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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은 자연의 이치일까

새롭게 공존하기 III

차라리 치열한 논쟁이면 좋겠다.

상대를 향해 팽팽한 논리를 펼치는 그림책 [꽃을 선물할게]의 주인공처럼. by 심인서점 | Mindinbookstore


치열한 논쟁이면 좋겠다.

[꽃을 선물할게] 강경수 | 창비


논쟁을 할 땐 식은 죽 먹기로 하는 오해 따위는 내려놓자. 어설픈 이유는 소용없다. 무작정 상대를 파고드는 것도 아니다. 나의 논리를 파고드는 거다. 스스로 검증하고 스스로도 확신이 드는지 가보는 거다.


어느 쪽이든 가닥이 잡힐 때까지 그렇게 가다 보면 포기하지 않고 상대를 설득해내는 순간이 온다. 애썼지만 정반대로 끝내 설득되는 순간도 온다. 모두 값지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도 손해가 아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함께 매듭을 짓는 순간을 쌓다 보면 눈부신 광경이 펼쳐진다. 자발적 성공이다.



거미줄에 걸린 무당벌레 한 마리, 어쩐지 요즘 나 같다. 거미가 오기 전에 벗어나야 산다. 마침 자주 지나 드는 곰에게 도움을 청한다. 절실한 동정심으로, 절박한 이유로 좀 봐달라 호소해보아도 곰은 현실을 쉬이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러는 곰도, 곰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심지어 잘 들어보면 타당하다. 지켜보는 독자에게 혼란이 온다. 아, 어렵네... 대화가 왜 이리 알쏭달쏭히냐며. 쉬운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얼마 전 이사를 앞두고 우리 부부도 현실적인 갈등 사이에 있었다. "책장 배치를 어떡하지? 같이 고민해주면 좋겠어."라는 말에 남편은 "가서 정해야지."라고 했다. 내가 "아니 그 정도는 도면을 보면 가늠이 되잖아." 말하면 "그럼 네가 확인해볼래?" 라거나 "일 벌이지 말고 가서 보자."는 식인 거다. 바로 그 곰처럼.


벌써 2월 중순인데 두 아이가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입학하는 상황에서 준비할 게 산더미였다. 지쳐가는 가정 보육과 치밀하게 동선을 구상하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보통의 가정과 같이 남편이 회사 업무에 성실할수록 나의 심적 부담은 늘어갔다. 이렇듯 당최 견적이 안 나오는데 가서 보자니, 가서 보자니! 


남편의 최소한의 반응이 얄미웠다. 6-7년간 내가 그려온 동선 위에서 일상과 육아 효능감을 실컷 누리고 있는 이 양반이 중요한 고민에 조금도 발 담그려 하지 않는 게. 서운함이 쌓이고 쌓여 어설픈 노여움으로 변질되어 갔다.


내 직감은 기가 막혔다. 가구 배치를 치밀하게 고민하지 않은 탓에 우리는 삽질을 했고 나는 오 분에 한 번씩 거봐, 내 말이 맞았잖아라는 말을 무한 반복하는 것으로 한풀이를 했다. 남편이 계획한 이사와 내가 계획한 이사는 헛수고를 반복하며 겨우 합을 맞출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밤새워가며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차가운 바닥 위에 앉아 서로에게 뜨거운 열변을 토해냈다. 


흔하디 흔한 언쟁을 가치 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일은 참 어렵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과 지내며 수년간 다져온 인내심으로 남편의 말에 귀 기울여 보았다. 한두 시간 사이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우선순위가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해의 매듭을 풀자 자연스럽게 공존의 매듭을 새로 짓기 시작했다. 목표를 조율하고 함께 구상을 하고 가족들을 위한 배려를 곳곳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물론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신명 나는 탄력이 붙었음을 느꼈다.


최선을 다한 논쟁은 잠재의식을 깨운다. 나와 상대를 함께 성장시키는 동력이 된다. 

그것이 바로 공존의 희망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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