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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menade. 밤 산책.

새롭게 공존하기 IIIII



나, 자신의 스승이 되는 길을 열다.

내, 자신의 스승이 되는 길을 닫다. 


-심인서점 | Mindinbookstore


prologue

나 자신의 스승이 되는 길을 펼치다.

[Promenade 산책 | 이정호 | sang]


고요히 흐르는 정적 속, 어두운 산책 길 등불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이. 수도승인가. 노인인가. 아니면 작가의 페르소나인가. 성별도 나이도 나와 다르고 심지어는 배경과 시대도 낯설게 보이지만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듯한 분주한 발걸음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니 꼭 나 같다. 걸을수록 점점 더 빨라질 것만 같은 호흡이 상상되더니 이내 나의 맥박과 같은 궤도에서 맴도는 것만 같다.


사 첫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숨 가쁘게 달려온 탓일 게다. 그러다 나는 몇 백 번째 되는 평범한 들숨을 멈추고 말았다.




             '갑자기 떠오르는 건 없어.  

                                           어딘가로부터 다가오고 있는 걸 모를 뿐.'       - 본문 中


어느 한 펼침 면, 문구 한 줄이 스치려던 영혼의 끝자락을 잽싸게 붙들었다. 

나는 한 동안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어떤 말은 누군가의 영혼을 흔든다. 번개가 되어 내리 꽂힌다. 그렇게 생겨난 빈 틈 사이로 낯선 공기가 흘러들고, 그 공기가 데워져 수증기가 되고, 그 물이 고여 흘러 퍼지면 하나의 세상이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스스로 진화하는 힘이 탄생하는 것이다. 태생의 힘으로 내가 나의 스승이 된다면 그보다 더 온전한 배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9시, 원래는 아이들이 수면에 드는 시간이지만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외투를 걸쳤다. 그날 밤은 특별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으니 밖으로 내보낼 여운이 필요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삼 사분, 발길이 향하는 곳에 이름도 좋은 통복천 산책로가 있었다. 달빛이 낮게 비추는 돌 징검다리 옆으로 아기 오리들이 졸졸 유영하는 밤 풍경은 살면서 나에게도 처음이었다. 오래된 세상을 사는 내게 새로운 경험이 찾아오니 행복한 기분마저 들었다. 밤 산책. 이사 후 우리 가족의 첫 외출이었다.

 

산책은 내가 스스로 걷는 행동이다. 책은 내가 스스로 읽는 행동이다. 공통점은 자발성과 사유하는 힘이다. 얼마큼 했고, 무엇이 더 필요할지 스스로 판단한다. 멈출지, 계속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산책과 책은 길이 나 있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지 언제나 자신의 사유 안에서 방향 값을 구한다.

이만큼 안전하면서도 동시에 과감하게 자신을 발견하는 방법이 있을까? 혼자 걸어도 함께 걸어도 좋은 산책, 혼자 읽어도 함께 읽어도 좋은 책. 잃어버린 영혼을 잘 달래서 편안한 자리에 데려다 놓는 이 일은 잘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잘 자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음악대를 상상해보자. 고유한 자신만의 악기를 연습할 때는 좀 고독할 수 있지만 합주를 맞춰갈 때는 몇 배로 즐거울 것이다.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할 때 몇 번을 해도 처음인 것만 같은 그 느낌처럼 완전히 새로울 것이다.

 

나와의 새로운 공존, 가족과의 새로운 공존, 이웃과의 새로운 공존을 위해 나 자신의 스승이 되는 길을 펼치고 싶다 꿈꾼 날, 이날에 쓴 장문의 글을 마친다.


당신의 매일매일의 신선한 날들을 위해.. 무엇이든 선택해 보세요.

심인서점이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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