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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맘과 워킹맘이 이웃이 되었다.

헤어지기 아까운 이웃_새로운 공존 II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첫인상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여름 어린이집 앞마당. 무릎 바로 위까지 오는 짧은 반바지에 셔츠, 간편한 운동화 차림을 한 아이 엄마가 있었다. 단 몇 초 사이 그녀의 큰 쌍꺼풀 두 눈과 마주쳐버려 달리 피할 길이 없어 눈인사를 하고 말았다.


그 후로 한 두 달은 지난 것 같다. 어떤 날은 스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휑한 앞마당을 보며 가끔 그 엄마는 이 시간에 아이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 여름 나도 매일매일 그림책 공부하고 토론하고 연구하며 지내느라 틈 없는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내 정체성의 일부를 떼어내 브런치와 같은 플랫폼으로 이주시키느라 순간 이동하듯 하원 길을 날았다. 들쭉 날쭉한, 좋은 말로 그날 하루 엄마와 아이 상황에 알맞은 유연한 등 하원이란 전업맘의 특권인지 애환인지 모를 일 이기도 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은 좀 일찍 하원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들뜨기 때문에 귀가 길이 더 길어진다. 그날은 내가 먼저 앞마당에 있었다. 아이가 물장구치며 놀고 있는데 그녀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같은 반이기도 하고 지나칠 수 없는 물이 사방에 있으니 금방 웃음이 붙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웃음으로 붙어버리면 엄마들은 주변을 맴돌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이웃이 되었다.


Time For A Bath, Valencia by Joachin Sorrolla y Bastida

전업맘과 워킹맘인 우리들은 고정적인 약속보단 대부분 우연에 기대 만나왔지만 그 어떤 또래 엄마들 사이보다 돈독했다. 만약 우리가 서로를 향해 전업맘의 시간을 홀대하거나 워킹맘의 시간을 씁쓸하게만 바라봤다면 끝내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서로 안쓰럽게 보지 않았다. 그 보단 아이와 우리 자신에게 집중했다. 엄마라는 공통분모가 있는데 그 위에 어떤 분자가 올라가면 뭐 어떤가.


엄마라는 방석 하나를 깔고 앉을 땐 그냥 귀 기울이고 가벼이 선 넘지 않으면 된다. 우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주는 멋진 일을 해보는 거다.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던 첫인상의 진짜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뙤약 볏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와 호흡하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나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 그 땀방울이 빛나고 있어 눈을 떼지 못하다 마주쳐 버린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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