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학원에서 만난 다정함

낯선 타인의 뒷모습에서 힘듬을 헤아려준 잊지 못할 직원을 그리며.

by 이유미

어제는 일주일 한 번 있는 아쉬탕가 요가수업에 참여한 날이었다. 학교에서 일하랴 집와서 밥하랴 눈코뜰새 없는 일상을 보내는 나날이지만 일주일 한 번 운동은 꼭 빼놓지 않고 있다.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 매번 잘 주차해놓은 차를 다시 운전해서 이동해야 하지만 내가 이곳을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하나. 4년 전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내 가슴에 따스하게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오기 전의 일이다. 고된 육아에 지쳐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을 때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찾게 된 집근처 요가학원. 생후 6개월 매일 이유식을 던지고 뱉는 매운맛 둘째육아에 온몸이 바스라지기 직전 남편에게 부탁하고 저녁 한시간만 운동을 하기로 하고 오기로 했다.


그날은 그 소중한 운동의 마지막 회차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일주일 걸려 유독 손꼽아 기다렸던 인사이드 요가 시간. 강사님의 수업시작 소리와 함께 준비운동을 시작하려는 순간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그머니 밖으로 빠져나와 전화를 받으니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남편의 안절부절한 목소리.


"00이가 손에 고름이 크게 생겨서 아픈지 내내 울어. 어쩌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제 손톱을 바짝 깎아주고선 내내 찜찜했는데 고름이 생겼나보다. 운동을 시작하면 취소가 안되는 강습 규정이 있기 때문에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 나의 그런 사정을 아는 남편은 위급한 상황은 아니니 자기가 첫째와 함께 병원에 데려가겠다며 운동을 계속 하라고 했다. 아픈 아이를 두고 어떻게 엄마라는 작자가 태연히 운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믿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카운터로 가 직원에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처롭게 말을 꺼낸다.


"급한 사정이 있어 그런데 운동 취소 불가능할까요? 오늘이 마지막 운동이라서요. 다음으로 미루는 건 어려울까요?“


직원은 당연히 그럴 수 없다는 듯 내게 다음의 말을 꺼낸다.


"규정상 운동이 시작되면 사정이 있어도 취소가 불가능합니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가슴 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 그 말이 참으로 애석하게 들렸다. 남편을 믿고 하는 수 없이 운동을 하러 다시 들어갔다가 몸은 매트 위에, 정신은 온통 집을 향해 가있는 나 자신을 깨닫고, 마지막이고 나발이고 도저히 운동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강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재빨리 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급히 운동화를 꿰어 신고나가는 내게 뒤에서 들려오는 뜻밖의 목소리.


"사실 규정상 안되는 데 뒷모습이 너무 다급해보이셔서 오늘만 예외적으로 변경해드렸어요.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조심히 다녀오세요"


정신없이 나가는 와중 직원이 내게 보낸 뜻밖의 호의에 나는 얼얼한 표정으로 잠시 굳었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낼 틈도 없이 고개만 꾸벅하고는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갔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무사히 치료를 받고 돌아와 정신이 제대로 돌아왔을 때 쯤 아까 직원이 내게 건넨 그 말을 곱씹어보며 가슴이 뜨끈해져옴을 느꼈다.


그 직원의 호의덕분에 그로 부터 꼬박 일주일 후, 인사이드 요가 수업이 있던 저녁에 마지막 남은 운동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알차게 쓸 수 있었고, 그 어느때보다도 운동 동작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며 그날 저녁 육아의 피로를 깨끗이 씻어날렸다.


그날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 직원이 나의 뒷모습을 유심히 관찰해주었다는 사실에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졌었다. 무심히 보아 넘기는 것이 아닌 어쩔 줄 몰라 왔다갔다 하는 내 뒷모습에 담긴 슬픔을 깊이 이해해주었다는 사실 말이다. 남의 슬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 날의 기억은 샘터라는 월간지에도 그날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렸고, 뒤늦게 원장님을 통해 그 사실을 안 직원은 자신의 작은 행동이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는 사실에 자신도 가슴이 부풀어올랐고, 카운터에서 일하는 자신의 직업을 하찮게 여겼는 데 그 후로 자부심을 느꼈다는 후문도 들으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었다.


그날의 기억이 내 가슴에 오래도록 잔잔한 불꽃으로 살아남아, 나는 이사를 왔음에도 차를 타고 10분이나 소요되는 요가학원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그때 그 직원은 없지만, 여전히 이 곳은 따스함으로 흘러넘친다. 일주일에 한 번 출석함에도 내 이름을 알고 불러주시는 강사님.


좋지 않은 출석률에도 불구 어제는 내가 잘 안되는 동작도 캐치하고 계셨는 지 옆에서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코치해주셨다. 그때 그 직원이 남긴 온기가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나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수업을 마쳤다.


매일 보는 가족과 직장 동료, 친한 지인도 아닌 요가학원에서 한 두번 보는 사이인 그런 누군가가 나를 세심히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은 자주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4년 전, 나의 뒷모습을 보고 운동기회를 다시 살려준 직원.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내게 00님이라고 다정히 불러주고, 평소 내가 어려워하던 동작이 무엇인지 세심하게 살피고 있던 강사님. 느슨한 인연이지만 그런 인연으로부터 받는 다정함도 나의 기력을 솟구치게 하는 동력이다.


낯선 누군가에게서 받은 다정함은, 밤길 운전도 불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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