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 대한 짧은 생각
요즘은 자녀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부모님들은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중2병이라는 말까지 있으니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중고교 부모님들을 뵈면 화제가 얼추 비슷합니다.
“우리 애가 너무 말을 안 들어요”,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요”,
“멀쩡하던 애가 도대체 뭔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평소 순둥순둥하던 아이가 반항끼 충만한 모습으로 달라진 것에 대한 못마땅함이 묻어납니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는 언제부터 사춘기는 곧 반항기라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사춘기 아이들도 반항기라는 말에 동의할까요? 고3 둘째에게 물어봤습니다. 반항이라는 느낌은 맞지만, 왜 그 한 단어에 애써 담으려 하냐며 되묻습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저는 단연코 '존중'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존중이란 뭘까요? 자녀를 교정의 대상이 아닌 독립된 타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춘기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뭘까요? 바로, '대화'입니다.
대화. 참 어렵습니다. 사춘기 자녀를 부모의 기준에 맞춰 교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순간 서로 어긋납니다. 부모는 대화라 말하고, 자녀는 잔소리로 흘리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 모두 서로에 대한 못마땅하고 서운한 마음이 계속 쌓여갈 것입니다.
사춘기 자녀가 자신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해주기는 커녕 독립된 개인으로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아마 자녀는 부모에게 독립을 위한 전쟁을 선포할 것입니다. 전쟁을 치르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전투와 철수입니다. 전투는 부모에게 저항하는 것이고, 철수는 방문과 마음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저항하는 아이는 그래도 힘이 있습니다. 부모가 아량을 갖고 받아주면 응어리가 좀 풀립니다. 하지만, 부모가 계속 힘으로 누르려 하면 아이는 가정 밖으로 튕겨져 나갑니다. 전장이 계속 확대됩니다. 부모에게 아량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문을 닫아버리는 아이는 힘이 없습니다. 부모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 응어리가 좀 풀립니다. 하지만, 부모가 계속 강제로 문을 열면 부모에 대한 적개심으로 자신을 망가뜨립니다. 자기를 어떻게 망가뜨려야 부모가 가장 아파할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따스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고마운 시기를 꼽으라면 단연코 '사춘기'입니다. 그 시기 두 아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을 이뤘습니다. 부모로서 그 시기를 버텨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자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라 해두죠. 사춘기는 부모가 자녀로부터 받는 성적표라 생각합니다. 받아 든 성적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부모님들은 대부분 부정합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하지만, 성적표를 잘 들여다보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