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는 엿새 후 금요일에 초콜릿 하우스에 다시 찾아왔다. 이온은 부지런히 가게를 정리하고 바깥으로 나와 그를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게 될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오셨네요.”
“그런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지난번에 만났을 때 계속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고 계셨잖아요.”
“주기율표에도 없는 원소가 이 사달의 원인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있어야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나 싶어 다른 방법도 찾아보긴 했는데, 뾰족한 수는 없더군요.”
“계속 교착상태였던 거네요. 오늘은 좀 속 시원한 결과를 얻으시길 바랄게요. 그러려면 일단 저랑 같이 어디 좀 가셔야하지만요.”
이온은 씩 웃어 보이고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배달 박스와 열쇠를 들고나왔다. 그녀는 배달 박스를 어깨에 멘 채로 가게 왼편의 차고 문을 열었다. 차고 안에는 아담한 크기의 차 한 대와 흰색 바이크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녀가 차고에서 바이크를 끌고 나오자, 케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그걸 타고 가려고요?”
“네.”
“갈 곳이 있으면 그거 말고 제 차를 타시죠.”
“제안은 감사하지만 안 돼요. 지금부터 갈 곳에는 이걸 꼭 타고 가야 하거든요.”
“멀쩡한 차를 놔두고 바이크를 사용하다니 말이 됩니까? 그리고 그거, 두 사람이 탈 수는 있는 겁니까?”
“네, 충분해요. 평소에 사장님도 태우고 다니는걸요. 케이 씨는 사장님보다 키가 더 크시긴 하지만, 충분히 타실 수 있을 거예요.”
“뭐라고요?”
케이는 어이가 가출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슨 표정을 짓든 이온은 상관 않고 태연스레 헬멧을 건넸다.
“어쨌든 안전이 제일 중요하죠. 그거 쓰시고 제 뒤에 타세요.”
그녀는 케이가 토를 달기 전에 먼저 헬멧을 쓰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 경쾌한 소리가 나며 헤드라이트가 반짝였다. 케이는 할 말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일단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헬멧을 쓰고 바이크 뒷자리에 올라탄 것이다. 그는 두 손으로 좌석의 뒷부분을 꽉 잡았다.
“조금 덜컹거릴 수도 있으니까 꽉 잡으세요.”
이온은 그에게 주의를 준 다음, 출발했다. 그녀는 가게 왼편으로 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얼마간은 경사가 진 데다 차도가 아니어서 덜컹거렸지만, 골목을 벗어나자 이내 탁 트인 도로가 나왔다. 이온이 바이크의 속도를 올리자, 때마침 불어온 저녁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날렸다. 그녀는 바람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눈을 들어 바라본 해 질 녘 하늘에서는 주황색과 남색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하늘의 색이었다. 이온은 목적지가 나올 때까지 신나게 달렸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곳은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자리한 택배 회사였다. 회사의 규모는 작았다. 2층짜리 건물과 옆에 딸린 주차장이 다였다. 건물 정면에는 ‘주식회사 헤르메스’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고, 주차장에는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모양은 트럭이었지만, 크기는 작은 축에 속했기에 아담하고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바이크를 세운 이온은 케이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문 옆의 벨을 누르자, 중년의 남자가 바깥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소년 같은 천진함과 악동 같은 장난기가 동시에 어려있었다. 그는 이온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구나, 이온.”
“안녕하세요, 헤르메스 씨. 물건 받으러 왔어요.”
“여기 있다. 시에나가 여러 번 부탁하기에 열심히 찾아 놨지.”
그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이온에게 종이봉투 하나를 건넸다. 봉투를 받아 든 이온은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물건이 두 개밖에 없네요. 원래대로라면 세 개여야 하지 않나요?”
“남은 한 개는 아마 네가 데려온 사람이 지니고 있을 거야.”
“네? 정말요?”
헤르메스는 웃으면서 턱짓으로 케이를 가리켰다.
“시에나 말로는 크로노스 가문 사람이 너와 동행할 거라고 하던데, 저 사람 아니니?”
“맞아요. 그런데 저 사람은 미스륨이나 도시에서 일어나는 초현실적인 현상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걸요?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서도 계속 미덥지 않은 눈치고요.”
“그래도 때가 되면 제 역할을 할 거야. 두고 보렴.”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뭐, 오늘은 저 사람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외출한 거니까 본인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하겠죠. 그럼 저는 갈 길이 바쁘니 이만 가볼게요. 다음에 또 봬요.”
이온은 헤르메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는 바이크로 돌아왔다. 그녀는 손에 든 종이봉투를 배달 박스에 넣고 다시 바이크에 올라탔다. 그녀가 시동을 걸자 케이가 물었다.
“이렇게 작은 회사도 법인인가 보군요? 살면서 규모가 이 정도인 주식회사는 처음 봅니다.”
“하긴, 크로노스 그룹 대표이사님께서 보시기에는 신기할 수도 있겠네요. 그나저나 바이크는 태어나서 처음 타보시는 건가요? 지금 보니, 앉은 자세가 정말 엉거주춤 하시네요.”
“맞습니다, 처음이에요.”
“청소년 시절에 모범생이셨나 봐요. 그 나이 때는 한 번쯤 바이크를 타보고 싶어 할 법도 한데 친구가 모는 바이크에도 타본 적이 없으신 거예요?”
“차가 있는데 왜 바이크를 타는 거죠?”
“음, 틀린 말은 아니군요. 뭔가 모범생 같은 대답이기도 하고.”
“칭찬인 듯 칭찬이 아닌 느낌이군요.”
“듣고서 긴가민가 하면 그냥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세요.”
“그렇다면 칭찬으로 받아들이죠.”
그 말에 이온은 피식 웃으며 주식회사 헤르메스 앞으로 난 길을 가로질러 달렸다. 회사가 막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였다. 그녀는 할 말이 생각나서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렸다.
“아, 말할 게 하나 생각났어요.”
“뭡니까? 고개를 돌리고 운전하면 위험하니까 어서 말해요.”
“주식회사 헤르메스 말이에요, 법인회사가 아니에요.”
“그럼, 왜 이름 앞에 주식회사가 붙는 거죠?”
“언젠가 헤르메스 씨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회사 이름 앞에 ‘주식회사’를 붙이면 그럴듯해 보여서 법인이 아닌데도 주식회사라는 수식어를 붙였대요.”
“뭐라고요? 정말….”
케이는 어이없다는 투로 꿍얼거렸지만, 그의 목소리는 바람과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묻혀 이온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초저녁의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마음껏 달릴 뿐이었다.
출발할 때는 오르막길이 대부분이었지만, 주식회사 에르메스를 지나친 후로는 내리막길을 주로 달렸다. 그 덕에 속도는 높아지고 바람도 더욱 시원했다. 이온은 달릴수록 신이 났지만, 케이는 약간 불안해진 모양이었다. 그는 바람 때문에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자 평소보다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네?”
“어디로 가는 거냐고요?”
“어디로 가나고요?”
“그래요! 기분이 좋아서 그냥 무작정 달리는 건 아니죠?”
“제대로 가고 있어요! 배달을 가야 할 곳이 있거든요.”
“배달이라고요? 그게 사라진 시계 태엽과 관련 있습니까?”
“물론이죠! 도착해 보면 알게 되실 거예요.”
이온은 말을 마치며 방향을 틀어 도심 쪽으로 향했다. 곧,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 위로 시계탑의 지붕 부분이 보였다. 그녀는 시계탑 주변을 둘러싼 건물 숲 근처에 다다르자, 속도를 줄이고 휴대폰을 켰다. 잠금을 풀자마자 화면 상단에 있는 몇 개의 앱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초콜릿 지도’라는 앱을 눌렀다. 로딩 시간이 지나고 지도가 켜지자, 그 위에 몇 개의 귀여운 초콜릿 아이콘이 떠올랐다. 그녀는 아이콘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고개를 들어 주변의 골목을 눈으로 쭉 훑었다.
신호가 바뀌기 전, 몇 번의 빠른 대조를 마친 그녀는 곧장 두 개의 커다란 건물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로 향했다. 좁고 어두운 탓에 통행이 불편해서 사람이 다니지 않을 것만 같은 곳이었다. 이온은 골목 앞에 멈춰서서 뭔가를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 뒤에 앉은 케이는 말도 안 된다는 어투로 반론을 제기했다.
“설마, 지금 이 좁은 곳에 바이크를 타고 들어가려고요?”
“음….”
케이가 뭐라고 하든 말든 이온은 공간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휴대폰 화면을 켜서 초콜릿 지도 앱과 골목을 몇 번 더 대조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확신이 선 순간, 바이크의 시동을 걸며 외쳤다.
“케이 씨, 꽉 잡으세요. 지금부터 저기 들어갈 거니까요.”
“뭐라고요?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
케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이온은 속도를 높여 골목 안으로 돌진했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미쳤다고 할 만한 행동이었다. 그곳은 절대 성인 두 명이 큼직한 바이크를 타고 들어갈 만한 골목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온은 주저하지 않았다.
바이크가 앞으로 돌진한 순간, 공간이 울렁거리는 것과 같은 느낌과 함께 두 사람은 골목 안에 들어섰다. 이온은 짐작이 맞아서 기뻤기에 환하게 웃었고, 케이는 얼마간 꿈적하지 않고 있다가 바이크 뒷좌석에서 내려 헬멧을 벗었다. 그는 주변을 몇 번이나 둘러보면서도 방금 막 일어난 일을 믿지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조금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이요?”
“네, 조금.”
이온은 태연한 어투로 말하며 헬멧을 벗어 한 팔에 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