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만약
네가 만약, 존 버닝햄 글과 그림, 이상희 번역, 비룡소
네가 만약
네: 네잎클로버를 찾았어
가: 가장 먼저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
만: 만약 좋은 일이 생긴다면
약: 약속한 대로 약 올리고 도망치지 않기
불편하지만 필요한 상상
‘네가’가 아니라 ‘내가’ 만약 저런 일을 겪는다고 상상해본다면?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습니다. 민달팽이 푸딩이나 벌레 죽 같은 음식을 강제로 먹고 온몸에 잼을 뒤집어쓰거나 개줄에 끌려다니는 일 말입니다. 그건 학대에 가깝습니다. 당장 경찰서에 신고라도 하고 싶어질 만큼 무섭고 불쾌한 상상입니다. 물론 그림책이라고 해서 꼭 귀엽고 온정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장면들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불편한 감정을 남깁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고자 한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
이 그림책은 '만약'이라는 가정을 통해 상상의 촉을 자극합니다. 즐거운 상상만이 아니라 불쾌하고 당황스러운 상황까지도 상정하게 함으로써 독자는 자연스레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나에게 일어나면 끔찍할 일은 남에게도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윤리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장치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엄마가 사람들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대목입니다. 얼굴이 붉어진 아이는 그 상황이 무척이나 창피해 보입니다. 마치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흔히 자식이 부모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들 하지만, 때로는 부모가 자식 얼굴에 먹칠을 하기도 하지요. 이 장면을 오래 들여다 보며 내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물론 그것은 자식에 앞서 엄마 자신에게 가장 부끄러운 행위일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