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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나의 크루즈 여행

by Bora

막연한 로망으로만 여겨지는 크루즈 여행, 하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다.


먼저, 크루즈는 여행 기간이 넉넉해야 한다.

지중해 크루즈를 하려면 유럽까지 가야 하고, 남미나 알래스카 크루즈를 계획한다면 미주행 항공권을 끊어야 한다.


즉, 가까운 곳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상품이 아니라면, 왕복 항공 시간을 포함해 최소 열흘 이상은 잡아야 한다.



두 번째로, 크루즈 여행은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국내에서 판매되는 크루즈 패키지 상품은 거품이 심한 편이다.

예전에 북유럽 크루즈를 다녀온 뒤, 같은 일정의 여행사 패키지와 비교해 본 적이 있다. 내가 다녀온 비용의 정확히 두 배였다.


직접 조금만 발품을 팔고 정보를 찾아보면, 물가가 비싼 지역에서 크루즈는 오히려 가장 경제적인 여행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여행을 제법 다녀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반응도 종종 들린다.

“난 비좁은 선실에 갇혀있어야 하는 크루즈는 답답해서 못 가겠어.”

“크루즈 배에서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드레스 입고 다녀야 하는 거 아냐?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


그런데 막상 경험해 보면, 거대한 크루즈선은 육지에 있는 어떤 리조트보다도 할 수 있는 활동이 많다. 선내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만 따라다녀도 하루가 금세 지나갈 정도다.


정찬 식당도 격식을 차려야 하는 분위기보다는, 깔끔하게만 차려입으면 충분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보다 세련되게 편안한 차림을 한 승객이 더 많았다.


결국 시간의 제약만 해결할 수 있다면, 적절한 일정으로 알차고 가성비 높은 여행이 가능한 것이 바로 크루즈다.

크루즈 여행에서 승선지와 하선지는 단순한 크루즈 항해의 출발점이나 종착지가 아니다.

오히려 보통 반나절, 길어야 하루 정도만 방문하게 되는 기항지 투어의 한계를 보완하고, 여행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승선하거나 하선하는 도시에서 며칠 여유를 두고 머문다면 그 지역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풍성한 여행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비싸다’, ‘답답하다’, ‘복잡할 것 같다’는 크루즈에 대한 편견을 조금은 바로잡고 싶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몸이 불편하거나 건강에 자신이 없어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크루즈 보다 적절한 여행법이 있을까?

크루즈에서는 부부 중 한 사람이 배우자의 휠체어를 밀며 함께 여행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신체가 자유롭지 않아도 큰 불편 없이 여행이 가능한 게 바로 크루즈다.




세상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나는 여전히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크루즈 여행을 계속할 생각이다.


거대한 빙하 가까이까지 다가갈 수 있는 알래스카 크루즈,

육로 여행으로는 비용이 부담돼 선뜻 가기 어려운 그린란드,

기항지에 내리지 않고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오롯이 항해하는 대양 횡단 크루즈도 꼭 한번 경험해 보고 싶다.


얼마 전, 실버타운에 들어가서 여생을 보내는 대신 15년간의 세계 일주 크루즈에 나선 77세 노인의 이야기가 뉴스에 소개된 적이 있다.

https://naver.me/xoQxv3jG


따져보면 장기 항해 크루즈는 우리나라의 고급 실버타운과 비교해도 가격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실버타운에서의 여생과 크루즈에서의 여생이라니, 너무 비교되지 않는가?

사람마다 취향과 성격에 따라 선호하는 것은 다르겠지만, 매혹적인 선택이 아닐까?


노인들의 삶과 사랑, 우정을 그려낸 명품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친구들과 여행을 즐기며 누가 그랬던가.

"길에서 죽고 싶다"고.


나이가 들수록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삶보다는, 죽는 순간까지 내 인생을 즐기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크루즈는 내 마음속 든든한 보루다.


긴 여행 중간에 가성비 좋은 크루즈를 끼워 넣으면, 바다 위 호텔에 머무는 듯한 편안함 속에서 몸도 마음도 제대로 쉴 수 있다. 재충전 후 다시 길을 나서면, 여행은 훨씬 더 깊고 여유로워진다.


생각보다 효율적이고 만족도도 높은 이 크루즈 여행 방식이, 여행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하나의 멋진 선택지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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