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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술로 흩어진 공간

새롭게 공존하기 IIII


나의 공간은 분신술로 존재하고 있다. 

이사 후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역할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by 심인서점.


[닭들이 이상해] 브루스 맥밀란 글 | 귀넬라 그림 | 최윤정 옮김 | 바람의 아이들

새 학기에 맞추어 나는 우리 가정 안에서 새로운 공존하기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림책 [닭들이 이상해]에 나오는 아이슬란드의 씩씩한 아줌마들처럼 유연해지기로 다짐하면서. 


아줌마들은 달걀을 구하기 위해 시내로 나가 닭들을 좀 데려왔는데 글쎄 닭들이 본분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줌마들을 졸졸 쫓아다니기만 하는 게 아닌가. 


아줌마들은 닭들과 함께 공존을 모색한다. 어떻게 해결할까? 어떤 태도를 보일까?

 

이사 후 며칠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역할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잠을 자는 침대는 둘째를 재우는 안방에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는 책상은 남편의 재택근무 방에 아끼는 소장도서는 거실 책장 맨 윗줄에 분산되어 있었다. 나의 공간은 분신술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면 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아줌마들은 이것도 다 생각해 두었거든요.’    - [닭들이 이상해] 본문 中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읽게 되는 말. 내 입으로 말하고 내 귀로 듣기만 해도 마치 내가 한 수 두 수를 더 두고 생각하는 꽤나 유능한 아줌마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우리 집에 흐르는 동선은 육아를 너르게 품고 있다. 첫 째도, 둘 째도, 동선 육아다. 책 육아가 워낙 추세이지만 우리 집은 결이 좀 다르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었듯이 내가 만든 이 생소한 개념도 실은 자연스럽게 자라났다. 되도록 일상 안에 조금 더 자율성을 믿고 맡기는 육아를 실천하다 보니 며칠, 몇 주, 몇 달 그 이후로는 계산이 필요 없을 만큼 근거는 충분해졌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눈부신 성장으로 화답해주었기 때문이다. 자녀가 책을 즐기도록 하는 목표도 정말 의미 있지만 그저 한 인간으로서 아이가 스스로를 잘 발견하고 자신의 놀이나 작업을 위로 아래로 옆으로 확장할 수 있는 영감이 깃든 동선. 그 한 걸음 뒤에서 믿고 지켜보다 보면 결국 엄마 자신도 함께 성장하게 된다.

 

이사를 오면서 동선에서 아이들이 받을 영감을 한 차원 높이고 싶은 욕심이 들었나 보다눈에 보이지 않는 동선에 과하게 몰입했다. 주방에 홈 카페를 만들고 멀쩡한 수납장에 구멍을 뚫어 정수기를 설치하고 어린이용 물컵을 놓아두었다. 물컵을 고르는데도 아이들의 정서에 어떤 형태와 색상이 도움이 될까를 상상하며 골랐다. 욕실에는 아이들 키에 맞추어 비누와 수건, 실내화 거치대를 전부 다시 설치했고, 커튼 꼭대기에 조명을 달아 호텔 객실처럼 분위기를 아늑하게 만들었다. 내실 다지기는 노하우가 많이 쌓였으니 이제 그런 것들을 뛰어넘어 멋도 좀 내고 싶어진 거다. 동선 육아가 완성되어 갈수록 나는 유령이 될 것만 같았고 내가 욕심을 낼수록 남편은 유령이 되어 갔다.

 

하지만 아이들이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제 아이슬란드의 아줌마들을 만나도 당당하게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 느낌이다. 두 아이가 입학식을 치르기 전에 95%를 완성해 낸 우리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또한 부모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희생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하느라 수고했다고 말이다. 


새로운 공존하기에 필요한 태도에 관한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이만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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