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엔 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회피의 두 얼굴, 억압과 분노

by 읽는 인간

"이제와 다시 들춰 뭐 하게?"

깊고 오래된 '상처'일수록 입 밖으로 꺼내는 게 쉽지 않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각자의 이유로 애써 외면한다. 가해자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못난 마음이 들킬까 두렵고, 피해자는 악몽 같은 상처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회피의 힘에 기대면 왜곡된 '기억'으로 굳어진다. 하지만 깊은 상처는 절대 스스로 아물지 않는다. 되려 예측하지 못한 사소한 일을 계기로 뒤늦게 곪아 터져 삶에 큰 흉터를 남긴다.


오늘은 불안한 인간이 가진 '기억'과 '상처'에 대한 심연을 탐구한 작품 <만엔 원년의 풋볼>을 소개한다. 1960년 급변하던 전후 일본을 배경으로, 같은 상처를 지닌 두 형제를 통해 서로 다른 기억이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일본 작가로서 두 번째다. <만엔 원년의 풋볼>은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오에 겐자부로 작가는 지식인의 향기가 난다. 자신의 삶과 글에서 간극이 없는 실천적 지식인의 향기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 행동하는 양심으로 평생을 평화주의자로 살았다.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아름다운 일본”을 부정하고 “애매한 일본”으로 자국의 과거와 현재를 정면으로 비판한 사건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준다.


오에 겐자부로는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적 갈등과 사회적 모순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가다.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아버지의 혼란과 내적 갈등을 다룬 자전적 소설 <개인적 체험>, 독서가 인간에게 갖는 의미를 탐구한 에세이 <읽는 인간>, 국가의 폭력을 비판한 소설 <만엔 원년의 풋볼>이 대표적이다. <개인적 체험>이 지극히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면, <만엔 원년의 풋볼>은 안보투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두 작품은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더해 “도망치는 인간 vs. 현실을 직면하는 인간”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갖는다.


<만엔 원년의 풋볼>

작품을 읽다 보면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도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소설의 제목 “만엔 원년(万延 元年)”은 일본의 연호로 1860년을 의미한다. 에도 막부 붕괴의 발단이 된 반란 사건이 일어난 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60년은 전후戰後 사회적 혼란으로 반정부 시위가 격렬하던 시기다. 그리고 “풋볼”은 질서와 혼돈을 상징하는 혁명의 메타포라 할 수 있다. 작가는 1860년과 1960년이라는 두 시대를 겹쳐놓음으로써, ‘역사는 반복된다’는 단순 명제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개인의 기억이 왜곡되면서 신화를 만들어 내고, 만들어진 신화로 인해 다시 사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탐구한다. 이렇게 혁명의 실패와 기억의 왜곡이라는 거대한 구조가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선택을 강조한다.


“억압과 분노는 회피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작품의 중심축은 삼촌에 대한 소문과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다. 미쓰와 다카시 형제는 삼촌이 혁명 전사였으며, 오래전 마을에서 일어난 반란 사건의 주동자였다는 소문을 듣고 자랐다. 형제의 믿음과 달리 삼촌은 혁명가가 아니라 징집을 피해 숨어 지낸 소심하고 겁 많은 인물이었다. 형 미쓰는 이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동생 다카시에게 말하지 않는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지적장애가 있는 여동생과 함께 작은아버지 집에 의탁하며 지내던 형제는 여동생의 죽음을 겪게 된다. 여동생의 죽음은 성폭력과 자살로 추정되는, 집단 침묵 속의 비극적 사건이다. 하지만 두 형제는 각자의 이유로 기억을 왜곡하며 진실을 회피한다. 미쓰는 억압하고, 다카시는 분노한다.


우리는 흔히 억압은 ‘침묵’, 분노는 ‘행동’이라 완전히 반대라고 보지만, 실은 둘 다 자신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고통을 피하려는 방식이다. 미쓰는 조용히 외면하고, 다카시는 거칠게 부딪히지만 둘 다 고통의 본질에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실패자다. 미쓰는 사건의 모든 흐름을 방관하면서 지켜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카시는 겉보기엔 저항하고 투쟁하는 진보적인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 분노조차 자기감정을 감당하지 못한 회피로 느껴진다. 그래서 억압과 분노는 같은 뿌리를 가진 회피다. 그 차이는 소리의 크기지, 방향의 정직함은 아니다.


기억의 왜곡 속에서 성장은 멈추고, 삶은 같은 상처를 반복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일상에서 겪는 ‘갈등’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연인, 부부 그리고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기억의 차이는 커다란 갈등을 가져온다. 갈등을 들여다보면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기억’ 일 때가 많다. 마주한 특정 사건에서 느껴진 감정을 토대로 누군가는 기억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거쳐 이미 지옥으로 변해버린 그 기억 속에 자신을 가둔다. 같은 사건이라 해도 어떤 이는 숨기고 싶은 자신의 밑마음이 들키고 싶지 않거나,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전혀 다른 기억을 ‘창조’해 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거쳐 정교하게 객관화시킨 그 기억을 사실인 양 자신조차 굳게 믿어 버린다. 마치 서로가 다른 상황에 놓였던 것처럼.


상처는 왜곡된 기억의 틈새에서 시작되고, 치유는 현실을 직시하고 결핍을 받아들이는 곳에서 시작된다. 곪은 상처가 무의식이 되어 삶을 뒤덮어 버린 이상, 과거의 왜곡된 기억을 마주하여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진실을 찾는 것은 치유의 과정이다. 느낌이 더 이상의 현실이 아님을 자각하는 것이다.


같이 읽을 책;

- <인생의 친척>, 2005, 웅진지식하우스

- <만엔 원년의 풋볼>, 2007, 웅진지식하우스

- <개인적인 체험>, 2010, 을유문화사

- <읽는 인간>, 2015,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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