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이 만들어낸 단단함, 폭풍우가 지나간 뒤 피어나는 희망.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내 안에 머무는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흔들리던 자존감의 뿌리를 다시금 심었습니다.
또한 끊임없이 우리를 맴도는 불안이라는 그림자와는
새로운 방식으로 동행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불안과 무작정 싸우기보다,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판단 없이 바라봅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고요한 용기,
그것이 바로 마음 챙김의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불안은 여전히
우리 삶의 예고 없는 손님처럼 찾아옵니다.
특히 저에게는 사랑하는 아이의 갑작스러운 아픔 앞에서 느꼈던
지독한 불안과 무력감이,
마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터널처럼 저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런데 그 깊은 불안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성장은 모든 불안을 떨쳐낸 완벽한 평온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불안의 그림자 뒤편에 숨어 있다는 것을요.
거친 파도가 바위를 깎아내 더 견고한 모양을 만들듯,
우리를 흔들고 휘몰아쳤던 불안의 폭풍우는
내면을 부수고 다시 세우며,
더 단단하고 지혜로운 존재로 성장시키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가장 큰 배움과 변화는
종종 가장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시기에 찾아왔습니다.
익숙한 울타리 밖으로 한 발 내딛는 두려움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실패의 그림자 속에서 비로소 성공의 길을 찾았듯이 말입니다.
불안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기도 하고,
동시에 변화의 필요성을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돼. 무언가 달라져야 해.”라고 말이죠.
제가 아들을 간호하면서 느꼈던 극한의 불안은,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게 만들었습니다.
직장과 사회생활이라는 익숙한 틀을 벗어나
‘엄마’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오롯이 아이의 회복만을 위해 존재했던 시간.
그 시간은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저를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과 같았습니다.
아들을 간호하던 그 시절,
세상과 단절된 공간 속에서
저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겉치레와 외부 시선으로 쌓아 올린
허위의 갑옷들을 하나씩 벗어던질 수 있었습니다.
불안 뒤에 오는 성장은 결코 드라마틱한 변신이 아닙니다.
마치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나무가 더 깊은 뿌리를 내리듯,
내면의 강인함과 유연함이 한 뼘 더 자라나는
고요하고 깊이 있는 변화입니다.
저는 그 불안의 시간을 통과하며,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겨내야 해!”라는 강박 대신,
“이 순간 힘들어도 괜찮아. 나는 이 감정을 견뎌낼 힘이 있어.”
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는 결국 외부 시련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진정한 자기 신뢰를 쌓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장은 제 안의 ‘내면 아이’에게도 찾아왔습니다.
불안과 상처 앞에서 늘 웅크려 떨기만 하던 그 아이가,
이제는 든든한 어른인 제가 곁에 있다는 것을 믿으며
조금씩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성인 자녀의 아픔 앞에서 느끼는 부모의 불안은
우리 안에 머무는 내면 아이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불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어디가 약한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지 말이죠.
불안을 피하거나 억누르기보다,
마주하고, 듣고, 이해하려는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껍질을 깨고 나와야만 새 생명이 자라나듯,
불안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부수고 나오는 순간,
우리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지평을 마주하게 됩니다.
폭풍우가 지나간 들판이 더 푸르게 솟아나듯,
불안의 그림자 뒤편에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는 희망과 성장의 빛이 존재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삶의 불안 속에서도 자신만의 단단한 성장을 발견하고
더 큰 지혜를 얻으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