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칭찬의 한마디가 카페인보다 더 강한 각성효과를 낸다.
목요일 2교시, 영어수업시간이라 짐을 챙겨 교실을 나오는 데 영어전담선생님과 마주친다. 선생님은 웃는 미소로 내게 이런 말을 건네신다.
"선생님 블라우스 너무 예뻐요. 어디서 산거예요?
찰나의 순간에 내게 날아온 칭찬의 말에 나는 짐짓 당황한 미소로 아 인터넷에서 산거예요. 라며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는 헤어진다.
선생님이 가볍게 던지신 그 한마디에 괜스레 블라우스 옷길을 만지작 거리며 연구실로 돌아온다. 아침에 입을 옷이 없어 투덜대다 2년 전 산 블라우스가 눈에 띄어 대충 꿰어 입고 나왔다. 그런 옷을 예쁘다고 칭찬받으니 마치 그 옷이 어제 옷가게 쇼윈도에 걸린 신상으로 탈바꿈한 느낌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자주 내게 그런 류의 칭찬을 자주 내놓으신다. 대부분 나의 옷차림에 대한 칭찬인데 사실 그런 칭찬을 잘 받을 기회가 없기에 나는 들을 때 마다 기분이 위로 솟는 느낌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다보면 25명이 훌쩍 넘는 아이들을 케어하고, 쏟아지는 잡무에 먼지뒤집어쓴 듯 정신이 아득한 상황에 그런 칭찬 하나 입에서 낼 겨를이 없다. 하지만 영어선생님은 다르다. 마치 걸어다니는 칭찬제조기처럼 어떤 상황이든 어떤 사람에게든 그에 걸맞는 칭찬을 착착 잘 내놓으신다. 맞춤형 칭찬이랄까? 상대방이 어떤 칭찬을 들으면 기분 좋을 지 상대방의 마음을 간파하는 부러운 능력을 지니신 분이다.
선생님을 만나면 늘 나는 내가 패션쇼의 런웨이를 걷는 모델이 된 느낌이다. 선생님이 쓰신 안경이 뭔가 특별한 마법을 부리는 걸까? 별스럽지 않은 착장에도 늘 "이런 옷을 누가 입어. 선생님이 입으니 빛나지" 라는 말로 푹꺼진 나의 어깨를 하늘 위로 치솟게 만드신다. 선생님은 아시는 것 같다. 카페와 매점이 없는 학교에서 커피와 달달한 디저트를 주지 않고도 누군가의 기분을 일순 들뜨게 하고 기력을 충전하게 만드는 방법을 말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해주는 칭찬과 감사의 표현도 소중하지만, 같은 학교 동료에게서 받는 칭찬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더 귀하다. 아직까지 내 기억 속에 오래 맴도는 하나의 칭찬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 학교 막내 20대 후반인 선생님께 들은 칭찬. 과묵한 그녀에게서 듣는 칭찬이라 꽤 오래 내 가슴에 머물렀다.
언젠가 한 번 청자켓에 원피스를(이것도 산지 꽤나 오래된 옷이다) 입고 출근한 적이 있었는 데 "선생님 대학생 같아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나보다 한 참 어린 선생님께 그런 말을 듣다니. 속으로 무한영광이라고 생각을 하며 나도 그녀에게 칭찬을 되돌려준다. "진짜 대학생같은 사람에게 들으니 기분이 더 좋네요" 커피 한 잔 안마셨지만 그 말에 나는 정신이 확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고, 그 말이 내내 가슴에 기분좋게 머물렀다. 교실로 돌아가 아이들에게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수업을 이어갔던 기억이 어제 일 처럼 생생하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정신이 혼탁할 때 동료끼리 건네는 칭찬의 한 마디는 커피 속 카페인보다 더 강력한 각성효과를 낸다는 것을 요즘 들어 크게 절감한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전에도 연구실에 갔다가, 오늘 한 마디도 나누지 못하고 지나갈 뻔한 동료에게 머리스타일이 참 예쁘다는 칭찬을 커피건네듯 건네고, 나는 또 그 선생님께 어쩜 그리 글을 잘 쓰냐는 달달한 칭찬을 디저트 처럼 돌려받으며 기분좋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혼탁한 정신을 일깨우려 커피마시러 갔다가 빈손으로 나왔다.
오늘이 지나가기 전, 칭찬 카페인이 필요한 누군가를 유심히 살펴 작게 칭찬의 한 마디 건네고 퇴근을 해야겠다. 이 모든 건 다 아침에 만난 영어선생님에게서 건네 받은 칭찬 카페인 수혈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