. 알밤 삼 형제가 동글동글 들어있기도 하고 쭉정이와 두 알이 들어있기도 했다. 풋밤은 물기가 많아 떫지만 시원하고, 꼭꼭 씹으면 고소한 맛이 올라왔다. 가시에 몇 번 찔려서 울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발로 벗기던 그 순간마저도 생생히 떠오른다.
산 아래 마당에서는 당숙모와 작은어머니들이 장작불에 가마솥을 걸었다. 나무 타는 냄새처럼 피어오르던 솥뚜껑의 김은 이윽고 고소한 향이 되어 우리를 산 아래로 불러내곤 했다. 가마솥에서 삶아낸 돼지고기는 은근한 불에 오래 익어 부드럽게 씹히고, 큼직하게 썰어 갓 버무린 겉절이에 싸서 한 입 넣으면 입안 가득 환한 햇살이 퍼지는 듯했다. 어른들은 막걸리 잔을 돌리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들은 숨 가쁘게 뛰놀다 와서 입부터 내밀었다. 새우젓을 콕 찍어 입에 넣어 주는 고기맛은 잊지 못할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었다. 어른들은 선산을 깔끔하게 정리한 뿌듯한 마음으로 구릿빛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고된 노동 끝에 함께 둘러앉은 밥상은, 말 그대로 집안의 잔칫날이었다.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그 밥상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가장 그리운 한 끼로 남아 있다.
이제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고, 여름의 끝자락이면 지친 가족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보양식으로 아롱사태를 삶는다. 부추무침과 함께 낸 수육 한 접시는 막걸리 한 사발과 단숨에 사라지고, 그 맛은 늘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며 쫀득한 그 고기는, 어릴 적 마당에서 먹던 풍성하고 정겨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아롱사태는 단단하고 지방이 적지만, 압력솥에서 20분 정도 삶으면 부드럽게 쫄깃하며 육즙을 머금는다. 그 고기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부추와 함께 먹으면 서로의 결점을 감싸고 장점을 살리는 오래된 부부 같은 맛이 된다. 어머니가 늘 말하던 음식의 궁합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아 수육과 부추를 싸서 입에 넣는 순간, 내 마음은 자연스레 시골집 선산의 마당으로 달려간다. 장작불 앞에서 땀 흘리던 작은어머니, 솥뚜껑을 열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를 건져 올리던 고모, 그 옆에서 까르르 웃던 사촌들. 지금은 다시 만날 수 없는 풍경이지만, 그 시절의 온기와 냄새는 여전히 내 식탁 위에서 살아 숨 쉰다.
아롱사태 수육은 내게 단순한 보양식이 아니다. 고향의 기억이고, 가족의 체온이며, 세월을 건너 지금까지도 따스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향수이다.
한 점의 고기를 씹을 때,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마당의 뛰어놀던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 순간만큼은, 고향으로 조용히 들어간다. 세상의 어떤 무게도 잊고,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따뜻한 고향으로….
[아롱사태 수육]
(재료)
아롱사태 1.2kg, 커피 1스푼, 간장 2, 참치액젓 1, 대파 2개, 양파 1개, 통마늘 10개, 생강 1개,
월계수 잎 3장, 통후추, 사과 반 개, 물 2컵, 맛술 2
1. 사태는 핏물을 빼놓는다.
2. 압력솥에 간장·월계수 잎·대파. 양파, 사과, 생강·마늘·맛술·통후추 등을 먼저 물에 넣고 5분 정도
끓여 채소의 향이 우러나게 한다.
3. 채수가 우러나면 고기를 넣고 압력솥에 25분 정도 삶아준다.
4. 김이 빠진 후에 채반에 건져 식힌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뜨거울 때 자르면 사태는 고기가 으깨진다.
5. 사태 수육은 겉절이 김치, 새우젓 무침, 부추무침과 곁들여 먹으면 풍미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